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부천 오정구의 한 도장공장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이 흐느끼고 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뉴시스



경기 부천의 한 도장 공장에서 발생한 큰 불로 소방관 6명이 중경상을 입자 소방관을 '재정 빨대'에 빗댄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추미애 경기지사가 화재 현장을 찾았다. 소방관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치료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장 소방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현장 소방대원들은 "사명감도 사기도 바닥으로 떨어졌다"면서 추 지사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20년째 일선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인천의 한 소방대원 A씨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소방관을 재정 빨아먹는 빨대라고 표현한 건 엄연한 망언"이라면서 "정치에 관심도 없지만 추 지사가 전국의 소방관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재 진압 작전에 투입되는 나로서는 남 일이 아니다"라며 "심정지를 겪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소방대원의 일은 나도 충분히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11년 차 소방공무원 B씨도 "추 지사 발언을 듣고 동료들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며 " 우리 예산을 낭비라는 식으로 말하면 사명감이 생기겠나"라고 토로했다.

최영재 소방통합공무원 노조 위원장은 "추 지사가 정치를 오래한 경험을 생각하면 그렇게 과격하게 말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현장에선 '소방관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38분쯤 부천시 오정구 내동 한 4층짜리 금속 부품 도장 공장에서 불이 났다. 소방 당국은 신고 접수 5분 만인 오전 8시 43분쯤 현장에 도착했고 불은 화재 발생 2시간여 만인 오전 11시 6분쯤 완전히 진화됐다. 현장에서는 탈진자를 포함해 소방관 6명과 공장 관계자 2명 등 모두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방관 중상자 2명은 불이 난 건물에 가장 먼저 투입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심폐소생술(CPR) 조치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지만 현재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상자가 발생하자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추 지사는 오전 11시 20분쯤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취재진이 "'재정 빨대' 발언 때문에 소방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고 운을 떼자 추 지사는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말한 뒤 자리를 옮겼다.

추 지사는 등을 돌리거나 벽을 짚고 서 있는 소방관들에게 다가가 "동료 소방관들 두 분이 빠르게 치료받고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경기도도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앞서 추 지사는 지난 13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방 예산과 관련해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경기도는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의 인건비와 사업비 등을 지자체가 상당 부분 부담하는 문제를 지적한 취지라고 해명했으나 현직 소방관들은 반발하고 있다.

소방 노조들은 추 지사의 표현을 문제 삼으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소방통합공무원 노조는 이날 오후 2시쯤 경기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 지사는 전국 7만여 소방공무원을 폄훼하는 발언이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깊이 성찰하라. 명예와 자긍심을 훼손한 발언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 소속 한국소방공무원노조도 전날 추 지사의 국정감사 발언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소방은 누군가의 주머니를 축내는 빨대가 아니라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수호자"라며 "정부는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했다며 생색을 내놓고, 정작 인건비는 여전히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불이 난 공장에는 제4류 위험물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불길이 확산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