영화 '암살자(들)'의 역사 왜곡 논란이 리뷰 삭제와 배우·광고를 향한 비난으로까지 번지며 문화계 공론장이 위축되고 있다. 사진은 배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이상 왼쪽부터)가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암살자(들)'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는 모습./사진=스타뉴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의 역사 왜곡 논란이 제작진 피고발을 넘어 리뷰 삭제와 출연진을 향한 비난으로 번지며 과열되고 있다.

'암살자(들)'를 둘러싼 논란은 영화 속 묘사가 실존 인물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이 고발당하면서 본격적인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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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쟁 넘어 진영 갈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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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고증을 둔 갑론을박은 이미 온라인상에서 극단적인 진영 갈등으로 번졌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는 "역사를 왜곡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도 책임이 있다"며 날 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과도한 사상 검증이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 영화 커뮤니티에는 "이건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악의적인 역사 테러" "왜곡된 프레임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영화는 철저히 불매해야 한다" 등과 같은 격앙된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반면 "불편하면 영화관 대신 박물관을 가라" "다큐멘터리가 아닌 상업 영화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며 마녀사냥을 하는 꼴"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댓글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양측 공방이 '별점 테러'와 원색적인 조롱으로 이어지면서 정작 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열된 여론에 대중문화계의 담론 역시 급격히 위축되는 분위기다. 역사 일타 강사 최태성, 417만 영화 유튜버 지무비 등 유명인들은 잇따라 관련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유튜버 김단군은 자신의 작품 리뷰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사과 영상을 게재했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작품에 대한 기존 평가를 유지했지만 관련 리뷰 영상은 비공개 처리했다. 영화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 또한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지는 점에 부담을 호소했다. 허 감독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빨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배우들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오가야 할 비평과 소통의 창구가 막혀버린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제작사를 고발하고 평점 테러를 가하는 것은 결국 영화를 '못 보게 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영화는 일종의 '발제문'과 같아서 이를 바탕으로 활발하게 토론하면 될 일이지 발제문 자체가 세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는 것은 공정거래나 자유민주주의 원리에도 반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된 사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개인의 사생활이 아닌 공직자가 공식 국가 행사에서 겪은 의문점을 다룬 철저한 공익적 사안"이라며 "기본 팩트를 왜곡하지 않은 선에서의 창작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논쟁이 작품 비평을 넘어 진영 갈등과 배우 비난으로 확산되면서 근현대사를 다루는 영화계의 창작 환경에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표시되는 영화 ‘암살자(들)’ 홍보 포스터./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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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밖 논란, K영화 위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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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화살은 스크린 밖 출연 배우들에게도 향하고 있다. 주연 배우 유해진이 모델로 활동 중인 한 햄버거 브랜드 광고 영상에는 영화 출연을 문제 삼는 비난 댓글이 이어졌고 결국 브랜드 측이 해당 영상의 댓글 창을 차단했다.

김 평론가는 이 같은 현상이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정치적 잣대가 배우와 광고 등 작품 외부로까지 확장된 결과라고 언급했다. 그는 "영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정치권에서 먼저 시작됐고 그 맥락을 지지하는 이들이 배우 비난과 광고 압박으로 이어가고 있다"며 "실제 관람객은 높은 평가를 주고 있고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받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15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이 이어지자 정치권이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결국 외부의 잣대가 선의의 피해자들만 낳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논란이 근현대사 및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창작 환경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평론가는 "'K콘텐츠'의 특징은 남들이 불편해하거나 금기시하는 역사적 내용도 적극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그런데 K컬처의 세계화를 외치면서 정작 내부에서는 정치적 논리로 소재를 위협하고 옥죄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가 고착화되면 향후 현대사를 다루는 작품을 연출할 감독도, 출연할 배우도 사라질 수 있다. 결국 한국 영화 산업의 위축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대중의 검증을 거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러나 '암살자(들)'를 둘러싼 논란은 작품에 대한 비평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대했고 장외 여론전으로 번졌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근현대사를 다루는 영화 제작과 비평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