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직원 중 3500여명은 여전히 전환직군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3000명의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지 5년이 넘었는데 (사측은) 이들에 대해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임혁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지난 2일, 임 위원장은 경기도 인천 서구청 옆 마실 거리 야외공연장을 찾았다. 그는 이날 오전 11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금융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도시락토크 행사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명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인천까지 달려왔다고 한다.
 
우리은행은 2007년 금융권 최초로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곳이다. 현재까지도 비정규직을 채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뜬금없이 노조위원장이 비정규직 직원을 위로해주기 위해 방문한 한명숙 대표를 만나려 한다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은행 직원들이 겉으로는 그럴듯한 정규직이지만, 이중 3500명의 직원들은 일반직군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12월30일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오른쪽)과 마호웅 전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이
그뮹권 최초로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합의하며 서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은행 말로만 정규직화… 전환직군 꼼수?
 
2006년 12월 당시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금융권 최초로 비정규직 직원 3100명을 2007년 3월1일자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앞으로 비정규직은 채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로 사회 전반이 시끄럽던 상황에서 우리은행의 이 같은 조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때 노사 간에 합의한 내용 중 논란의 여지가 남는 부분이 직군제다. 과거 시중은행들의 직군은 크게 일반직군과 텔러직군으로 분류됐다. 일반직군은 대학 졸업 후 공채로 은행에 입사하는 직원들이다.
 
텔러직군은 고졸이나 대졸로 입사해 은행의 창구업무만 담당한다. 과거에는 일반직군과 텔러직군을 분류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었지만 지난 2007년 금융권이 대대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텔러직원들도 모두 고용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 형태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강한 직군이 '무기계약직'이다.
 
우리은행은 2007년 3월 이후 무기계약직을 도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개념의 직군제가 전환직군이다. 우리은행 전환직군 직원들의 업무형태를 보면 3500명 가운데 70%가 창구직원이다. 나머지 30%는 은행과 카드분야에서 텔레마케터(TM)와 고객상담, 여신·외환·수신 상담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상암동 콜센터 직원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문제는 전환직군은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없고 급여도 일반직군의 70% 수준이라는 점이다. 또한 승진에서도 일반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일반직군으로 전환이 가능한 '직군 전환시험'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시험에 통과하면 전환직군 전체 인원 중 10% 수준을 일반직군으로 전환해준다.
 
하지만 일반직군 시험에 합격하면 과거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노조 측의 지적이다. 임혁 위원장은 "전환직군의 경우 임금협상을 따로 하고 있는데 일반직군 직원들의 급여가 인상될 때 이들은 동결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말로만 정규직일 뿐 차별대우는 비정규직일 때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은행이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하지만 내부를 보면 꼼수나 다름없다"며 "창구직원들의 경우 일반직군 직원들에 비해 업무량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2조원대의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 비용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에서 이 문제를 5년 만에 제기한 것도 이 같은 일반·직군전환의 차별을 최대한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우리은행이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지 5년이 넘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차별에 대해서는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이러한 제도개선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 간의 차별과 벽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며 "올해부터 사측과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전환직군 직원들이 일반직군으로 전환되면 과거 경력을 모두 인정해주고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다"며 "급여는 다소 차이가 나지만 그밖의 모든 복지 등은 차별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 류승희기자
 
◆은행 노조 직원 차별 철퇴 본격화
 
물론 이는 우리은행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명칭만 바꿔 정규직원들과 차별을 두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간의 분쟁을 보면 가장 큰 논란이 일고 있는 곳은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지난 2월 무기계약직 차별을 없애기 위해 국민은행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국민은행은 2년간 계약직을 거쳐 2년간 무기계약직으로 더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상자가 된다. 문제는 이들이 시험을 거쳐 정규직이 되면 우선 회사에 사직서를 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전 먼저 퇴직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 4년에서 많게는 10년이 넘는 경력이 모두 무시된다. 사실상 신입사원으로 재입사를 해야 하는 셈이다.
 
현재 이런 직원들은 약 900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급여도 삭감된다. 또한 동기에 비해 승진시기도 늦어 오히려 더 힘들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사측에서 해결의지가 높아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병권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현재 제소가 진행 중"이라며 "결과는 올해 안으로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사측에서 다시 협의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가급적 국가인권위원회의 판결을 기다리기보다는 사측과 합의하려고 노력 중인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