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앉아있을 때가 있다. 혼자인 것이 두려워, 외롭고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가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외로워진다. 그게 도시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이거나 자연의 품속이라면 혼자라는 게 가끔은 여유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여유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의 시작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하루 시골 허름한 주막에 앉아 있고 싶었다.


 
경북 예천 삼강리 삼강주막. 2007년에 복원된 삼강주막은 1900년 즈음에 처음 문을 열었다. ‘뱃가할매’로 불렸던 주모할머니는 지난 2005년 89세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넘는 세월 주모로 살았다.

주막 옆에 삼강나루가 있었다. 이 나루터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안동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이었고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올라가기 위해 넘던 문경새재로 바로 전에 있었던 뱃길이었다.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 등 세강이 이 마을에서 모인다고 해서 ‘삼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주막 옆 제방에 올라서면 강줄기 풍경이 보기 좋다. 예전에는 이런 풍경 속에 나룻배가 오갔다고 생각하니 풍경이 운치를 더한다.
 
◆봄 마중 길에 주막에 앉다

우리는 삼강주막에 앉아 봄을 기다리기로 했다. 남도에 상륙한 봄이 북쪽으로 채 길을 내기 전에 우리는 예천까지 봄 마중을 나갔던 것이다.

봄비에 손 시리던 날 충주를 거쳐 예천에 도착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목적지가 낙동강가 초가의 옛 주막이라니 이처럼 술자리 분위기가 기차게 좋은 날이 또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황지우 시인의 시 제목이 생각났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라는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날은 내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날이 흐렸고 비가 오락가락 했으며 그 때 내가 흐린 주점이라고 여기는 삼강주막에 앉아 있는 게 중요했다. 그곳에서는 어떤 이야기라도 다 하거나 들어줄 수 있었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로 표현한 싯구절처럼 몸도 마음도 더 이상 편안할 수 없는 자리였다.



나는 그렇게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모여드는 강가 삼강주막에 앉아 있었다.

500년도 더 산 거대한 회화나무가 강둑 옆에 초가를 비호하는 듯 서 있다. 강물은 낮게 흘렀다. 다리가 없던 시절 그곳은 나루터였다. ‘삼강나루터’를 알리는 표지목이 말뚝처럼 강둑에 박혀 있다. 그 물길은 등짐장수들이 오갔던 길이고,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의 길이었으며, 큰 뜻 품고 한양길로 오르는 젊은이들의 꿈길이었으며, 푸른 자연과 여유 있는 물길이 만들어 놓은 풍경을 즐기는 나들이객들의 뱃놀이 장소였다.
 

가마솥이 걸려있는 부엌 부뚜막

주막집은 새로 단장한 티가 났다. 초가 한동 덩그러니 놓여 있고 너른 마당이 있다. 부엌으로 사용하는 작은 건물이 초가 옆에 있다. 장독대가 옛 정취를 더한다. 초가에 달린 부엌은 옛날 그대로다. 가마솥 거는 부뚜막과 나무문이 있다. 문 옆 벽에는 무엇인가를 기록한 것 같은 표시가 있다.

나중에 들으니 그게 옛날 외상장부였다. 생선가시처럼 사선을 긋고 한줄로 사선의 가운데를 ‘주욱’ 그어버린 그 표시 앞에서 ‘만날 외상술이냐’며 핀잔을 주던 주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낮은 천장과 좁은 방은 아늑했다. 백열전구 불빛이 온화했고 어슬렁거리며 마당을 가로지르는 손님들과 종종걸음으로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마당 풍경이 방문을 통해 보였다.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에 ‘삼강주막’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강가 초가 주막은 그렇게 100여년 동안 나를 기다려 온 것이다. 내가 발길을 놓았을 때 그때서야 나는 100여년 전 어떤 한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그 주막에 앉을 수 있었다.
 
 

◆그날 그는 사랑을 생각했을 것이다

두부와 배추지짐이 메밀묵과 막걸리를 세트로 파는 ‘주모한상주이소’라는 메뉴가 1만3000원이란다. 막걸리는 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초가 작은 방에 앉아 마을에서 키우고 담근 안주와 술을 먹는다는 것은 ‘술자리’ 그 이상의 운치와 의미로 다가온다.

술잔에 담기는 이야기는 언제나 일상적인 것이다. 간혹 뜻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라면 좀 거창한 이야깃거리를 들추어내기도 하지만 뜨내기들의 일상과 일상이 만났던 이런 곳에선 일상적인 이야기가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란 다 그런 것이어서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그 한지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일 수 없다. 따라서 이야기는 매번 새로웠고, 술맛도 항상 신선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잔을 앞에 놓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겠는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는 주막의 분위기며 술맛, 주막 자체의 이야기로 술주전자를 다 비웠다. 그 사이 마당에 저녁이 내렸고 문 밖 공기는 퍼러스름하게 변했다. 방안 백열전구의 주황빛은 더 그윽해졌다.

순간 방 안과 밖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분위기가 맘에 들어 한상을 또 시켰다. 이제는 주막을 감싸고 있는 공간에 시간이 흘러가는 게 보인다.

한상 다시 차린 술자리에서 일행 중 한명이 펜과 수첩을 꺼내들고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벽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약간은 붉어진 얼굴을 숙였다. ‘슥슥슥’ 펜촉이 종이 위를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미혼인 그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는 그대로 그렇게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고 나와 또 다른 친구는 백열전구 빛 퍼지는 방과 퍼러스름한 저녁 공기 가득한 밖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없어진 술자리는 각자의 세계로 몰입하는 입구가 됐다. 그런 분위기도 그런대로 운치 있다고 생각했다. 꼭 말을 해야 말을 하는 것인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그렇게 기대거나 앉아 있었다. 어둠은 제멋대로 주막을 감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주막집 주인아주머니였다. 여닫이문을 ‘삐거덕’ 열고 우리를 바라보며 “자고 갈거냐” 묻는다. “여기서 잘 수도 있느냐”고 되물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인근 민박집을 추천하신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일어서기 아쉬운 자리였다. 주막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고 우리는 몸을 맡길 민박집을 찾아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주막 불빛이 멀어질수록 등이 시려왔다.   
 
◆물도리동 ‘회룡포’

다음날 아침은 어제 저녁 거나한 술자리만큼이나 묵직했다. 정신을 차리고 냉수 한사발로 목을 축이니 정신이 든다.

회룡포를 추천하는 마을 아저씨의 말에 따라 회룡포로 향했다. 회룡포를 보는 방법은 두가지다. 처음에는 회룡포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회룡대에 올라가서 풍경을 감상한다. 그리고 회룡포 마을로 내려가 회룡대에서 보았던 풍경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 마을

회룡대에 올라서 회룡포를 본다. 물길이 마을을 한바퀴 감싸고 흐르는 마을이다. 마을은 그냥 평범한 시골마을이지만 물길이 돌아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 볼만했다. 물길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고 있었다. 강물 안쪽은 모래사장이고 그 안은 논이다. 그리고 마을은 논 가운데 있다. 그들의 생활터전이 여행자의 마음을 푸근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풍경을 감상하고 회룡포 마을로 내려갔다. 낮게 흐르는 강은 차분했다. 강가 모래사장과 마을을 잇는 간이다리가 강을 가로질러 놓였다. 이른바 ‘뿅뿅다리’다.

다리를 건넜다 다시 돌아오는데 아이와 아버지가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온다. 좁은 다리에서 서로 조심스럽게 길을 내어준다. 다리를 다 건너서 뒤돌아보았다. 아버지와 아이는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곳에 살거나 그 마을에 사는 누군가를 찾아가는 길이었으리라. 우리는 백사장을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나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점촌·함창IC - 점촌 시내 지나 산양방면 - 산양면소재지로 들어가 불암사거리에서 우회전 - 59번 도로 타고 풍양, 낙동 방면 직진 - 삼강교 건너 오른쪽 삼강주막. 회룡포는 삼강주막에서 10여km 거리에 있다.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점촌행 버스 이용(오전 6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30분 간격 운행) 점촌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3km 떨어진 시내버스터미널로 이동. 시내버스터미널에서 달지리 가는 버스 이용 종점하차. 삼강교 건너 오른쪽에 삼강주막. 달지리 가는 버스는 오전 6시40분. 7시40분. 9시5분. 10시50분. 오후 12시30분. 2시10분. 3시50분. 5시35분. 7시. 문의 : 점촌시내버스 054-553-2231

*예천에서 가는 방법도 있는데 동서울터미널에서 예천 가는 버스가 점촌 가는 버스 보다 적고 시간도 30분 더 걸린다. 또 예천에서 삼강리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하루 3회 정도밖에 없어 매우 불편하다. 문의 : 예천시내버스 054-654-4444
 
<음식>  삼강주막에서 막걸리와 안주 잔치국수 국밥 등을 판다. 옛 주막 초가집에서 운치를 즐기며 여러 음식을 맛본다. 막걸리 한주전자 5000원. 반되 3000원. 두부 3000원. 배추지짐이 3000원. 메밀묵 2000원. 주모한상주이소(막걸리 두부 메밀묵 배추지짐이 : 1만3000원). 잔치국수 3000원. 국밥 4000원. 계절에 따라 메뉴는 차이가 난다. 막걸리도 직접 빚고 콩을 직접 재배하고 두부도 여기서 만든다. 배추전에 쓰이는 배추도 마을에서 키운 것이다.
 
<숙박>  삼강주막 마을에 황토방과 마을회관, 일반집 민박 등을 할 수 있다.
*황토방 10평 2인 기준 5만원. 추가 1인 1만원. 최대 10명.
*한옥체험관 20평. 20명 기준 20만원. 1인 추가 1만원. 최대 40명.
*마을회관 15평 5명 기준 5만원. 추가 1인 1만원. 최대 12명.
*일반민박 15평 4명 기준 5만원. 추가 1인 1만원. 최대 8명.
문의 : 삼강주막 마을 054-655-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