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한전 주가는 4년 연속 적자의 암울한 현실과 더 이상의 적자는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 사이 어딘가에 있다. 시장의 무게추는 후자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모양새다.
◆전기요금 인상되나
업계에서는 정부부처간 협의와 오는 30일 열리는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다음달 15일이나 7월1일부터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력관리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지경부)의 홍석우 장관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었다.
홍 장관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물가가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기획재정부도 전기요금 인상에 공감하고 있다"며 "국민들도 전기요금이 싸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경부 장관이 전기요금 인상을 언급한 것은 올해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요금 인상은 산업용과 주택용 양쪽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산업용의 경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싼 수준이고 그동안 산업계가 혜택을 충분히 봤다는 게 지경부 입장이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을 100이라고 할 때 미국은 117, 프랑스는 183, 일본은 266이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13.7% 인상에 그쳤지만 이 기간 일본은 26.2%, 미국은 33.3%, 프랑스는 135% 올랐다.
여름철 '전력대란'이 발등의 불인 지경부로서는 전체 수요의 55%를 차지하는 산업용 수요를 반드시 억제해야만 한다. 주택용 요금도 이런 측면에서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홍 장관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주택용도 같이 올릴 수밖에 없다"며 "다만 저소득층에 대한 정액할인제를 유지해 서민부담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산업용을 5~7%, 주택용을 2~3% 정도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지난달 한전은 지경부에 올해 평균 13.1%의 전기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요구안을 제출했다. 정부는 지난해 8월과 12월 산업용 요금을 각각 6.1%, 6.5% 올렸다. 주택용은 한차례 2% 인상했다. 올해에도 여름과 겨울로 나눠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전 상황 어떻길래
한전은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영업이익 기준 누적적자는 8조5342억원에 달한다.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 때문에 누적적자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는 설명이다.
1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5년 연속 적자를 이어갈 가능성도 높아졌다. 1분기 개별기준 영업손실은 2조38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손실규모가 44% 늘었다.
한전은 국제 유가와 유연탄 등 연료가격 상승에 따라 구입 전력비가 늘면서 적자가 확대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분기보다 전력 구입비가 28% 늘었다. 한전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5년 연속 적자는 정해진 수순"이라며 "장기적인 경쟁력 제고와 합리적인 전력소비를 위해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수"라고 말했다.
'저렴한' 전기요금 덕에 전력예비율은 위험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미 지난해 9월에는 블랙아웃(대규모 동시 정전) 사태도 겪었다. 이 사태로 당시 최중경 지경부 장관이 물러나기까지 했다.
지난 2일에는 서울 낮 기온이 29도까지 오르면서 전력예비율이 7%, 예비전력은 422만킬로와트까지 떨어졌다. 본격적인 여름을 두달이나 남겨두고 이미 비상조치에 들어가는 400만킬로와트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정부는 오는 8월에는 예비전력이 150만킬로와트를 밑돌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한번의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증권가는 어떻게 볼까
증시 전문가들은 인상폭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평균 4%대 인상률로는 한국전력이 5년 연속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요금인상이 7월 한차례 4%대에 그친다고 하면 영업이익은 1조원 수준, 당기순이익은 5년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기요금 현실화 명분이 쌓일 만큼 쌓인 데다 유가 하락 안정화 등 요금인상을 위한 여건이 점차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빨리 더 높게 인상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실시했던 요금인상 조치를 돌아보면 한번에 5% 이상 요금을 올릴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블랙아웃 사태 이후에도 요금을 최소한 원가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실제 인상폭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올해는 지난달 총선에 이어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어느 때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부담이 큰 데다 물가안정이 우선인 기획재정부도 소비자물가와 직결되는 주택용 요금은 가급적 인상을 피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산업계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는 지난 15일 "차라리 산업용만이 아니라 주택용과 일반용 등 모든 요금을 현실화하라"고 선수를 치고 나왔다. 정부의 '약점'을 잡아 가파른 인상을 막겠다는 속셈이다.
◆소모성 인상 논란… 추천 어려워
한전 실적 정상화를 위해서는 요금인상도 급하지만 발전단가 하락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자력발전 쏠림현상으로 고장이 잦아지는 등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량을 낮추는 등 발전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력 수요를 낮추는 방안도 절실하다. 피크 시간대 주택용 요금 대폭 인상, 절전 캠페인, 스마트그리드 조기도입 등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신지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요금 인상은 쉬운 답이지만 완벽한 답이 될 수는 없다"며 "이런 소모적인 요금인상 논쟁이 반복되는 한 한전을 추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