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최장기 파업 사태를 겪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노사가 14개월 만에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했다.
 
노사는 두달간 진행된 개인 성과급제 도입과 후선발령제 등 민감한 현안은 앞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성과급제와 후선발령제 현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노조가 재파업을 강행할 수도 있어 불협화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은행권 최장기 파업 불명예… 한발 물러선 노사
 
지난달 29일 SC은행 노동조합은 임단협 타결을 발표했다. 서성학 SC은행 노조위원장은 "28일 늦은 저녁 2년여 임단협의 마침표를 찍었다"며 "전쟁의 승자는 없었고 그릇을 깨기는 쉬우나 그것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그동안 파업으로 힘들었던 심경을 전했다.
 
이번 타협으로 은행권 최장기 파업과 8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난 대규모 명퇴 등 굵직한 이슈를 만들었던 SC은행의 노사 갈등은 일단락됐다.
 
이번 합의로 노조는 호봉제 유지와 복지제도 확대를 획득했고 사측은 명퇴제도 개선과 함께 성과급제 도입 등을 얻게 됐다. 물론 가장 논란이 컸던 성과급제는 사측이 주장한 개인별 대신 노조의 주장을 수용해 원팀인센티브제를 도입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은행은 마켓단위와 영업점단위, 개인단위로 정한 목표의 달성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팀별로 35~120%까지 차등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게 된다. 또 기존 60억원이던 인센티브 금액도 120억원으로 늘려 비정규직까지 혜택을 주기로 했다.
 
상설명퇴제도는 폐지하는 대신 시행주기를 늘려 노조 집행부 임기(3년) 중 최소 한번은 진행한다는데 양측이 합의했다.
 
이에 대해 리차드 힐 행장은 "노사합의에 이르기까지 지난 12개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다시는 고객들이 지난해와 같은 불편을 겪지 않도록 노사가 힘을 모아서 최선의 서비스로 고객에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서성학 위원장은 "이번 합의는 노사가 서로 한발씩 물러나면서 이뤄진 결과"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 사항에 대해서는 우선 합의했으며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항은 TF를 구성해 협의키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노사 협의안을 완전 타결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당수 현안이 3월 중 열리는 TF에서 재논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금융권 최장기 파업의 원인이 됐던 후선발령제도나 명퇴문제 등에도 '향후 협의'라는 단서가 달려있는 상황이다.
 

사진=류승희 기자 

 
◆아픔만 남은 대규모 구조조정
 
그렇다면 지난 14개월간 SC은행 노사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SC은행과 노조는 지난해 6월27일부터 8월29일까지 성과급제와 후선발령제, 상설명퇴 폐지 등을 두고 치열한 기 싸움을 펼쳤다. 사측은 개별 인센티브제와 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매년 희망자에 한해 최대 24개월치 급여를 지급했어야 하는 상시명예퇴직제도 폐지를 추진했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사측이 주장하는 제도를 모두 수용하면 직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크게 저하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노사는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노조가 장기 파업에 돌입했고, 이 과정에서 SC은행 340개 지점 중 42개 지점이 문을 닫았다. 당연히 SC은행의 실적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SC은행 존폐위기와 한국 철수설이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다.
 
영업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노조는 결국 고육지책으로 작년 9월 초 일부 직원들만 복귀해 영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SC은행은 작년 12월 대규모 구조조정 단행을 위해 특별 명예퇴직 신청을 했고 전체 직원 6400명 중 무려 84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SC은행 측은 "특별 명예퇴직 신청은 노사와 합의해 진행한 것"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적지 않은 손실을 봤다는 평가다. 사측이 내보내려는 직원은 그대로 있고 프라이빗뱅커(PB)와 프라이어리티뱅커(PRB) 등 핵심인력들이 대거 명예퇴직을 신청해 떠났기 때문이다.
 
PB는 예치금 10억원 이상의 고액자산가를, PRB는 1개월 수신평잔 5000만원 이상 또는 월급여 800만원 이상의 고객을 관리하는 은행 내 핵심직군이다. SC은행은 전국에 7개의 PB센터를 운영하면서 고객 한명당 2명의 전담직원을 배치해 '듀얼케어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PB영업에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문화된 PB를 한명 키우려면 통상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이들이 퇴직할 경우 전담고객들이 같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 은행 입장에선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실추된 이미지 회복이 지상과제
 
길고 길었던 노사간 밥그릇 싸움은 핵심직군 인력의 손실 외에도 대외적으로 SC은행에게 많은 타격을 줬다.
 
우선 고객을 잃었다. 한때 업계를 이끌면서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던 제일은행을 모태로 했지만, 지난해 영업점 폐쇄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고객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떠나는 고객들이 많았다.
 
또한 외국계 은행은 사회공헌 등 공익사업에 인색하고 자기 배만 불리는 은행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높은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노사간 갈등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배가시키며 신뢰성도 실추시켰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생명은 신뢰성인데 SC은행이 이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리차드 힐 행장이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적·효율성 저하… 산 넘어 산
 
SC금융지주는 지난해 대외 이미지뿐만 아니라 실적과 영업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분기 실적자료를 분석한 결과 SC은행의 이익경비율은 191.9%로 한국씨티은행(94.0%), 외환은행(93.9%)에 비해 두배 이상 높았다. 이익경비율(판매관리비·영업이익)은 금융회사의 영업효율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낮을수록 영업효율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적도 크게 낮아졌다. 런던의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발표한 실적을 보면 SC금융지주의 이익은 5억5600만달러(6316억원)로 전년보다 12% 줄어들었다. 반면 영업비용은 10% 늘어난 3억1200만달러(3488억원)였다. 인프라 투자와 명퇴금 지급으로 인해 증가한 것.
 
이 같은 실적에 대해 SC그룹은 "만족하지 못한다(have not been satisfied)"며 한국법인에 불만을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