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불구하고 올해도 예전엔 죽어라 경쟁하던 제일모직 이서현 부사장에게 또 부탁을 하니 두말없이 앞으로 알아서 계속 꿈나무마을 애들 옷을 주신단다. 착한 마음에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지난 9월7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이날 박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웃돕기에 동참해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두 경영자간의 훈훈한 사연은 이렇다. 박 회장은 지난 2010년 랄프로렌의 폴로 라이선스 사업을 접기 이전까지 매년 가을 국내 고아원 아이들에게 폴로키즈 3000벌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두산이 의류사업을 접으면서 지난해부터 추진하던 고아원 의류 기부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이에 박 회장이 폴로 한국법인 측에 기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결국 경쟁관계에 있었던 이 부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이 부사장은 박 회장의 요청을 흔쾌히 수용하고 제일모직의 대표 브랜드인 빈폴키즈 3000벌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제일모직 측은 "지난해 (박 회장의 요청으로) 빈폴키즈 브랜드의 옷 3000벌을 두산 측에 전달했고 올해도 비슷한 물량으로 기부할 예정"이라며 "(이 부사장의 지시에 따라) 향후에도 매년 그 정도 물량의 옷을 계속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의 기부 문화가 진화하고 있다. 기존 기업 산하 재단을 통한 천편일률적인 기부활동에서 벗어나 특정 소외계층을 향한 '맞춤식 기부'나 수혜범위를 확대한 '재능기부'가 늘고 있는 것.
◆'특허'에서 '혈액'까지…다양화된 기부문화
삼성전자는 '특허기부'를 실현, 새로운 기부영역을 개척한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26건의 장애인 관련 특허를 중소기업에 개방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안구 및 눈꺼풀 인식을 기반으로 한 휴대폰에서의 문자입력 시스템'을 포함해 26건의 장애인 관련 특허를 오픈하고 중소기업들은 관련 기술에 대한 추가 투자 없이 효율적으로 장애인 보조장비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 측은 앞으로 개발되는 추가 장애인관련 특허에도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한미약품은 제약업체의 특성에 맞게 '혈액'을 나눠 기부열기에 동참하고 있다. 올해로 32년째 진행해온 '사랑의 헌혈 캠페인'이 그것이다.
지난 1981년 시작된 이 캠페인은 국내 제약회사가 벌인 최장기 나눔 캠페인이기도 한데, 현재까지 헌혈에 동참한 누적 참여자가 총 3714명이며 혈액량은 최소 118만8480cc에 달한다. 이는 1만1142명에 수혈할 수 있는 양으로 이렇게 수집된 헌혈증서는 백혈병재단, 한국신장학회 등에 기증된다.
한미약품은 올해 업무 첫날인 지난 1월2∼4일 전직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헌혈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캠페인에는 서울 송파구 본사와 경기도 동탄 연구센터, 평택 및 팔탄공장, 영업사원 연수 교육장 등에서 총 138명의 임직원이 동참했다.
난치성 환아를 위해 제작한 매일유업의 '특수분유'(왼쪽)/ SPC그룹의 행복한빵차 협약식(오른쪽)
◆유업계, 희소병 환자 위한 '특수분유' 제조
업종의 특성을 살린 '착한 상품'을 통한 기부방식도 최근 주목받는 기업의 기부활동 중 하나다. 분유업계의 '특별 제작 분유'가 대표적이다.
매일유업은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들을 위한 특수분유를 판매 중이다. 신생아 6만명 중 1명꼴로 태어나는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들은 선천적으로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만들어지지 않아 모유는 물론 고기, 생선, 심지어 쌀밥에 포함된 단백질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이에 따라 매일유업은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들을 위해 특정 아미노산은 제거하고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성분을 보충한 특수유아식 8종 10개 제품을 순수 자체기술로 개발해 지난 1999년부터 공급하고 있다. 작년에는 메틸말론산혈증 및 프로피온산혈증 환아를 위한 MPA 2단계 제품을 추가로 출시했다.
분유업계 1위 남양유업 역시 '특수분유' 제작 열기에 동참했다. 남양유업은 국제특허를 출원한 세계 최초의 간질환자용 액상치료식인 케토니아에 관심을 가진 끝에 지난 2001년 김흥동(연세대 의과대학)·김동욱(일산백병원) 교수와 공동으로 '케토니아 분유' 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이 분유는 환아들의 가정에서 난치성 간질의 발작증세를 멈추고 장기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케톤생성 식이요법'을 편리하게 실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남양유업은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케토니아 외에도 미숙아나 저체중아를 위한 '미숙아 분유', 알레르기성 질환 및 설사 등으로 고통받는 아기들을 위한 '호프 닥터', '호프 알레기' 등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제품들을 개발해 저가로 보급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사랑의 헌혈' 캠페인(왼쪽)/ 현대오일뱅크의 '1% 급여나누기운동'(오른쪽)
◆티끌모아 태산…급여에서 기부금 '떼내기'
올해 기업기부의 흐름에는 앞선 경우처럼 차별화된 기부방식도 있지만 '티끌모아 태산'식의 전통적인 기부방식을 고수한 기업들도 많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9월부터 임직원들이 매달 급여의 1%를 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기금으로 내놓는 '1% 급여 나누기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회사측은 기금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기 위해 별도의 재단법인인 '현대오일뱅크 1% 나눔재단'도 설립했는데, 현재 전체 1850여명 임직원 중 96%가 이 재단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재단을 통해 모아진 기금 총액은 11억3000만원 가량.
특히 이 운동에는 현대오일뱅크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임직원들도 함께 참여해 기부문화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일례로 충남 대산공장에서 출퇴근 버스를 운행하는 성신SAT 임직원들은 '급여 1% 나눔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약정을 맺고 전직원 22명이 월급 1%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KDB대우증권 역시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금융권의 대표적인 기부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사는 매월 자신의 급여 중 일부를 자동으로 기부하는 '사랑의 온도계'(참여율 88.6%)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현재 2627명의 직원이 월 평균 4220만원을 모으고 있다. 모금된 기부금은 각 지역본부의 지점에서 선정한 55개의 후원단체에 지원된다.
이밖에 SPC그룹은 지난 9월10일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전국푸드뱅크와 협약을 맺고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던킨도너츠, 삼립식품, 샤니 빵을 싣고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SPC 행복한 빵 나눔 차'를 운영하고 있다. 이 캠페인을 통해 SPC그룹 임직원들은 매일 하루 평균 1000개씩 연간 25만개의 빵을 전국의 사회복지시설과 농어촌 소외지역에 전달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