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도 깊어 이제는 봄으로 가는 길. 언 땅 아래 새 봄에 피어날 생명이 숨죽이고 있다. 소멸과 생성의 이치를 안다면 겨울비를 맞는 오늘 하루 발소리도 숙연하다. 우포늪도 해인사 절집 기와도 숨을 죽인다.


도심의 거리에도 휑한 바람만 불어 가고, 들판도 나무도 앙상하다. 이런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더욱 더 깊어 보인다.

겨울비 내리던 어느 날 우포늪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러 떠났다. 축축하게 내리는 비가 세상 다 적시고 대지 그 아래까지 스며들 기세다.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무 그림자가 물에 비쳤다. 그림자가 더 진짜 같다.

 

◆우포늪, 겨울


비가 오다 긋다 하루 종일 눅눅하다. 차 안의 공기가 더워 끈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차창을 열고 바깥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빗물이 총알처럼 얼굴을 때린다. 지루한 도로 끝에서 만난 우포늪은 숙연했다.

가끔 새들이 날고 억새와 물기 빠진 누런 풀들이 비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비를 맞으며 늪 주변 흙길을 걸었다. 여행자는 우리뿐이었다.

걸어서 늪을 한 바퀴 돌아보기에는 너무 넓어 보였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도 늪이 있다하니 겨울비 맞으며 걷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어디로 언제까지 가야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늪은 넓었다.

사실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늪이라고 알려진 우포늪은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있는 70여 만 평 규모다. 이곳에 가시연꽃, 생이가래, 부들, 줄, 골풀 등 48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또 논병아리와 쇠백로, 왜가리, 큰고니, 청둥오리 등 62종의 조류가 있다. 이 밖에 28종의 어류와 55종의 수서곤충류 등 다양한 생명들이 우포늪과 함께 살고 있다. 1998년에 람사르협약보존습지로 지정됐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팍팍해져왔다. 비는 계속 내렸고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돌아 나왔다. 날이 저물고 있었고 민박집은 주변에 없었다.

여기 저기 물어서 찾은 곳이 생태관 건물 앞 우포늪 건너편 ‘목포늪’ 주변 민박집이었다. 매운탕도 팔고 민박도 하는 집이었다. 주변에 다른 민박집은 없다. 그곳이 아니면 창녕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우포늪의 밤과 아침을 보기 위해 우리는 그곳에 짐을 풀었다.

먹을 것을 장만하지 못하여 약 10km 거리에 있는 창녕 읍내로 나갔다. 재래시장을 돌며 시장에서 파는 ‘튀김통닭’과 즉석밥, 라면, 김치 등 반찬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사온 음식으로 저녁을 해 먹고 통닭에 소주를 곁들였다. 지인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게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밤, 소주 한 잔 아니겠는가.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우포늪에 생을 기댄 사람이 아침을 연다.

 

밤이 깊어지고 적당히 취기도 올랐다. 밤의 늪이 궁금해 밖으로 나갔다. 늪은 비오는 날 더 음습했다. 밖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자체였다. 이야기 소리마저 어둠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았다.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다음 날도 비는 오락가락 했다. 비에 젖은 우포늪의 아침은 고요했다. 안개는 수면 위에 주둔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너머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소리마저 갇혀 있는 듯 했다.

시야가 열리는 곳에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는 괴기스럽기도 했으며 물기 마른 누런 풀들이 힘겹게 흔들리고 있었다. 비상하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 때문에 사위는 더 적막했다.

이 모든 풍경을 짊어 진 채 저 멀리 우포늪에 생을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어부가 쪽배를 타고 아침을 열고 있었다.

침잠하는 계절의 끝에서 우포늪의 모든 생명들은 다음에 태어날 윤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젖은 숲 절집 기와 촉촉한 풍경 소리

 

우포늪의 아침은 무거웠지만 엄숙했다. 차분하고 진지한 걸음으로 맞이한 아침, 늪에 둥지를 틀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침을 거르고 돌아 나오는 길, 비는 어제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들뜨지는 않았지만 허허롭고 흩어져 어찌할 줄 몰랐다. 조용하게 천천히 우포늪을 벗어날 때 쯤 일행이 “해인사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해인사로 가는 길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았다.

가야산 꼭대기부터 내려온 운무가 해인사 절집 기와까지 내려왔다. 바람 불면 운무가 흩어져 젖은 숲이 싱그럽다.



고목 앞 작은 나무가 푸르다.

 

‘가야산해인사’라고 적힌 일주문 밖 고목은 죽어서도 흙을 움켜쥐었다. 안내판에는 1200여 년 전 해인사를 세우면서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고 적혔다. 절도 처음 그 모습이 아니니 해인사의 처음을 이 나무에서 느낀다.


해인사는 802년 순응화상과 이정화상이 세운 절이다. 고려의 균여대사와 대각국사를 배출하고 조선 태조 때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했다. 삼보(불보·법보·승보)사찰 중 불교의 진리를 담은 불경을 보물로 여기는 사찰인 법보사찰이 바로 해인사다.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건물이 대적광전(본전) 뒤쪽 높은 곳에 자리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촉촉하게 비 내리는 날 가야산 계곡이 젖어 바위도 나무도 흙도 풀도 빛난다. 일주문을 지나 절 마당에 섰다. 균형과 비례가 아름다운 탑이 마당에 서있다. 탑 주변을 돌았다.

‘공양시간 다 끝난다’는 일행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가 고팠다. 절밥 먹어 본 지 참 오래 됐다 싶었는데 다행히 해인사에서 점심공양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쟁반 같은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 한 술 뜬다. 스님도 일하는 사람도 오가는 사람들도 다 먹는다. 절밥이 맛있어 배부르게 먹고 나서 뒷간으로 가는 도중에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 된다’는 성철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비오는 절집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기와 한 장 창살 하나에 눈을 주었다. 대적광전 뒤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곳으로 올라갔다.

팔만대장경은 부처의 말씀을 새긴 경판인데 8만1258장 경판을 보관한 건물인 ‘장경판각’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됐다. 6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처음 그 상태로 경판을 보관할 수 있는 건물의 과학성과 건축술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경판의 재료는 산벚나무 또는 자작나무라는 설이 있다. 재료야 무엇이든 그 재료를 삼 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꺼내 조각하고 다듬고 글씨를 새겼다는 것이다. 8만1258개의 경판에 5238만2960개의 글자가 구양순체로 새겨졌다.

절집 추녀 아래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는 데 운무에 가려진 먼 산이 운치 있다. 비에 젖은 절집 기와가 빛난다. 추녀 아래 풍경 소리가 산사에 촉촉하게 울려 퍼진다. 비 맞으며 돌아 나오는 길 성철스님 부도 앞 소나무 길을 따라 내려가는 데 수녀님들이 우산을 쓰고 올라온다. 비를 맞으며 걷는 발소리가 숙연하다.

 

<여행정보>

☞해인사

●주소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전화 : 055-934-3000


●자가용 길 : 경부고속도로 - 대구 - 88고속도로 - 해인사IC - 해인사

●버스 길 : 대구 도착 후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인사 행

●숙소 : 해인사 부근 민박집

●요금 : 주차비 승용차 4000원. 입장료 700~3000원.


☞우포늪

●주소 :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와 세진리,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등지

●전화 : 055-530-1552

●자가용 길 :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 창녕IC통과 교차로에서 우회전, 이정표를 따라 약 5.8km, 회룡마을에서 우회전, 우포늪 세진주차장까지 약2km

●버스 길 : 창녕 시외버스터미널 하차. 바로 옆에 있는 시내버스터미널로 이동. 유어 또는 적교 방면 버스 승차. 회룡에서 하차. 걸어서 약 30분 세진주차장 도착.(시내버스가 하루에 몇 대 밖에 다니지 않는다. 창녕시내에서 약 9km 거리)

●숙소 : 우포늪 주변에는 숙소가 없다. 다만 우포늪생태관 건너편 목포늪 부근(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민박집이 한 곳 있는 데 민박을 할 수 있는 지 없는 지 사전에 전화로 물어봐야 한다.(055-532-9052) 아니면 우포늪에서 약 10km 거리에 있는 창녕읍내 숙박시설 이용.

●요금 : 우포늪생태관 이용요금 1000~2000원.

●우포늪 생태관 : 9:00~18:00(매표시간은 오후 5시까지).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그 다음날), 1월1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