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양명을 꿈꾸며 넘던 과거길, 파발마 급히 넘던 길,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넘어야 했던 고갯길. 경북 문경과 충북 연풍을 잇는 새재 고갯길은 사연만큼 숲도 깊다.
 
◆연풍 천주교 성지

1000m급 산들이 둘러싼 산골마을 연풍. 충북 내륙 중 오지였던 그곳도 이제는 시원한 도로가 사방으로 뚫렸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로 나오면 연풍 읍내가 바로 나온다.

역사 속 연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산골짜기 오지마을이었던 것 같다.  1801년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을 탄압했던 이른바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교인들은 은거할 곳이 필요했는데 연풍도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연풍에만 머물지 않고 박해를 피해 더 깊은 산골을 찾아 길을 떠났다.


연풍에서 새재를 넘으면 문경이었다. 교인들은 새재를 넘어 문경, 점촌, 상주 등으로 퍼져 은거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천주교 탄압의 불길은 더 거세졌고 이윽고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처형됐는데 그 사람들이 처형된 곳이 지금의 연풍 천주교 성지다.


연풍 천주교 성지.
성지라고 해서 위엄 있고 규모가 클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잔디와 소나무가 어울린 아담하고 소박한 정원 같았다. 그러나 역사 속 이곳은 안락한 정원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피 비린내 넘쳐 나는 처형장이었다.

처형할 때 사용한 ‘형구돌’은 직경이 약 1m, 둘레가 4~4.5m 정도 크기이며 바위 가운데 앞면에 직경 25~30㎝, 뒷면에 직경 7㎝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형구돌 중 하나는 서울 절두산 성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나머지 두개는 연풍 천주교 성지에 남아 있다.


성지에서 나와 면소재지를 벗어났다. 연풍중학교를 지나자 옛날 문경으로 넘어가던 고개인 이화령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그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는 옛 버스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충주에서 연풍을 오가는 사람을 위해 그곳에서 버스가 정차한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수옥정에 도착했다.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수옥정폭포는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곳이다. 또 1700년대에 폭포 앞에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니 기록상으로는 사람들이 폭포를 알게 된 것은 최소한 300여년 정도 됐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내 할머니도 이 폭포를 다녀가셨다. 폭포 앞에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젊은 시절 할머니 사진을 어릴 때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 폭포 앞에 서서 온몸으로 폭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 폭포 아래 선 나는 사진 한장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리던 ‘웅웅’대는 소리가 멈추는 순간 폭포수 부서지는 소리가 우렁차게 가슴을 울린다. 그때서야 추억이 닿지 않은 시간여행에서 깨어났다.


수옥정폭포

폭포는 20m 높이다. 수직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가운데 절벽 꼭대기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절벽 중간쯤에는 어른이 허리를 구부리고 지날 정도의 틈이 있어 폭포수 안쪽에서 폭포를 바라볼 수도 있다. 폭포 아래는 넓은 웅덩이가 있다. 암반바위가 엄청난 양의 물을 품고 있다. 객기 좋은 일행이 그 틈으로 걸어가서 웅덩이 반대쪽으로 내려온다. 폭포수 옆에 서 있는 일행의 모습을 보니 폭포의 웅장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폭포를 남겨두고 우리는 아스팔트 비탈길을 걸어 폭포 위 상가단지로 올라갔다. 내일 경상도와 충북을 잇는 옛길인 새재를 넘을 계획이다. 하룻밤 묵을 곳으로 새재의 첫 관문을 약 2.5km 정도 앞둔 이곳이 적당했다.
 
◆역사의 길, 숲의 길

새 날 아침은 흐렸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을 잇는 산길 9km를 사람들은 ‘문경새재’라고 부른다. 상가단지를 출발해서 조령제3관문으로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시멘트 포장길이었지만 숲과 계곡이 있어 걸을 만했다. 고갯마루에 성벽과 문이 보였다.

제3관문을 지나자 숲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젖은 숲은 처음처럼 신선했다. 넓게 다져진 흙길도 있지만 그런 길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랐다. 그 길이 원래 옛날에 사람들이 다녔던 ‘과거길’이었다.

그 길에 ‘책바위 돌탑’ 이야기가 전해진다. 새재 인근 마을에 병약한 부잣집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그 병을 고치려면 그 집을 둘러싼 돌담의 돌을 허물어 새재 책바위 앞에 쌓아 놓아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 그렇게 3년 동안 돌탑을 쌓으며 치성으로 기도를 올리니 몸이 좋아졌고 공부에 전념해서 장원급제했다고 한다. 돌탑은 전설의 증거로 남아 있고 지금도 입시철만 되면 그 돌탑 앞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영남과 충청 이북을 잇는 문경새재길을 충북에서 경북 쪽으로 거꾸로 걷고 있는 것이다. 옛날 영남지방 선비들이 입신양명을 꿈꾸며 과거를 보러 갔던 길이 이 길이며, 그 중 더러는 과거에 합격해서 금의환향했던 길이기도 하겠다.


조령제1관문.
 

2관문에서 1관문으로 가는 길, 1관문 바로 전에 있는 드라마촬영장이다. 왕건 등 많은 드라마를 촬영했다.
 

제2관문

오솔길을 걷다 보면 큰길을 만난다. 큰길을 걷다가 또 오솔길을 만나면 그 길로 접어든다. 내리막길이라 힘들지 않는데 목이 마르다. 막걸리 한잔 생각날 때 쯤 되는 거리를 걸었을 때 어김없이 식당이 우리를 반겼다. 옛날 같으면 주막이 있었을 법 한 자리다. 실제로 새재에 주막이 있었는데 지금은 옛 주막 모습 그대로 초가를 지었다. 하지만 복원만 했을 뿐이지 아무것도 팔지 않는 빈집이다.

조령제2관문 앞에 이르니 솔숲 쉼터가 보였다. 솔바람이 시원하다. 2관문을 지나자 계곡의 수량은 많아졌고 계곡 또한 그 위용과 아름다움이 제법 꼴을 갖췄다.

길가에 ‘용추약수’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계곡으로 내려서니 물이 졸졸 흐르는 약수터가 나왔다. 제2관문을 지을 당시인 조선 선조 때 군사용 식수로 사용하던 ‘샘물’터였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흙과 돌에 묻혀있던 것을 2003년에 발견 복원했다고 한다.

이 길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청에 있던 사람들이 출장을 다닐 때 숙박과 식사를 해결했던 원터가 남아 있다. 또 길가에 울창한 숲을 보호하고자 했던 ‘산불조심비’가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다. 고갯길 넘으며 삶을 꾸려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달랬던 계곡 물소리가 그 옛날 그 소리로 살아 있었다.

약수로 목을 축이고 팍팍한 다리 두드리며 다시 걷는다. 옥빛 계곡에서 휴식 같은 휴식을 즐기며 더 쉬었다 가고 싶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다 걷고 난 뒤에 그 옛날 과거에 합격해서 ‘금의환향’했던 옛 사람의 마음으로 편안하게 고향 같은 밥상 한번 받아볼 생각이었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 - 연풍성지 - 수옥정폭포(문경새재길은 원점회귀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자가용을 가져갔다면 누군가는 도착지점인 문경새재 제1관문 앞 주차장까지 차를 옮겨 놓아야 한다.)

대중교통 : 충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연풍까지 버스 18회 운행(40분 소요).

*연풍에서 수옥정폭포까지 약 6km. 군내버스가 많지 않다.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수옥정폭포 윗마을에 상가와 식당 민박집 등이 있다. 그곳을 지나서 문경새재길을 걷게 되는데 문경새재 제1관문이 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제1관문에서 상가단지 쪽으로 걸어가면 문경버스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문경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면 된다.
 
<숙소>
수옥정폭포 윗마을(상가단지)에 민박집이 있다(폭포에서 조령3관문 쪽으로 약 2~3km 정도 아스팔트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수옥정상가단지와 마을이 나온다).
 
<먹을거리>
올갱이국 : 괴산 시외버스터미널 주변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군내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올갱이(표준말은 ‘다슬기’)국을 파는 식당이 띄엄띄엄 있다. 주재료인 올갱이를 아욱 된장국에 넣어 끓인 요리다. 맛이 구수하다.
도토리묵밥 : 수옥정 윗마을에서 판다. 육수에 도토리묵을 채 썰어 넣고 김치, 김 가루, 깨소금 등을 고명으로 얹어 나온다. 공기밥이 따로 나오는데 보통 도토리묵 국물에 말아 먹는다. 도토리묵 향이 은은하게 나면서 김치의 칼칼한 맛과 김과 깨소금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