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만에 다시 잡은 기회다. 한국에 라면제품을 최초로 선보이며 업계 1위를 유지하던 삼양식품은 1980년대 말 공업용 우지라면 파동으로 농심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최근 '나가사끼 짬뽕'으로 1위 탈환의 기회를 엿보기까지 오랜 인고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화려한 최근 실적에도 불구하고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은 깊은 근심에 빠진 듯 하다. 18세 아들의 경영승계 과정을 둘러싼 '꼼수' 논란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최근 리니언시(담합자진신고자감면제도)로 100억원대 과징금을 면제 받아 '얌체 행각' 논란까지 불거졌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 부당이득 안 뺏기려 담합 자수 ‘얌체’ 경영?
 
지난 22일 서민 먹거리의 대명사인 라면값 담합이 포털사이트 급상승 검색어에 등장했다. 식품업체들이 무려 9년간 가격인상 정보를 주고 받으며 라면값 담합을 주도했다는 뉴스가 뜨고 나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담합에 참여한 업체는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사. 업계 1위인 농심이 가격 인상 정보를 삼양에, 삼양은 이를 다시 오뚜기와 한국야쿠르트에 넘기는 식으로 가격을 순차적으로 올려왔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가격 인상을 주도한 농심 1077억원, 삼양식품 116억원, 오뚜기 97억원, 한국야쿠르트 62억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그런데 공정위 발표 직후 업체들의 반응이 판이했다. 농심을 비롯한 3사는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가격 인상 정보일 뿐이다"며 "담합사실이 없다"고 억울해했다. 그러나 유독 삼양식품은 "추가로 진술할 게 없다"며 공정위 조사에 협조했음을 밝혔다.

결국 삼양식품은 116억원의 과징금을 면제 받았다. 기업의 자수를 유도하는 리니언시 덕분이다. 은밀하게 벌어지는 불공정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마련된 리니언시는 자진신고 1순위 업체의 과징금을 100%, 2순위 업체는 50%를 면제해준다.

공정위가 발표한 9년의 담합기간 동안 삼양식품은 업체들을 잇는 핵심적 다리역할을 해왔음에도 과징금을 한푼도 내지 않게 된 것이다. 현재 삼양식품은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관련업계에선 삼양식품의 자진신고가 이번 라면값 담합 적발의 결정적 근거로 작용했다는 해석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전 회장 일가가 담합을 통한 9년간의 부당이득을 아무런 대가 없이 취하게 된 이번 결과에 속이 끓는 건 소비자들 뿐만이 아니다. 업계에서도 자진신고를 선택한 전 회장의 속내가 무엇인지 설왕설래가 분주하다. 현재로서는 1위인 농심에 치명타를 입히고, 그 반사이익을 취해 1위를 탈환하려는 노림수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농심이 슈퍼마켓조합의 집단 반발 등 안팎으로 타격을 입고 있던 시기와 묘하게 맞아떨어진 것도 의심을 키우고 있다. 나가사끼 짬뽕으로 반전 분위기를 탄 삼양식품으로서는 반사이익을 통해 농심과 시장점유율 격차를 줄이며 1위를 되찾아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봄직 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농심은 이번 담합 발표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물론 1년 순익과 맞먹는 10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만큼 재정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심측은 담합이 사실이 아닌 만큼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나가사끼로 18세 자식 배불리는 ‘꼼수’ 경영?
 
그러나 전 회장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다름아닌 그의 아들 전병우 군이다. 전중윤 명예회장이 1924년 설립한 삼양식품은 철저하게 가족중심의 지배구조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삼양식품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33.26%를 보유한 삼양농수산이다. 삼양농수산 지분의 21%를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부인인 김정수 사장은 42.2%를 갖고 있다. 나머지 26.8%는 비글스라는 회사가 보유 중인데, 이 비글스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이가 바로 병우 군이다. 삼양식품-삼양농수산-비글스를 통해 오너일가로 경영권을 집중해 놓은 셈이다.

비글스는 전 회장의 아들이 13살 되던 2007년 1월 '과실 및 채소 도매업'을 업종으로 설립된 회사다. 특히 비글스는 그동안 삼양식품의 보유주식을 거래하며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겨왔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전 회장 일가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주가차익으로 오너 3세를 위한 쌈짓돈을 만들어 온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비글스가 삼양식품 보유주식을 매도할 때마다 시기가 절묘했기 때문이다. 비글스는 지난해 7월 집중적으로 삼양식품의 지분 14만3290주를 팔아 42억원의 시세차익을 누렸다. 당시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기 전후로, 삼양식품은 대관령 목장 덕에 수혜주로 꼽히며 주가가 1만7000원에서 3만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주가는 다시 기존 수준으로 떨어졌고, 한달 만에 약 100%의 수익을 거둔 비글스는 다시 6만주를 사들였다.

지난해 말 '나가사끼짬뽕 열풍'과 함께 삼양식품의 주가는 무려 50~60%가량 다시 한번 치솟았고, 비글스는 이 시기에 보유주식을 집중적으로 거래하며 약 4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문제는 당시 삼양식품이 내놓은 허위 보도자료다. 지난해 12월1일 삼양식품은 '나가사끼 짬뽕, 이마트 판매 1위'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비글스는 이후 6일간 12만4690주를 집중적으로 매도했다. 실제로 허위 보도자료 발표 이후 삼양식품의 주가는 순식간에 12%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비글스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며 의혹은 일파만파 증폭되고 있다. 비글스는 사무실도 직원도 없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 운영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10대에 불과한 전 회장의 아들이 어떻게 5000만원의 창립자금을 마련했는지, 또 2010년 기준 6억원이 넘는 매출은 어떻게 거둔 것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