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허스트는 상어나 젖소, 말 등 동물을 토막내 자른 뒤 각 부위를 유리통 속 포르말린 용액에 담궈 전시한 설치미술로 유명하다. 관람객들은 잘려진 동물 사체 사이를 거닐며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마치 상어 배속에 들어있는 착각까지 든다.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은 해골(진짜 해골을 구해서 만들었다)이나 나비의 날개를 뜯어 붙인 작품도 만들었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알약을 전시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에도 데미안 허스트의 알약 시리즈가 전시돼 있다.
이런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데미안 허스트는 죽음과 영원한 삶에 대한 고민을 그렸다. 엽기적이란 평가도 받지만 생존하는 작가 가운데 가장 비싼 값을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데미안 허스트는 미술품을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으로 인식했다. 작업장을 '팩토리'라고 부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술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도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1달러짜리 지폐를 유명작가가 캔버스에 옮겨 그린다면 그 값은 1달러가 아니다. 몇백, 몇천, 심지어 몇만배의 부가가치가 붙는다.
15억원에 팔린 김환가의 '항아리의 매화'
미국 남부의 명문 듀크대학교 경제학과엔 '아트 마케팅'이란 강좌가 개설돼 있다. 이 강의를 이끄는 닐 드 마르치(Neil De Marchi) 교수는 강의 초반에 학생들에게 이런 충고를 건넨다. "마지막으로 남은 체계화되지 않은 시장에 주목하라!"
그 시장이 미술품 시장이다. 미술품 시장은 여전히 미개척 분야다. 연간 수조원의 거래가 이뤄지지만 누구도 거래 가격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아직 공정한 시장 가격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갤러리에서 일대일 상담을 통해 이마저도 뒷방에서 은밀히 거래가 이뤄진다. 경매 과정에선 '정가'가 아니라 분위기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 달라진다. 제품의 공급과 수요, 정보도 항상 비대칭적이다.
이런 시장이 소위 '대박'이 터지는 시장이다. 정형화된 시장에선 기대 수익률을 얻는게 고작이다. 미술을 '돈'의 시각으로 본다면 무궁무진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대박도 나올 수 있다. 미술 시장을 '예술'로만 보지 말고 '돈'으로도 봐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 미술 시장은 회복됐는데…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세계 미술 시장은 오히려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중국 부자들이 미술 시장에서 강한 식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미술정보 전문업체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거래된 미술품 규모는 115억7000만달러 수준으로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0년에 비해 20억달러 가량 더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09년에 시장 규모가 급감했지만 이내 회복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고가의 미술품 거래는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국 시장의 파워가 막강해졌다. 전세계 미술거래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1.4%로 2위인 미국(23.5%)을 압도하고 있다.
전통의 미술 강국인 영국은 19.3%,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고작 4.5% 수준이다. 유명 경매사인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이 앞다퉈 홍콩과 상하이에 지점을 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
◆이제는 피카소와 헤어질 때
작품에서도 중국 파워는 눈에 띈다. 아트프라이스 편집장은 '이제는 피카소 파블로와 헤어질 때'란 표현으로 지난해 미술 시장을 정리했다. 피카소는 1997년 이후 2010년까지 매년 가장 많이 거래되는 작가 타이틀을 보였다. 부동의 1위였다. 하지만 지난해엔 중국 작가 전성시대가 열렸다. 피카소는 4위로 추락했다.
지난해 거래가 가장 많았던 작가는 중국의 고미술작가인 장다치엔이다. 한해 동안 5억5000만달러어치가 거래됐다. 1361점이 경매에 부쳐져 이 가운데 1128개가 팔렸다. 뒤를 이어 또 다른 중국작가인 치바이스가 거래대금 2위(5억1000만달러)를 차지했고 3위는 앤디워홀(3억2500만달러)이었다.
피카소의 작품은 3억1500만달러어치가 팔려 4위에 그쳤다. 물론 여전히 많은 이들이 피카소의 작품을 찾는다. 거래량으로 보면 2500점가량이 경매에 부쳐졌다. 고가의 작품 거래가 줄어 거래대금은 줄었지만 거래된 작품 수는 가장 많았다. 피카소가 몰락한 게 아니라 중국 작가의 작품이 고가 시장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한해 거래가 가장 많았던 작가 10명 가운데 중국작가는 무려 6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치바이스는 개별작품 최고가 기록도 세웠다.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Eagle Standing on Pine Tree)'는 피카소나 자코메티 등 서양 작가들을 제치고 지난해 팔린 가장 비싼 그림으로 기록됐다. 송백고립도는 지난해 5월 베이징 경매에서 5720만달러에 팔렸다.
◆한국 미술 시장은 언제쯤
문제는 한국시장이다. 한국 미술시장은 글로벌 시장, 특히 중국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주식시장이 급등한 데 반해 한국 미술시장은 침체기를 계속 걷고 있다.
미술시장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918억831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923억5072만원 대비 소폭 감소한 수준이다. 장다치엔 1인의 작품 거래대금의 5분의 1에도 못미친다. 한국 미술시장이 최전성기를 보였던 2007년 경매 기록 1926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고미술 작품이 두각을 나타내며 현상 유지엔 성공했다. 현대미술만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서울옥션의 경매 규모는 323억원 수준으로 전년 502억원 대비 35%나 줄었다.
고가미술품 거래도 뚝 끊겼다. 지난해 거래된 가장 고가였던 작품은 마이아트옥션이 판매한 백자청화운룡문호다. 서울옥션이 선보인 드가의 조각상 열네살의 어린 무용수가 17억5000만원에 팔렸고 국내 작가 작품 중엔 김환기의 '항아리와 매화'가 15억원에 팔려 가장 비싼 값을 받았다.
2010년엔 이중섭의 황소가 35억6000만원에, 샤갈의 동물들과 음악이 41억3620만원에 각각 낙찰된 바 있었다.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이 침체된 것은 글로벌 경기 탓이 아니었다. 미술시장이 살아날만 하면 미술품이 로비수단으로 거론되며 건전한 미술시장 참여자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부실사건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봄 정기 경매에 억대 작품들이 올라오고 있다. 미술품도 즐기고 재테크도 하고 미술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