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 제작진의 판단은 최근 불고 있는 1990년대 복고바람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4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건축학개론>에 이어 케이블 시청률 흥행 신기록을 갈아 치운 드라마 <응답하라 1997>(tvN)의 파급력이 공중파 프로그램에도 미친 것이다.
이미 음반업계는 '포스트 쎄시봉=1990년대 음악'이라는 등식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던 음반업계의 복고바람은 이제 대세가 돼 버렸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해 활동했던 'H.O.T'의 토니안 문희준 그리고 '젝스키스'의 은지원/ '응답하라 1997'에 출연한 가수 겸 탤런트 정은지/ '응답하라 1997'에 츨연한 가수 서인국(왼쪽부터)
사진_ 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홍봉진 기자
◆드라마에 녹아든 OST로 폭발력 키워
사랑할 때 혹은 이별할 때 흔히 '내 상황과 똑같다'며 무한반복해서 듣는 음악이 있다. 대개 이미 알고 있던 흘러간 노래지만 가사가 새롭게 와 닿는 경우라면 몰입도가 더 커진다. 1990년대 복고문화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극 중간중간에 1990년대 음악을 가사와 극중 상황을 일치시키는 방식을 통해 관객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최근 여론이 이 드라마 삽입곡 타이밍을 두고 '소름 돋는 브금(BGM)'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다.
드라마의 표현방식은 이렇다. 차 안에서 시원에게 고백을 받은 윤제는 고민없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고백에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윤제가 6년 전처럼 다시 고백해야 할지 갈등하는 장면에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흘러나온다.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랐었어 그 사람이'라는 가삿말이 인상적인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나 '당신께 드릴 말이 있어요. 지금껏 날 지켜준 당신께'라는 가사가 의미심장한 사준의 '메모리즈' 등 스토리와 가사가 절묘하게 조합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16화를 진행하는 동안 이 드라마에서 이런 식으로 적용된 노래는 100곡이 넘는다. 드라마는 아이돌그룹 HOT나 젝스키스를 중심으로 한 팬덤 1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삽입곡은 오히려 발라드 쪽에 무게감이 실린다. 서정적인 가사가 극중 내용을 이끌기에 수월한 까닭이다.
드라마를 보면 수록곡의 가사를 한편의 드라마로 완성시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바의 히트곡으로 이야기를 만든 뮤지컬 및 영화 <맘마미아>가 연상된다. 영화 <건축학개론> 역시 1990년대 음악이 극의 전개상 중요한 도구다. 그룹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주인공들의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회생시키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이다. 스토리와 완벽하게 녹아든 음악이 음악 자체의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1995년 귀가시계라 불리면서 국민적 드라마가 된 모래시계의 주인공 고현정과 015B의 객원가수였던 윤종신/ 영화 <건축한개론>에 나와 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기억의 습작'을 부른 전람회 1집 음반 (위부터)
◆음악 차트도 90년대 복고 바람
19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3545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컨텐츠 제작은 1990년대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결과를 낳았다. 1994년 전람회 1집 수록곡 '기억의 습작'이 영화 <건축학개론> 상영 시기에 맞춰 음원차트에 진입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 8월28일 발표된 '올 포 유'는 음원 공급업계 1위인 멜론차트에서 무려 6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제치고 실시간 음악차트 1위를 꿰찼다. '올 포 유'는 <응답하라 1997>의 남녀 주인공 서인국과 정은지의 리메이크 듀엣곡이다. 9월4일 공개된 '우리 사랑 이대로' 역시 두 가수가 함께 부른 곡으로 꾸준히 차트 5위권 내에 랭크돼 있다.
'올 포 유'는 1990년대 인기 혼성그룹 쿨이 2000년에 발표한 곡이고 '우리 사랑 이대로'는 영화 <연풍연가>의 OST로 주영훈과 이혜진이 부른 곡(1998년 발표)이다. 이 두곡은 멜론 외에도 엠넷닷컴, 올레뮤직(+지니), 벅스, 소리바다 등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비단 주제곡 뿐만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7> 수록곡 역시 동반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1990년대 음원이 소개된 이 드라마의 삽입곡 앨범은 9월 초 멜론 명예의 전당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한희원 멜론 마케팅팀장은 "최근 불고 있는 복고 신드롬과 함께 리메이크곡 및 원곡, 과거 음원에 대한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가 전년 대비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앞으로도 당분간 1990년대 대중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90년대 활동 가수 부활 움직임
1990년대 음악이 다시 상품성을 갖춘 것은 음악경연프로그램이나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리메이크 되면서부터다. MBC의 <나는 가수다>와 KBS의 <불후의 명곡>, Mnet의 <슈퍼스타 K> 등에서 화제가 된 음악이 1990년대 향수에 군불을 지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0년대 음악의 재조명은 당시 활동 가수들을 무대로 복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직설적인 가사와 참신한 멜로디로 199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룹 015B가 최근활동을 재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 3월 싱글앨범 '짝'을 시작으로 5월 '렛 미 고', 7월 '80'을 연이어 발표하며 올드팬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015B의 활동이 최근 주목을 받는 이유는 6년만에 신인 객원가수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기존 유명가수를 객원 형식으로 제작에 참여시켰던 것과 달리 전담 가수를 내세운 것은 본격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록밴드의 전설 들국화는 지난 7월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서 16년 만에 원년 멤버가 무대에 올랐다. 다음달 학전소극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한다. 1990년대 '사랑과 우정 사이' 등의 히트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룹 피노키오 역시 지난 7월 20년만에 재결성됐다.
이밖에 현진영, 이정석, 이범학, R.ef 등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들도 최근 활동영역을 넓히고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인 아이돌 그룹 역시 1990년대 음악을 모토로 활동을 시작하는 등 복고가 음반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바야흐로 음반업계의 달력은 1990년대로 회귀한 듯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