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힘들게 걸어서 산에 올라가느냐는 질문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쉬 오를 수 있는 산에 오르다 보면, 접근하기 힘든 산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일 것이다.
이십대 후반, 배낭 하나로 서유럽 대부분을 다녔다. 당시 비행기는 고사하고, 기차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비 조차 아끼려 히치하이킹을 선택했다. 요즘은 안전 문제로 타려거나 태워주는 사람도 없지만, 거의 삼십년 전에는 소박한 인정이 넘쳐 수 백 킬로미터 동반 이동은 물론 잠자리나 아침까지도 대접 받았다.
<b>히말라야 산길에서 마주친 자전거 여행가 기억에 남아</b>
2007년 여름, 버스를 타고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던 히말라야 산길에서 한 자전거여행가를 스친 적이 있다. 그를 보는 순간, 안락한 버스로 여행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버스에 앉아 경치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내 발로 땅을 밟으며 바람을 맞는 자전거 여행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좋은 경치 다 떠나 왜 홀로 사막 여행인가?
<b>지나쳤던 사소한 것도 소중···삶은 기대와 희망에서 비롯</b>
민가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식수가 바닥 나 몹시 걱정스러운 적이 있었다. 물 1리터만 있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몇 킬로미터 앞에 민가가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페달은 힘찰 것이다. 아니,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만으로도 페달은 바빴다. 인간은 실낱같은 기대감이나 희망만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몸소 깨우치게 된다. 대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혹독한 도심 생활이든 척박한 사막에서든 생존의 변수는 돈, 재물, 직위보다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일 것이다.
사막에서 성공적인 생존자는 가까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경험이나 지식, 도구를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기응변이 통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맨손으로 타이어를 벗겨 펑크를 해결한 적도 있다. 어떤 일이든 생존자들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야 만다.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이끄는 힘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