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나비 필레이가 선정됐다. 사진은 UN인권최고대표시절의 필레이./로이터=뉴스1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던 젊은 변호사가 60여년 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2026년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법률가 나비 필레이(85)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의 책임을 묻고 국제법을 지켜온 그의 평생에 걸친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9일(현지시각)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나비 필레이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필레이는 1941년 남아공 더반의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남아공은 백인과 유색인종을 분리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였다. 법률가가 된 그는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았다.



그는 1995년 남아공 고등법원 최초의 비백인 여성 판사로 임명된 뒤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과 국제형사재판소(ICC) 초대 재판관을 거쳤다. 르완다 재판에서는 성폭력도 집단학살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국제법적 기준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2008년부터 6년간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활동했다.

현재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미얀마의 로힝야족 집단학살 혐의를 다루는 사건의 임시 재판관이다. 지난해까지 유엔 조사위원회를 이끌며 가자지구 전쟁도 조사했다. 조사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지만 이는 법원의 확정 판결은 아니다.

AFP통신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필레이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법 행사 도중 수상 소식을 들었다. 나치 전범 재판이 열렸던 역사적인 법정에서 그는 "이 상을 국제범죄의 모든 생존자에게 바친다"며 "국제법과 인권이 심각한 정치적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축하가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공식 성명에서 "힘의 법칙보다 법의 힘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평화를 강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세계인에게 희망을 준 공헌을 기리는 계기"라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굳건히 나서는 모든 사람을 기리는 것"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이스라엘 총리실은 "노벨위원회가 도덕적 나침반을 잃었다"며 반발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이 수상자를 둘러싼 평가에도 반영됐다.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간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과거 탄핵 심판에서 변호를 맡았던 데이비드 쇼언 변호사 측의 글을 공유했다. 쇼언은 필레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하며 "노벨위원회가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키고 평화상의 위상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관계 정상화를 이끈 아브라함 협정 등 외교적 성과를 나열하면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쌓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의견을 덧붙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