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헤어젤 대신 빗을 사용하고, 비타민제 대신 오렌지를 갈아 마시고, 잡지나 신문도 못 보며 14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지루함을 견뎌내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는 앞에 놓인 맥주를 눈으로만 마시는 갖은 수고를 다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중요한 강연회를 앞두고 준비해둔 옷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급히 새옷을 사 입어야 했던 것.
브랜드 해독 프로젝트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현대 기업의 무시무시한 마케팅의 저력을 담은 책이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다.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얼마나 미묘하고 강력한 전략을 사용하는지 면밀하게 파헤친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책은 매우 상세하고 유용한 마케팅 참고서가 되기도 한다. 갖가지 마케팅 기법을 습득하고 마케팅의 진수를 맛보고자 하는 이에게는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1957년 밴스 패커드(Vance Packard)는 <숨어 있는 설득자>라는 책에서 기업과 마케터들, 그리고 광고업체들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홀리고 물건을 사도록 부추기기 위해 활용하는 심리적 전략과 전술 속에 감춰진 비밀들을 폭로했다. 그 후 6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기업과 마케터들은 훨씬 더 기술적으로 진화했다. 첨단 도구 및 기술, 소비자 행동, 인지심리학, 신경과학 분야의 축적된 연구성과들 덕분에 기업들은 사람들의 두뇌를 스캔하고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과 욕망을 포착하는 게 가능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일컬어 '브랜드워시'(brandwash)라고 말한다.
브랜드워시의 가장 적확한 예는 키즈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는 최고의 마케팅 도구로서 부모의 소비 행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졸라서 사도록 만드는 힘’을 뜻하는 페스터파워(pester power)는 기업들이 점점 더 어린 소비자들에게 마케팅과 광고를 집중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브랜드는 그 제품을 처음 사용하는 시점이 어릴수록 인생에서 그것을 오랫동안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물림 현상을 유발한다. 부모의 취향과 기호가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어렸을 때 형성된 취향과 기호는 평생 유지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제임스 맥닐(James McNeal) 텍사스 A&M 대학 마케팅 교수는 “충동적인 식품 구매의 75%가 칭얼대는 아이들 때문이다. 엄마 두명 중 한명이 아이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식품을 구매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면 가족 전체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책에서는 이외에도 갖가지 마케팅 기법들의 비밀들이 나열되고 있다. 키즈 마케팅, 향수 마케팅을 비롯하여 공포 마케팅, 중독 마케팅, 성(性) 마케팅, 집단성 마케팅, 스타 마케팅, 환경 마케팅, 관계 마케팅 등에 관해 그동안 숨겨져 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한사람의 소비자로서 전 생활영역에 걸쳐 포진한 온갖 브랜드들이 펼치는 마케팅의 향연을 통해 브랜드워시의 위력을 절감하게 된다. 동시에 마케터들은 치열한 마케팅의 각축장에서 살아남은 최고의 마케팅 무기들을 섭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