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전설의 탄생, 그리고 활자화되는 전설</b>



어느 분야든 입문자들을 열광시키며, 그 분야의 예식과 의례에 철저해지게 하고, 도전과 극복에 중요한 가치를 두게 하는 것은 바로 전설이다. 입문자들은 전설을 들으면서 점점 성장해 간다. 입문자는 무엇인가에 애착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의 아이와도 같다. 모든 금기사항이 새로운 규칙이 되며, 모든 권유가 도전의 대상이 된다. 입문자가 되기 전에는 전혀 관심 밖의 대상이던 것들이, 입문한 이후에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꿈꾼다. 전설 속의 영웅을. 그리고 자신이 영웅이 되는 장면을.



용사가 되고자 하는 청년. 대장장이로부터 이제 막 새 칼과 방패를 받아들었고, 좋은 말까지 고른 청년. 괴물이 내뿜는 불꽃과 커다란 발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불운한 선배 용사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이야기들로 영혼을 정화하고 있는 청년.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신성성을 더해간다. 분별력이 있거나 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과장과 허무로 가득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겠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은 자들은 전설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유전자의 형태로 변화한 것일까? 어느 분야,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있으며, 때로는 책으로 묶여 나온다. 물론 자전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종교에만 경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b>경전의 시작, '일요일 오후'</b>



자전거라는 신비로운(?) 분야에도 경전이 있다. 대부분 경전이 입문자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자전거의 경전도 입문자부터 전문가, 입문자를 훌륭한 위치까지 올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영광스러운 지위의 사람에게도 매번 새롭고 깊은 의미를 준다. 또한, 경전 대부분이 역사와 전설을 전하는 기능과 실용적인 기능을 겸하고 있듯이, 자전거의 경전도 자전거의 역사와 영웅들, 현실의 라이더들에게 실용적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 폴 푸르넬의 '내 인생의 자전거'
소개할 경전의 저자는 폴 푸르넬이다. 1947년 프랑스 태생으로 1988년 중편 '머릿속의 육상 선수들'로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받았다. 저자 스스로 글쓰기 분야에서는 영웅임이 입증된 셈인데다가, 프랑스라니. 그 자체가 이미 자전거에 대한 전설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 아니던가. 뚜르 드 프랑스* 정도는 자전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경기다. 경전은 저자 자신이 당한 사고에 관한 이야기부터 출발한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자전거라는 대상과 자전거가 지닌 경이로움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에피소드는 없을 것이다. 심각한 상처를 입어 허리에서 뼈를 떼어내 팔에 이식해야 하는 수술을 앞두고, 저자의 시선은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다. 수술을 시작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온 의사에게 저자는 말한다.



<b>"경주 결과를 모르면 난 잠을 잘 수가 없어요."</b>



텔레비전에 눈을 돌린 순간 의사 또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약 260킬로미터를 달리는 파리-루베 경기. 마지막 400미터를 남기고 선두가 바뀌는 긴박한 상황에서 대담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선수들뿐일 것이다. 도전과 새로운 영웅의 탄생으로 시작하고는 있지만, 역사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파리-루베 경기는 1896년 4월 19일에 시작되었다. 같은 달 6일에서 15일까지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다. 근대적 체육 경기의 한 획을 그었으며, 개최될 때마다 새로운 영웅과 전설이 만들어지는 두 개의 대회가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이 경기는 포석(cobblestone)*이 깔린 오래된 도로를 달려야 하는 구간이 있다. 이 구간을 '파베(Pave)'라고 부르는데, 펑크가 나기 쉬운데다가 악천후에는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구간이다. 경기 구간 전체에서 파베가 차지하는 길이는 50Km 정도이다. 경기는 루베시의 야외 벨로드롬에서 끝난다. 그곳은 고난의 순례 종반에 이르러 참혹한 몰골이 된 순례자들을 기다리는 신전이다. 선수들은 마침내 신전에 들어섰으나 제단 앞에 나가 무릎을 꿇기 전까지,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거나 불평을 하거나 페달링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b>악명 높은 파리-루베 경기</b>



고난의 대상이 언제나 그러하듯 파리-루베 경기 또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완전히 통제가 불가한 레이스이며 자전거 레이스 같지 않다." - 랜스 암스트롱



"만약 파리 루베를 우승한다면 선수의 커리어는 완성되는 것이다." - 숀 켈리



"경기 후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 플래쳐



"이것은 대회가 아니다. 이것은 순례다." - 앙리 펠리시에



저자의 에피소드에서 우승자 블래로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이 경기는 하나마나 한 것이었다."



고난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된 파베 구간 중 특히 아렌버그 숲은 가장 난 코스로 악명이 높다. 세계대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이 숲을 경기에 포함하며, 프랑스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쟁의 상흔을 경기의 열기로 '액막음'이라도 하려 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경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아렌버그 숲의 난코스를 떠올릴 것이고, 대전이라는 과거를 기억할 수 있으리라. 세월이 흘러 현재는 경기에서 이 구간을 제외하자는 의견도 있는 모양이니 어쩌면 오랜만에 숲은 진정한 휴식에 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b>경전 밖의 이야기들</b>



이 정도면 경전의 첫 부분을 차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좌절과 승리, 영웅과 역사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서평의 미덕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지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주는 것은 아니니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사실 책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다가는 글을 끝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매력적인 책이며, 저자의 글쓰기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다양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서점에서는 이 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절판되었다. 어느 회사에선가 전자도서로 판매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제 '내 인생의 자전거'를 구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 은밀해진 밀교의 비전을 상상하며 꿈만 꾸고 있을 필요는 없다. 도서관 한구석에서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온 사람, 혹은 우연이라는 필연에 끌려온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당장에라도 자전거를 끌고 도서관으로 가서 경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주는 뚜르 드 프랑스의 첫 주간이 아닌가. 이 시즌에 이만큼 적절한 책도 없을 터. 다만 헬멧과 장갑은 꼭 착용하고 가자. 입문을 했든 안 했든 간에 해당 분야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격식이 있다. 교회에 가서 삼배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듯, 절에 가서 고기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듯이 말이다.



2002년 5월에 이 책을 사서 읽었고 폴 푸르넬이라는 작가에게 큰 관심을 두었으나 더 이상의 독서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의 불성실함 탓인지 저자의 다른 책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이탈로 칼비노의'우주만화'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고, 그해 11월 이사 때문에 책장 정리를 하다가 '내 인생의 자전거'를 다시 넘겨보게 되었는데, 책 날개에서 이탈로 칼비노의 이름을 발견하고 공중으로 '삼십 센티미터' 정도 뛰어올랐다. 두 사람은 울리포라는 실험적 문학 운동의 멤버였던 것이다. 이 둘의 친분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는 없고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겠으나 이러한 발견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실제로 이 두 권은 둘 다 경어체로 쓰였다는 점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인상을 제외하고서도 유머와 과학의 활용 등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제 남은 일은 도서관으로 달려가거나, 소장하고 있는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전화를 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언젠가 '이런 책을 읽었는데 제법 괜찮았어!'라고 얘기한 친구가 있을 것이다.



자전거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경전에서 훌륭한 구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훌륭한 구절은 과학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적용 범위가 매우 넓다. 가령 이런 구절들 말이다.



"만일 당신이 건강하다면, 당신이 지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지쳐 있다면, 당신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심리 요법만으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본문 232쪽에서





* 뚜르 드 프랑스 : 프랑스 전역을 스무사흘 동안 질주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도로 사이클 대회. 난코스로 악명이 높다. 대략 4,000Km 거리를 20~21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달린다. 수많은 용사가 탄생하였고, 때로는 희생자를 내기도 하였다. 종합 우승자에게 노란 저지가 주어진다. 자전거의 세계에서 노란색이 경외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 포석(cobblestone) : 인터넷으로 '파리 루베'를 검색하면, 여러 가지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 '파베'를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온몸의 관절이 덜컹거리는 상상을 하게 된다.





※ 최건규 객원기자 : 수리고등학교 교사([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