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디자인 회사 (주)코엔 조운대 대표가 자전거 디자인의 특수성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표현이다. '유리상자 디자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무엇 하나 숨길 수 없고, 다른 하나는 간단히 덧대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주요 구성품들이 디자인된(또는 디자인될 수 있는) 케이스에 담긴 전기자전거조차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인으로 꼽히는 것은 '전혀 전기자전거 같지 않은 전기자전거'이다.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명하여 기존 기술을 대체하는 시도는 또 다른 제약과 맞닥뜨리니, 바로 기존 기술 공급자의 저항이다. 어차피 자전거의 기본 성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므로, '조금 더 좋은' 기술이 모두에게 '당장 꼭 필요한' 기술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기술의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각종 대회 시상대에 오르는 프로선수들은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이 몸에 로고를 붙여준 회사의 기술이 최고입니다."
<b>일본 자전거산업이 '짝퉁'을 만들던 시절</b>
제약이 아무리 크고 다양할지라도, 새롭고 더 뛰어난 기술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 기술은 간혹 '짝퉁' 전문 제조업체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1951년 일본에서는 미국의 사례를 본떠, 일련의 국가 대항 자전거 경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출전한 프랑스산 자전거들은 심플렉스社의 체인변속기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머잖아 일본 업체들은 이 부품을 저렴하게 복제하면서 일본 다단 스프라켓 제조사업이 시작되었다. 당시는 프랑스 내에서도 자전거업체들이 서로 타사 제품을 복제하던 시기였다. 차이라면, 일본 업체들은 '순수하게 베끼기'만 했다는 사실이다.
한때 국내에서 시마노 만큼 널리 알려졌던 브랜드인 선투어(SunTour)의 모회사 마에다공업도 1958년부터 체인변속기 복제품 제조에 직접 뛰어들었다. 1959년 일본에는 약 2천만 대의 자전거가 존재했고, 매년 3백만 대가 팔렸다. 그러나 대세는 저렴한 싱글기어였고, 고급 자전거 시장에서는 3단 허브변속기가 체인변속기보다 인기가 좋았다. 성장하려면 수출이 절실했으나, 부품 제조사 입장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해외 진출을 넋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에다공업은 1968년까지 수출길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성장하여 첫 직장을 가지게 되었을 즈음, 소비시장이 폭발하며 일대 '자전거붐(1971-1975년)'이 일어났다. 1970년 미국에서 총 550만 대의 자전거가 팔리고 그중 변속기를 장착한 성인 자전거가 20만 대였다면, 자전거붐이 시작된 바로 다음해 1972년엔 총 1400만 대의 자전거가 팔리고 그중 변속기 장착 자전거는 2년 전의 40배인 800만 대였다.
자전거붐이 일었을 때 유럽의 부품 업체들은 급증하는 수요를 충당할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이로써 일본의 부품 업체들은 미국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등장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렇게 갑자기 큰 기회가 찾아왔을 때 복제품 제조업체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었던 가격경쟁력 외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유럽업체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신기술까지 확보했던 일본 업체가 바로 마에다공업이다.
<b>오자키, 당연한 생각을 비틀다</b>
1949년 툴리오 캄파놀로가 발명한 디레일러는 현대적 디레일러의 원형을 제시한 공로가 있으나, 그 메커니즘이 그대로 현재에 이르지는 못했다. 캄파놀로의 디레일러 Gran Sport는 큰 스프라켓으로 이동(저단기어로 변속)할 때는 가이드 풀리(guide-pulley)와 스프라켓(sprocket)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져 둘이 서로 부딪힐 위험이 있었기에 디레일러가 매우 길어야 했고, 반대로 작은 스프라켓으로 이동(고단기어로 변속)할 때는 그 거리가 너무 멀어져 변속이 매끄럽지 않았다.
자전거붐이 일어나기 7년 전인 1964년, 마에다공업의 기술개발 책임자 오자키 노부오(小崎信夫)는 캄파놀로의 디레일러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한 새로운 체인변속기 부품을 발명했다. 마에다공업의 디레일러는 변속과정 중 가이드 풀리가 다단 스프라켓의 아웃라인을 따라 이동함으로써 풀리와 스프라켓 사이의 거리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아이디어는 의외로 단순했다. 디레일러의 링크장치를 살짝 비틀어 결합한 것.
<b>컨슈머 리포트도 인정한 오자키의 선투어(마에다) 기술력</b>
"선투어(마에다공업의 자회사)의 디레일러는 다른 제품들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변속이 용이하고, 가장 확실하게 스프라켓 사이를 이동한다."
1974년 '컨슈머 리포트'는 자전거 성능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일본 자전거업체는 '유럽 기술 모방꾼'의 오명을 벗고, 기술혁신 기업으로서 세계시장에 인지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에다공업의 디레일러 메커니즘은 특허기간이 만료된 1984년부터 전 세계 모든 자전거업체들이 복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현재 돌아다니는 모든 자전거에 장착된 디레일러는 오자키 씨의 발명품이다.
<b>오자키 노부오, 자전거 부품의 정의로움을 고민한 자</b>
"이게 진정 사용자를 위한 걸까?"
오자키씨는 '자전거 외길 인생'을 걸었으며, 새로운 부품을 개발할 때는 그 구조와 기능과 디자인의 의미에 대해 반복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한다. 일본 자전거 동호인들을 통해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와 연락이 닿았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2009년 10월에 고인이 되었다.
※ 본 연재물은 생산기술연구원 자전거종합연구센터(윤덕재 센터장)가 진행 중인 ‘자전거 특허기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신병철 객원기자 : 기술 분석 전문가, (주)다이나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