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다. 차가 달리는 속도만큼 차창에 사선을 긋는 빗방울 때문에 창문 너머 세상 것들이 추상화가 된다. 빗방울은 창 밖 풍경을 흩뜨리거나 뭉개는 게 아니라 추상으로 재구성 한다.
이번 목적지는 단양 읍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방곡리다. 버스도 하루에 몇대 안 다니는 곳이다.
◆걷기에도 좋은 20리 고갯길
읍내를 빠져나간 버스는 큰 길 안쪽 작은 마을까지 들락거리며 사람을 내리고 태웠다. 풍경들이 지루해질 때 쯤 마음을 사로잡는 경치가 눈앞에 나타났다. 냇물이 맑아 모래바닥이거나 자갈바닥이거나 가릴 것 없이 그 속을 다 드러낸다. 물가에는 크고 작은 기암들이 이어진다. 그 물길 건너편에 수직 단애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사인암이다.
버스는 시내와 수직절벽과 소나무숲과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곳을 아주 천천히 통과하고 있다. 이제 길은 두갈래다. 오른쪽으로 가면 선암계곡이고 왼쪽으로 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방곡리다.
사인암에 마음을 빼앗겨 방곡리는 생각의 뒷방으로 물러났다. 버스는 직티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른다. 우리 뒤를 따라오거나 마주치는 차가 하나도 없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나뭇가지가 차창을 긁는다. 길 왼쪽에 있는 계곡이 있는데 물이 말랐거나 흐르지 못하고 고였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마셨다. 흩뿌리는 빗방울이 얼굴을 적셨다. 상쾌했다. 차는 ‘그르렁’거리며 힘겹게 고개를 올라간다. 그때서야 알았다. 아, 이곳이 ‘빗재’구나. 떠나오기 전 찾은 자료에서 본 ‘빗재’가 생각났던 것이다. 지도에서 사인암 지나 실 같이 표시된 도로가 지금 내가 넘고 있는 고개, 빗재다.
고개는 경사가 있었지만 심하게 구불거리지 않았다. 고개 마루를 넘어 내리막을 달리는 차가 도착한 곳은 방곡리도예촌이다. 빗줄기가 심해져 우리는 우선 가게로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간 가게에서 막걸리도 팔았다. 생두부에 막걸리 한병을 시켜 허기를 달랬다. 비는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일행에게 방금 넘어 온 고갯길에 대해 물었다.
“사인암에서 여기까지 걸어올걸 그랬지? 비만 안 오면 말이야.”
일행도 내 말에 동의했다. 8km 정도 되는 계곡과 숲이 있는 길, 게다가 빗재라는 고개도 넘어야 하니 그 운치가 평탄한 길과는 사뭇 달랐다.
◆사발에서 요강까지 땅만 파면 나오는 사기들
시골마을까지 찾아든 우리가 궁금했던 지 아줌마가 “답사 다니는 사람들이냐”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우리는 “방곡리가 도예촌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왔다”고 대답했다.
미답의 여행지를 답사하는 일 중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가게나 식당이다. 물 한병, 밥 한끼 사 먹으며 마을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대부분 여행을 떠나기 전 조사한 자료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만,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료에 없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도예촌 이야기를 들으려는 우리의 마음을 읽은 가게 아줌마는 잘 아는 도예가를 소개시켜 줬다. 뿐만 아니라 당신 아들 차를 타라시며 아들보고 우리를 그 도예가 집까지 태워주고 오라신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때마침 가마에 크고 작은 작품들을 집어넣고 있었다. 우리는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바위산의 기운이 날카롭다. 뼈가 드러난 것 같이 푸른 산 곳곳에 기암바위가 불거졌다.
작업을 마친 주인이 집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손수 지었다는 나무집은 천장이 높고 거실이 넓었다. 통유리 밖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산줄기들이 보인다. 그 농담으로 원근을 가늠할 수 있으니 산골짜기 풍경이 수묵화가 될 법하다. 찻잎 우려낸 차 한잔의 그윽한 향은 화룡점정이다.
주인아저씨는 차 한잔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곡리는 조선시대에도 사기를 굽던 가마가 많았다. 서민들이 사용하는 백자와 분청자기를 주로 구웠다. 집과 가마터를 잡으려고 땅을 파는 데 옛날 자기 파편이나 온전하게 모습을 갖춘 사발이나 요강들이 나왔다. 그것들은 옛날 이 산골짜기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아저씨가 옛 어른들에게 들은 얘기를 잇는다. 황정산과 수리봉 자락 골짜기 마다 가마가 있었고 가마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자욱했다. 마을에는 도자기 재료인 흙을 만드는 사람, 가마에 땔 나무를 구하는 사람 등 도자기 만드는 일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으나 많은 사람이 직접 도자기를 빚고 구워낼 줄도 알았다.
그렇게 만든 사기그릇과 요강 등 생활자기들을 우마차에 싣고 빗재를 넘어 사인암 마을을 지나 단양까지(지금의 단성면. 옛날에는 단양의 중심지가 단성이었다) 30~40리 길을 나가 팔았다. 그 맥은 일제강점기 때도 끊어지지 않았다. 6․25 전쟁도 이 산골짜기는 피해갔다.
방곡리마을, 도예톤 방곡리 도예가들이 만든 작품
◆흙과 불로 만들어가는 방곡리 새 세상
1980년대 말까지 방곡리는 변변한 찻길이 없었다. 충북과 경북을 잇는 비포장도로로 하루에 몇대의 버스가 지날 뿐이었다. 30여년 전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호롱불을 피우고 살아야 했다. 더 오래 전에는 소나무가 산에 빽빽했다. 우마차길이었던 빗재 주변 산과 방곡리 저잣거리 앞 월악산줄기에도 자기를 굽는 땔감은 넘쳐 났다.
주인아저씨가 어릴 때 어렴풋한 기억을 꺼낸다. 도자기 만드는 원주민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와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 외지로 실어 날랐다. 매일 아침이면 저잣거리 앞 시냇물이 집마다 나오는 쌀뜨물로 뿌옇게 물들 정도였다. 그들이 베어내는 나무만큼 산은 야위어 갔다. 일꾼들은 돈 생기는 날이면 술독에 빠져 살았다. 기생집도 늘었고 젓가락 장단과 술타령에 방곡리의 밤은 깊어 갔다.
메뚜기떼가 지나간 것처럼 벌거숭이산을 만들어 놓고 그들은 또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렇게 지나간 한차례 폭풍에 마을은 황폐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녹화사업이다 뭐다 해서 산에 나무를 심어 웬만큼 푸른 산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홍수가 마을을 집어 삼켰다. 70년대 1만여명의 수재민을 낳은 단양 홍수를 시작으로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면서 많은 물난리를 겪어야 했던 단양이었다. 그중 방곡리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홍수는 94년 일이었다. 산이 무너져 논이며 계곡을 다 메우고 길을 없앴다.
아기자기한 계곡과 골짜기를 메운 예쁜 다랭이논이 다 사라졌다. 살던 집마저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지나간 홍수를 딛고 마을사람들은 다시 집을 짓고 마을을 가꾸었다. 끔찍했던 자연재해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도로를 넓히고 포장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오지가 아니었다.
지척에 사인암이며 선암계곡 등 뛰어난 경치가 있어 찾는 사람도 늘어갔다. 당시에 방곡리 사람들이 생각한 게 도예촌이었다. 도자기를 구워내던 400년 역사의 맥이 현재에 다시 살아나던 때였다.
방곡리 토박이 도예가들은 물론 외지에서 찾아온 도예가들이 가마를 만들고 도자기를 구워냈다. 거기에 우리 전통의 익살꾸러기인 ‘도깨비’를 캐릭터로 만들어 도자기와 함께 알려나갔다. 저잣거리 앞 냇가는 물고기를 잡는 체험장도 만들었다. 외지에서 놀러온 아이들은 도자기도 만들고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을 수 있게 됐다.
도깨비 모양의 장승
◆도예촌 방곡리
1300도를 넘나드는 불기운에 흙이 녹아내리면서 구워진다. 손길 정성으로 빚은 백자, 분청, 옹기며 자기, 찻잔에 막사발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 가지 않는 게 없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마을에 있는 도자기 전시 판매장에 진열된다. 서민들과 가까웠던 옛 방곡리 가마골의 정서가 지금도 이어진다.
저잣거리, 빗재에 걸쳐 십여가구 남짓 사는 방곡리 마을. 옛날만큼 많은 사람이 살지는 않아도 마을 사람들은 도예촌 방곡리를 가꾸며 살아간다. 마을 식당 반찬그릇도 이곳에서 구워낸 자기다.
방곡리 청년들은 일이 끝난 밤이면 한곳에 모여 밴드 연습을 한다. 흙과 불로 만들어 가는 세상, 방곡리 도예촌에 울리는 투박한 질그릇 같은 음악소리를 상상해 본다.
버드나무가지 늘어진 저잣거리 앞 가게에 앉아 우리는 빗재를 넘어 사인암을 지나 단양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분청, 백자 같은 순박한 마음 하나 담아 간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단양IC - 단양 방면 우회전(5번 국도) - 장림사거리에서 사인암 방면 좌회전(927번 도로) - 직진 - 사인암삼거리 우회전(가산리방면) - 직티삼거리 좌회전(문경방면 : 1호 군도) - 직진 - 빗재 넘어 방곡삼거리 - 방곡리
대중교통
동서울에서 단양 가는 버스
06:59. 08:00. 09:00. 10:00. 11:00. 12:00. 12:59. 14:00. 15:00. 16:00. 17:00. 18:00
1만2700~6400원. 2시간30분 소요.
청량리에서 단양 가는 기차(단양역은 단양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06:10. 08:10. 10:25. 13:00. 15:00. 17:00. 19:00. 21:00(평일 주말 등 날에 따라 약간의 변동 있음)
5200~1만6300원. 2시간10분~2시간30분 정도 소요.
현지교통
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재래시장을 통과해서 큰길로 나온다. 큰길을 건너 패밀리마트 앞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방곡’행 버스를 타고 방곡도예촌(방곡리 저작거리)에서 내리면 된다(단양에서 방곡까지는 약 27킬로미터 정도 된다).
군내버스 출발지점인 고수대교 출발시간이 07:35. 09:00. 10:30. 13:15. 14:50. 17:45. 고수대교에서 패밀리마트 앞 시내버스정류장까지 가까우니까 고수대교 출발시각에 맞춰 패밀리마트 앞 시내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면 된다.
<숙박>
방곡마을에 펜션이 몇곳 있다. 학교 건물을 숙소로 만든 곳도 있다. 학교 건물 숙소는 작은 방 5만원, 큰방 8만원이다. 사인암(방곡리에서 8km 정도 되는 거리)에는 민박집이 많다.
<음식>
방곡리에는 특별한 먹을거리가 없다. 식당이 몇곳 있다. 시골스런 반찬과 된장찌개가 맛 좋다.
<도자기만들기>
방곡리는 도예촌이다. 미리 예약하면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1점 만드는 데 1만원이다. 도자기를 만들면 나중에 집으로 보내준다.
<주변여행지>
방곡리 자체는 여행지가 아니라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도자기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여행꺼리가 없다. 주변 약 10km 거리에 선암계곡이 있다. 여름철 물놀이는 물론 사계절 계곡미를 즐길 수 있다. 계곡 길이만 12km 정도 된다. 특히 특선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소선암 등 5곳은 맑은 물과 기암괴석, 수직 단애가 어울려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또 방곡리에서 약 8km 정도 되는 거리에 사인암이 있다. 수직절벽과 맑은 물이 흐른다. 가족끼리 물놀이하기에는 사인암이 좋다.
<문의전화>
방곡도자기교육원 043-421-5020
단양 시외버스터미널 043-421-8800
단양 시내버스터미널 043-422-2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