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불타는 시설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다. 17~18일 시위는 연료가격과 생활비 부담의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조합, 농민, 기후활동가 등이 지난달부터 교육 여건 개선 시위를 해온 학생들과 연대하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신화=뉴시스


프랑스가 불타고 있다. 주말인 지난 17~18일 파리·마르세유·리옹·릴 등 프랑스 전역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일부 공공건물과 시설·장비가 불타는 소요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달 18일 교육 환경에 대한 불만과 긴축정책으로 촉발된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이번 주말 유가·생활비 보조를 요구하는 노동자·농민들의 집회와 결합하며 전국을 혼란으로 이끌었다. 일부 약탈과 방화도 벌어졌다. 르몽드·리베라시옹·프랑스24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주말 시위에 내무부 추산 55만 명, 노동총동맹(CGT) 추정 80만 명이 참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8일 대국민 연설에서 "정당한 요구를 가진 시위대와 파괴하고 부수고 약탈한 사람들을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왜 세계 7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에서 열악한 교육 환경이 문제가 되고 생활비 보조 요구를 앞세운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것일까? 문제의 근원은 생각보다 깊다. 재정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막대한 공공 부채, 심각한 재정 적자, 치솟는 국채 차입 이자 때문에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를 해결을 위한 국가적 노력은 '착공'도 못하고 있다. 극심한 정치적 교착 상태와 좌우 정당들의 정파 이익 최우선주의에 밀려서다.



수치를 살펴보자. 현재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약3조 6000억 유로(약 5370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119%에 이른다. 재정 적자는 2026년 GDP의 5.4%로 예상되며 이는 유럽연합(EU)의 건전 재정 기준인 3%의 1.8배다. 차입비용도 만만치 않아 현재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5%로 2002년 이후 최고치다. 이탈리아(4.5~4.6%)와 그리스(4.3~4.4%)보다 높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절대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의 정부는 최근 540억 유로 규모의 재정 조정으로 재정 적자를 5%로 줄이는 내용의 2027년 예산안을 발표하고 10월 초 의회 심의에 들어갔다. 재정 조정은 3분의 2를 지출 삭감으로, 3분의 1은 새로운 세금이나 기여금 도입으로 충당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엔 60억 유로의 연금 및 의료비 삭감이 포함됐다. 한마디로 복지 부담은 줄이고 세금은 높여 재정적자를 줄이자는 것이다. 교육 예산과 생활 보조금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긴축 예산안은 교육 재정 확충, 연료비 등 생활비 보조 확대, 연금 조정을 요구하는 학생과 노동자, 그리고 은퇴자의 불만을 불렀으며 이는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의회에선 2024년 6월 조기 총선 이후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당시 하원인 국민의회에서 마크롱의 '앙마르슈(2022년 5월 르네상스로 개명)'는 물론 어느 정당도 과반인 289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전체 577석의 하원이 180석의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 159석의 마크롱의 중도파 연합(Ensemble), 142석의 극우 성향 국민연합(RN) 등 세 개의 주요 블록으로 나뉘어 타협 없이 치열한 정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2024년 미셸 바르니에 당시 총리는 재정 적자를 줄이려고 시도했지만, 좌파는 복지 지출 확대를, 우파는 감세를 주장하면서 서로 충돌했다. 대치가 계속되자 바르니에는 헌법 49조 3항의 '의회 우회권'을 발동해 독자 통과를 시도했지만, 좌우 야당의 불신임안 통과로 취임 90일 만에 물러났다. 후임인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국가 부채 위기를 타개를 위해 공휴일 축소와 연금 동결 등 긴축 재정안을 내놨지만, 야당 반대 속에 취임 9개월 만에 사퇴했다.

현 르코르뉘 총리는 2026년도 예산안 통과 당시 좌우 야당과 몇 달간 '예산 전쟁'을 벌이다 지난 2월에야 간신히 강행 처리했다. 쟁점은 사상 최고 수준의 공공 부채와 재정 적자 압박에 대한 해소방안, 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협 대응을 위한 국방비 증액 등이었다. 좌파 야당은 복지 예산 문제로, 극우 야당은 증세 때문에 각각 반대했다.

프랑스 재정을 누르는 가장 큰 요인은 사회보장 제도다. 평생 복지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평가와 재정 부담과 지출 경직성이 크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2024년 기준 GDP의 약 30.6%에 이른다. 연금소득 대체율은 약 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43%보다 높다. 참고로 한국 평균 소득 근로자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33.4%다.

문제는 한 번 늘어난 복지 혜택과 확정된 연금 수급 구조는 손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복지 혜택을 사회적 합의가 아닌 개인 권리로 인식하는 대중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2023년 법정 은퇴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64세로 늦추고 납부 기간도 연장하는 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좌우 야당의 반대와 대규모 총파업으로 이를 2028년까지 미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 예산안을 들고나오면 좌우 야당이 모두 반대하는 포퓰리즘 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프랑스는 어디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