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25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바로 소련이 붕괴된 날이기 때문이다. 1922년 12월에 결성된 소련(정식 명칭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 USSR).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며 군림하던 소련은 달랑 한 장의 성명서로 69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옐친 러시아 태통령과 크라브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슈슈케비치 벨라루스 대통령이 합의한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성명서로…
스탈린의 소련이 ‘해방군’으로 독일과 북한에 진주하고, 미국과의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던 ‘쿠바 위기’ 게임을 하며, 체코와 헝가리 등에 불었던 자유화 바람을 탱크로 무지막지하게 짓밟았을 때만 해도 소련이 무너질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봄과 여름 뒤에는 가을과 겨울이 오며,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절대 붕괴되지 않을 것 같던 ‘철의 장막’은 1991년 12월25일에 슬그머니 허물어졌다. 레닌과 스탈린, 후르시초프와 브레즈네프로 이어진 권력 승계가 5대 째인 고르바초프에서 맥이 끊어졌다(물론 최고 통치권자의 사망 직후 권력 투쟁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대권을 잡았던 말렌코프나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등이 있지만 큰 흐름에서 제외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군자지택 오세이참(君子之澤 五世而斬)
“군자의 은택(恩澤)도 5대가 되면 끊어지고 소인의 은택도 마찬가지로 5대가 되면 단절된다(君子之澤 五世而斬, 小人之澤 亦五世而斬).” 『멍쯔(孟子)』의 이루장구(離婁章句) 하(下) 제22장에 나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권력이나 재산이 5대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이 말은 “부자는 3대를 잇지 못한다(富不過三代)”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하다.
5대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1대는 온갖 어려움을 도전과 혁신으로 극복하며 창업한다. 기업가 정신이 풍부하고 자신의 기업과 국가를 이루겠다는 열정도 뜨겁다.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에 매달려도 피곤한 줄 모를 정도다. 기업과 국가를 어떻게 세우고 운영해 나갈 지에 대한 비전과 철학도 뚜렷하다. 나아갈 방향과 실현할 목표가 명확하니 따르는 사람도 많다. 창업과 건국 초기에 다소의 어려움이 있지만 날이 갈수록 번영의 기틀이 잡힌다.
2대는 창업자와 함께 보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혀 한발 더 발전시킨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은 (馬上得天下)’ 창업자의 도전과 열정에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으니(馬上不治天下)’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인재를 등용하면서 수성(守城)의 기틀을 다진다. 2대에서 기반을 어떻게 닦느냐에 따라 기업과 국가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가 결정된다.
3대는 갈림길이다. 창업자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서 도전과 열정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지만, 수성의 기반을 닦기 위해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2대의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 기업 경영과 국정 운영의 철학과 실력을 쌓는다.
4대는 내리막의 시작이다. 태평성대가 이어지고 긴장이 풀린다. 외부 위협이 줄어들면서 사소한 내부 문제가 갈등을 일으킨다. CEO와 왕은 술과 여색(女色)을 밝히며 경영과 국정보다는 향락적 삶에 더 빠져든다. 이 때 내부 개혁세력이 등장해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 1세대로의 복귀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예는 매우 드물다.
5대는 파국이다. 4대가 보여준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보다 더 퇴폐로 치달으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뜻이 있는 인재가 떠나고 감언이설을 속삭이는 간신(奸臣)들이 넘쳐난다. 이익이 적자로 반전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며 외침(外侵)이 점점 늘어나지만, 리더는 듣기 좋은 말만 듣고 듣기 거북한 현실은 애써 외면한다. 오히려 충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며 스스로의 무덤을 판다.
‘군자지택 오세이참(君子之澤 五世而斬)’ 사례는 많다. 멀리는 중국 당(唐)의 태조에서 태종을 거쳐 현종(양귀비와 함께 당을 말아먹었다)에 이르는 창업과 수성 및 멸망의 수순이 대표적이다. 태조 태종 세종과 세조에 이어 선조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도 비슷하다. 근대에서는 소련의 흥망성쇠가 유명하다.
◆5代 맞는 중국의 선택; 5代 만에 막 내린 소련?
중국은 내년에 5세대가 시작된다. 중국 1세대는 1921년 7월,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이후부터 1976년9월 사망할 때까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다. 마오 주석은 1950년대 후반의 ‘따위에찐(大躍進)’과 1960년대 후반의 ‘원화따거밍(文化大革命)’이란 씻기 어려운 실책(失策)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주시(主席)’로 불린다. 수천년 동안 핍박받아온 농민을 해방하고 중국 국민을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2세대는 1978년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해 중국 현대화의 기틀을 다진 덩샤오핑(鄧小平) 총서기다. 덩 총서기는 마오 주석과 함께 중국의 공산당 혁명을 함께 성공시킨 ‘혁명세대’이다. 하지만 원화따거밍 때 3년 동안 유폐생활을 하며 한때 생명의 위협까지 당할 정도로 박해를 받았다. 마오 주석이 사망한 뒤 재기에 성공해 마오 주석과 다른 지도 노선을 펼쳤기 때문에 2세대 지도자로 불린다. 그는 국가 주석은 맡지 않았지만,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지키며 1997년2월 9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실권을 유지했다.
3세대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고 4세대는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이다. 장 전 주석은 ‘3개 대표론’을 주창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한단계 더 밀고 나갔다. 농민과 노동자에 이어 기업가와 자본가에게도 공산당 입당을 허용했다. 후 주석은 ‘과학적 발전관’을 내세워 그동안 성장에 중점을 뒀던 것에서 함께 잘사는 ‘허시에(和諧)’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배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은 오는 10월~11월에 열릴 예정인 ‘제18차 중국공산당 대표회의(당대회)’에서 내년부터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어 갈 9명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선임한다. 현재 상무위원인 시진핑(習近平) 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각각 주석과 총리로 선임될 게 거의 확실하다. 나머지 7자리를 놓고 후 주석의 공칭투안(共靑團)과 장 전 주석의 상하이방(상해방)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선친(先親)이 혁명세대인 타이즈탕(太子黨)도 두세력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자의 몫을 챙기기 위해 바쁘다.
누가 상무위원으로 선임되든 5세대 지도자는 신중국(중국에선 공산당이 국민당 정부를 물리치고 1949년에 공산정권을 수립한 것을 신중국이라 부른다) 건국 이후에 출생했고, 원화따거밍 때 농촌으로 가서 육체노동 단련을 받은 뒤 원따(문화대혁명의 줄임말)가 끝난 뒤 정식으로 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신세대’다.
시 부주석과 리 부총리를 쌍두마차로 하는 중국의 5세대 지도자들은 ‘군자지택 오세이참(君子之澤 五世而斬)’의 역사법칙을 어떻게 극복할까. 5세대 리더들은 마오 주석과 덩 총서기를 1세대로 묶고, 장 전 주석과 후 주석을 2세대로 한 뒤 3세대로서 활력을 발휘하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완성해 다음 세대의 영화를 약속할까. 아니면 ‘군자지택 오세이참(君子之澤 五世而斬)’의 5세대로 난관에서 좌절할까. 앞선 사람들의 경험에서 배우고 변하기 위해 노력하느냐, 이번에는 다르다며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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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린다. 1년에 왕래하는 사람이 600만명을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초과했다.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2년까지 국교가 단절돼 있던 44년 동안, 매우 멀어졌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는 좁혀야 할 게 많다. 차이나 리프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2주에 한번씩,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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