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67) 웅진그룹 회장이 그룹 성장의 큰 축을 담당한 웅진코웨이를 매각키로 하자 재계가 연일 시끄럽다. 10여년 전 중견기업이었던 웅진을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30위권의 그룹으로 키워냈고, 지금도 여전히 그룹의 절대적인 '캐시카우'인 웅진코웨이. 알토란 같은 이 회사를 윤 회장이 왜 선뜻 시장에 내놓았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하지만 기업 경영에선 언제나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원적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했죠."
윤 회장이 대외적으로 밝힌 웅진코웨이의 매각 명분은 그룹의 재무건전성 확보와 태양광 에너지 등 신성장 사업에 주력하기 위함이다. 야구 얘기로 치면 팀 우승이 절실한 상황에서 확실한 '4번 타자'를 버리고 '신인 선수' 발굴에 나선 감독의 상황과 동일한 처지다.
재계에선 윤 회장의 이같은 '생뚱맞은' 웅진코웨이 매각행보를 놓고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린다.
그룹내 가장 큰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경험이 얼마 되지 않은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무리수'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IMF 외환위기 시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 그룹 내 랭킹 2위인 코리아나화장품을 과감히 매각, 30대 그룹으로 도약한 전례를 들며 '승부수'를 띄웠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사진=뉴시스)
◆승부수… 코리아나화장품 버렸듯 '곧 바닥친다'
아무래도 '승부수'로 보는 시각은 코리아나화장품 매각 건의 '데자뷰'로 이해하는 쪽이다.
윤 회장은 IMF 외환위기 당시 웅진도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연간 매출액 2500억원을 기록하며 화장품 업계 2위였던 핵심 계열사 코리아나화장품을 과감히 매각했다. 그 때에도 윤 회장은 "가장 잘 나가는 회사를 팔아야 다른 계열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웅진코웨이의 개인지분 28.5%를 내놨었다.
코리아나화장품이 352억원에 팔린 후 윤 회장은 매각대금 중 100억원을 웅진식품에, 20억원은 웅진미디어에 현금 출연했고 나머지 232억원도 웅진출판·웅진코웨이·웅진식품 등의 증자자금으로 사용하며 훗날을 기약했다.
특히 매각대금의 상당부분을 웅진코웨이에 투입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웅진코웨이는 윤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정수기 업계 최초로 렌털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코디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방문판매 형식의 영업방식이 시장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그룹 전체 매출의 24.6%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떠올랐다. 웅진그룹도 영향을 받아 매출 6조원에 이르는 3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웅진그룹 관계자는 "(코리아나화장품 매각) 당시에도 내부 반대가 컸지만 제2의 도약을 이루자는 윤 회장의 결단이 결국 오늘의 30대 그룹으로 키워내는 발판이 됐다"고 설명했다.
웅진코웨이는 매각했지만 이 회사의 자회사인 웅진케미칼과 브랜드 '리엔케이'를 보유한 화장품 사업부를 그대로 그룹 계열사에 귀속시킨 점도 윤 회장의 숨겨진 '묘수'로 보인다.
특히 화장품 사업부는 '리엔케이'가 비수기였음에도 시장 인지도가 상승하는 등 지난해 3분기 매출 176억원을 달성, 매장 하나 없이도 당시 누적매출 529억원을 기록하며 윤 회장이 코리아나 화장품에서 품은 한(恨)을 풀어줄 '대항마'로 평가받았다. 따라서 웅진코웨이 매각에서 화장품 사업분야가 제외된 만큼 향후 윤 회장이 '리엔케이'를 앞세워 화장품 사업에 대한 열의를 다시 불태울 것으로 전망된다.
◆무리수… 건설업 '최악', 태양광 '고전'
'웅진'이라고 하면 웅진코웨이가 절대적으로 떠오를 만큼 그룹의 대표 계열사를 매각한 것은 '무리수'라는 업계의 평가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시각은 윤 회장이 정수기 사업 대신 태양광과 건설 분야에 '올인'한 전략 자체가 모험성이 너무 강하다는 근거에 기인한다. 실제 웅진은 태양광 사업을 '세계 3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태양광 사업이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위기국면에 처해있는 데다 다른 대기업들조차 이 분야에 하나같이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졌다. 더욱이 혁혁한 성과를 드러내는 기업들 또한 그리 많지 않다. 국내 경쟁사인 KCC나 LG화학만 해도 해당 사업을 축소하거나 잠정중단 혹은 철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 역시 대만과 추진한 폴리실리콘 시험생산계약을 전면 백지화했다.
이처럼 열악한 시장 상황에도 태양광에 대한 윤 회장의 확신은 곧다. 전반적인 태양광 업황 부진에 따라 지난해 웅진의 태양광 사업은 매출 5000억원에 겨우 적자를 면한(세전이익 1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윤 회장은 현재 연산 5000톤 규모의 고순도 폴리실리콘을 양산하고 있는 웅진폴리실리콘을 올 상반기 생산공정 최적화를 추진해 생산규모를 연산 7000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매년 이 회사에 7000억원씩을 투자하기로 방침도 정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향후 윤 회장이 태양광 사업 부문에 집중하기 위해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을 합병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웅진도 피해가지 못한 '승자의 저주'
윤 회장이 웅진코웨이의 매각을 결정한 숨은 이유는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웅진은 지난 2007년 6600억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하면서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당시 론스타로부터 극동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7000억원 이상을 외부에서 끌어들인 것이 문제였다.
물론 차입시점에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라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경기침체가 이어졌고 이에 따른 이자부담이 커졌다. 여기에 부동산 PF대출로 자산건전성이 악화된 계열 저축은행들이 모 그룹에 손을 벌리기 시작했고 작년에만 두 차례에 걸쳐 총 1200억원을 투입하면서 그룹 전체의 유동성관리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현재 극동건설의 차입금만 900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윤 회장의 이번 웅진코웨이 매각을 놓고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에 견줘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