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국내 증시 수급을 가르는 외국인은 '셀 코리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외국인 순매도가 한국 증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 때문이 아니라 대외 악재 탓이다 보니 언제 끝날지 알 턱이 없다.
결국 기댈 언덕은 연기금뿐이다. 지난해 8월 이후 매달 1조원 넘게 순매수한 연기금의 활약을 지켜본 투자자들은 이번에도 연기금이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연기금은 기대와 달리 등판을 계속 미루고 있어 투자자의 애를 태우고 있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본격적인 순매수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카드' 등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되는 이달 말이나 3분기 초쯤 가능할 것으로 봤다.
◆버팀목 없이 무너지는 코스피
지난 4일 국내 증시는 '블랙 먼데이' 쇼크로 휘청거렸다. 직전 주말에 미국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자 세계 경기 버팀목인 미국 경기둔화가 현실화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된 탓이다. 미국과 유럽 증시가 줄줄이 급락했고,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도 예외 없이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 4일 오전 코스피지수는 개장하자마자 1800선이 붕괴됐다. 전 거래일 대비 51포인트 뒤로 밀렸다. 장중 한때 1780선마저 무너지면서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장중 내내 1800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전 거래일 대비 51.38포인트(2.80%) 급락한 1783.13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외국인은 거래소 시장에서만 2728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투신권 역시 1422억원의 순매도로 대응하며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믿을 만한 매수 주체로는 국내 증시 구원투수란 별명이 붙은 연기금뿐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연기금은 243억원 '사자' 우위에 그쳤다. 연기금은 코스피지수가 무려 6.99%(138.52포인트)나 뒤로 밀린 지난 5월에도 모두 합쳐 2747억원을 순매수하는데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서는 312억원 순매도로 되레 '팔자'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한국 증시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하락장을 방어하던 든든한 '구원투수'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유럽 문제의 장기화로 외국인 매도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터라 연기금의 구원등판 시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유럽위기에 빛났던 연기금 순매수
시계를 뒤로 돌려 지난해 8월로 돌아가면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유럽 재정위기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고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서둘러 발을 뺐다. 8월 한달간 외국인은 4조6238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전달 1조2810억원 순매수로 코스피 지수 상승을 주도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졌다.
외국인은 9월에도 1조2801억원의 팔자 우위를 보였다. 10월은 잠시 순매도로 돌아섰지만 이내 11월과 12월 2조6588억원, 3665억원 순매도 행렬을 이어가며 코스피 지수의 속절없는 추락을 이끌었다.
하지만 연기금은 외국인 매매패턴과 반대로 움직였다. 8월 한달에만 2조5629억원을 쏟아 부었고, 9월과 10월 각각 1조9359억원, 1조8359억원 순매수를 이어갔다. 11월(1조3893억원)과 12월(1조2909억원)에도 매수 우위를 보이는 등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1조원 넘게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9월 1700선까지 밀려났다가 연기금의 순매수에 힘입어 10월 1900선을 회복했다. 이후 1800선과 1900선을 오가는 등락을 했지만 '패닉' 상태를 극복하고 마침내 연초 이후 2000선에 안착했다.
지난해 8~12월, 모두 합쳐 9조원 넘는 돈을 쏟아 부은 연기금은 어떤 업종을 주로 샀을까.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IT(전기전자) 업종으로 모두 2조2143억원을 순매수했다. 현대차, 기아차 등 운송장비업종도 1조3695억원 매수 우위였고, 화학(1조1033억원), 서비스업(1조745억원)에도 '러브콜'을 보냈다.
◆구원등판은 언제쯤? "당장은 아닐 듯"
코스피지수가 재차 1700~1800선으로 밀린 현재, 연기금의 등판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지만 아직 뚜렷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증시전문가 사이에서는 당장 연기금이 본격 매수로 돌아서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유럽문제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보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최악의 경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스페인 구제금융 신청 등 암초가 깔려 있다 보니 코스피지수가 추가 하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설명이다.
등판의 출발점은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열리는 오는 19~20일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김호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고용지표가 굉장히 좋지 않은 상황이라 이 점이 오히려 3차 양적완화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경기부양책은 국내 증시 반등의 시그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절적으로 보면 2분기 말인 6월엔 증시가 안 좋다가 7월 이후 코스피 리밸런싱으로 인해 증시가 반등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반등의 시그널이 보이는 시점에서 연기금이 등판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연기금이 구원등판을 미루고 있지만 결국 올해 안에 집행해야 할 자금이 정해졌다는 점도 순매수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연기금 매수 여력은 약 4~6조원이 될 것"이라며 "국민연금 등은 연중 자금집행 목표액이 정해져 있으므로 지수 방어 차원에서 보면 외국인 순매수보다 한템포 빠른 3분기 초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기금 등판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면 어떤 종목이 '러브콜'을 받게 될까. 지난해 말에는 화학업종이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중국과 미국의 경기침체 영향으로 실적 모멘텀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단순히 낙폭과대 업종이라고 해서 우대받진 못할 거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판매 호조를 등에 업은 삼성전자 등 IT업종과 코스닥 IT부품업체로 연기금의 손길이 먼저 닿을 것으로 전망했다. 더불어 유로존의 소비심리가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실적이 확인되는 자동차 업종도 선호주로 부각될 수 있다. 경기가 돌아설 거란 확신이 생기면 철강, 화학, 기계업종 등으로 온기가 퍼질 것이란 관측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