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부모로서 아이가 소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아이가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부모는 생각한다. 이 경우 공부는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보다 좀 더 목적에 직접 다가가는 표현은 경제관념이라 할 수 있다. 성적이 올라가는 것과 경제관념을 잘 갖추는 것은 연관성이 없지만 경제관념이 잘 갖춰진 사람이 결국은 무난하게 잘 살아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성적이 매우 좋으면 전문직이나 연봉이 높은 직장에 취직해 많은 수입을 얻을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연봉이 많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경제관념이 약하면 돈을 모으지 못한다. 연봉이 1억원 가까이 올라간 중년남자가 아직까지 내집 마련도 못하고 저축금액이 얼마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마이너스통장의 잔액을 항상 마이너스로 해놓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마이너스통장의 대출금리가 일반예금이나 안전성 높은 투자상품의 이율보다 높기 때문에 비싼 대출이자를 내면서 저축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금 등을 통해 받는 이자가 10원이라면 대출이자로 15원을 지불하는 셈이다. 신용카드 빚이나 고금리 대출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연봉이 그보다 훨씬 적은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샐러리맨인데도 노후대비까지 잘 해놓는 사람들도 있다.
양동이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위에서 물을 아무리 많이 부어도 양동이에 물이 차기 힘들다. 하지만 양동이 바닥에 구멍이 없을 땐 위에서 들어오는 물의 양이 적더라도 물이 차근차근 늘어나 결국은 양동이를 채우게 된다.
자영업도 마찬가지. 장사가 잘 돼 큰돈이 들어오더라도 착실하게 돈을 쌓아가지 않는다면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거나 어려워질 때 갑자기 견디기 힘들어진다. 필자의 지인은 한때 사업으로 상당히 많은 돈을 벌었지만 방만하게 관리하고 생활하다 영업이 어려워지자 빚만 늘었고 지금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기업도 내부유보금을 많이 쌓아놓으면 극심한 불경기나 위기가 닥치더라도 잘 견뎌 그 다음 사이클에서 다른 기업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
필자의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어떤 부부는 열심히 일한 결과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어 단골고객을 늘리면서 돈을 모았다. 알뜰살뜰 근검절약해 집은 물론이거니와 두 채의 상가까지 마련했다. 가게 운영이 육체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일하기 힘들어지면 상가의 월세만으로도 부부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한 셈이다.
경제관념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측면도 있다. 한 가정에서 두 아이를 똑같이 대하면서 키우더라도 한 아이는 경제관념이 강하고, 또 한 아이는 별로인 것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후천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여지도 많다. 그런데 부모들이 가급적 아이를 편하게 키우려 하거나 공부 잘하게 만드는 데만 신경쓰다보면 경제관념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다.
아이가 보채거나 조를 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쉽게 사주는 것은 부모가 편하기 위해서다. 부모가 편하게 아이를 키우는 대가로 아이는 경제관념이 약해지는 것이다. 공부 잘하게 만드는 것이 쉽게 공짜로 이뤄지지 않듯이 경제관념 잘 갖추게 하는 것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인내심이 부족하고 소비 성향이 커지는 방향으로 아이를 대하고, 저축하는 성향을 길러주는 것에는 소홀한 가정이 많다.
소비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절약의 즐거움도 체험하며 성장해야 한다. 아이가 용돈을 절약해 저축하고 세뱃돈을 아껴두며 부모 일을 거들어준 대가로 받는 돈 등을 모아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스스로 마련하는 성취감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가정의 경우 아이에게 투자되는 돈 대비 아이가 거두는 성과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가정이 많지 않다. 설사 성과가 낮더라도 안 시키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학원에 가는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집중력으로 공부하지 않으므로 학원에 갔으니 공부를 제대로 하리라고 무조건 믿어서는 곤란하다.
억지로 책상에 앉아있더라도 책을 펴놓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낙서를 하거나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딴 생각을 한다면 외형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아무리 늘려도 성과는 제대로 나타나기 힘들다. 학습목표를 뚜렷이 하고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으면서 집중할 때 내용이 잘 파악되는 것이다. 해설을 잘 이해해 본질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열망이 있을 때 효율적인 공부가 가능하게 되고 성과도 올라가는 법이다.
사교육에 투자하는 금액에 비해 아이가 기울이는 노력과 얻어내는 성과에 따라 아이에게 얼마나 투자할지 결정하는 모습도 부모로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신이 하는 만큼 대접 받고 지원이 이뤄지는 곳이 사회이며, 그런 세계로 결국 아이가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대학생이 된 다음에도 공부를 위해 경제관념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태도를 보이는 부모들이 많다. 대학생인 아이가 아르바이트 하겠다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말리는 부모도 있다. 그 이유는 아르바이트 할 시간에 공부하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심지어 아이가 대학원생인데도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돈 버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면 아르바이트로 돈 버는 일을 한다고 해서 공부에 결정적인 타격이 오지는 않는다. 부모로서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아르바이트 안 하는 시간에 공부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따라서 공부나 다른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어정쩡하게 소모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면 차라리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낫다.
가정여건상 스스로 학비를 조달하면서 대학에 다녀야 하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이유만으로 학업성적이 크게 떨어지는 대학생은 많지 않다. 아르바이트로 인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할 때는 공부하는 시간에 더욱 집중해 시간당 효율을 높이게 된다. 이는 의지에 달린 문제로, 시간이 많든 부족하든 어차피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하게 된다.
선진국의 의식 있는 가정에서는 부모가 잘 살더라도 아이가 경제적인 독립성을 갖도록 키우는 가정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공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학부모들이 많다보니 아이 스스로 돈 버는 일을 하려고 해도 말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공부의 결과는 마음과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며, 다른 여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등록금도 그러하다. 등록금을 비싸게 여기는 가정일수록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학교로부터 더더욱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내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경제적 태도다. 어디에서든지 지불하는 돈에 비해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 경제적인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부모로서 비싼 등록금을 힘들게 내주니까 대학생인 아이에게 지각이나 결석은 절대 하지 말고 수업에 충실해 돈의 값어치를 최대한 얻어내라고 주문하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다 큰 자식인데 무슨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 큰 자식인데 왜 돈은 무조건 다 대주는 것일까. 교수에게 질문한다고 등록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니 잘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언제든지 찾아가 물어보라고 일깨워주는 부모가 아이로 하여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령있게 살아가는 태도를 갖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100원을 투자해 150원의 가치가 있는 성과를 얻어내는 기업이 잘 나가는 기업이고, 경쟁체제에서 살아남는 기업이 된다. 100원의 학원비, 사교육비, 또는 대학등록금을 투여해 150원의 가치를 얻어내는지에 대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생각해보길 바란다. 100원을 투여해 150원은커녕 70원의 가치만 얻어내며, 마치 적자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지내는 것은 아닌지도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무엇이든 부모가 책임지고 해주면 됐지만,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바람직한 경제관념을 단계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것이 불확실성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잘 나가던 기업도 언제 어려움을 겪게 될지 모를 정도로 변화가 빠르고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다. 돈을 절대적으로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효율적으로 벌고, 돈 관리를 잘하고, 절약의 즐거움에 익숙해져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저축과 투자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제2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