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선운사로 가는 길 도솔천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난 꽃무릇하며, 꽃무릇 지고 난 자리에 피어난 절절한 단풍은 매년 무르익지도 않은 가을 속으로 여행자의 발길을 유혹한다.
서정주 시비와 안현마을
◆꽃무릇 한 송이가 반기는 시심의 길
선운사로 가는 길, 때가 일러 피지 않은 꽃무릇을 아쉬워하면서 걸었다. 도솔천 냇가주변에도, 부도밭 가는 길에도 꽃무릇 한 송이 피어난 곳이 없다.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도솔천 가을 향기에 만족하며 천천히 걸었다.
지금 걷는 이 길을 오래 전에 시인 서정주(1915~2000)도 걸었다. 지금은 가을이지만 그는 이른 봄날 선운사 동백숲에 피어난 동백꽃을 보러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때가 일러 꽃구경은 하지 못하고 피지 않은 동백꽃을 아쉬워하며 막걸리집에서 막걸리로 마음을 달랬던 적이 있었나 보다. 그의 시 <선운사 동구>에 그 마음을 적고 있다.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피지 안했고/막걸리집 여자의/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시인이야 육자배기 가락에 담긴 붉은 꽃을 봤다지만, 평일 오전 ‘풍천장어’ 붉은 글씨 도드라진 식당 문은 잠겼고 어디에 앉아 가을 노래 한 번 들어볼까?
선운사 배롱나무
이런 저런 잡념을 이고 걷다보니 어느새 선운사다. 절 마당 배롱나무가 꽃을 피워 은은한 향을 흘린다. 만세루 마루 위에 단아하게 놓인 찻잔에 고인 건 꽃향기겠지.
유치원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연등 아래서 뛰어다닌다. 아이들 마음이 닿을까봐 하늘은 더 높이 올라가버렸다. 눈이 부시게 파랗다. 꽃이 피지 않았어도 계절은 그렇게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절 문을 나와 다시 길에 섰다. 돌아나가는 길, 동백꽃을 보지 못한 서정주 시인의 발걸음도 여기서부터 시작했으리라. 그렇게 걷는 길이 더 여유롭다.
도솔천 옆 길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쪼그리고 앉았다. 그곳에 피어난 꽃무릇 한 송이를 보느라 사람들은 떠날 줄 몰랐다. 방금 전까지 보지 못한 꽃이 금세 피었을 리는 없고 한 송이 피워낸 꽃무릇의 마음을 선운사로 가는 길에는 내가 보지 못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꽃무릇 구경을 하는 동안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꽃무릇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한 송이 붉은 꽃이 마음을 달래준다. 꽃무릇 지천으로 피어난 붉은 꽃밭도 황홀하겠지만 홀로 피어난 꽃이 더 귀해 보였다.
육자배기 가락에서 붉은 꽃을 본 시인의 마음이나 붉은 꽃 한송이 화석처럼 새긴 여행자의 마음이나, 선운사 가을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미당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선운사 부근
선운사 가을의 절정은 단풍이다. 꽃무릇 지고 난 도솔천 골짜기를 울긋불긋 물들이는 단풍이야 말로 사람을 시인으로 만든다.
사실 선운사 일대는 미당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시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겠지만 선운사 동백숲과 함께 동백호텔, 선운사 입구 등에서 그의 발길을 느낄 만하다.
동백호텔의 옛 이름은 동백장 여관이었다. 미당이 고향인 고창에 내려올 때마다 201호에 머물렀다.
또 선운사에서 동백호텔이 있는 선운사 상가단지로 가는 길목에 미당의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그의 시 <선운사 동구>가 새겨 있다. 시비에 새긴 글씨는 미당이 직접 쓴 육필 원고를 확대해서 돌에 붙이고 글씨 모양대로 새겨 넣었다.
<선운사 동구>는 1968년 출간 된 제5시집 <동천>에 실린 작품이다. 옛날에는 선운사 입구로 들어가는 삼거리쯤에 막걸리 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 곳은 지역 특산품인 풍천장어 집이 즐비하다.
들리는 얘기로는 그 막걸리 집 주모가 한국전쟁 때 죽었고 미당은 그 주모를 생각하며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지었다고도 한다.
선운리 마을 입구와 풍천장어
◆선운리와 돋움볕마을
선운사 동구를 지나 미당이 태어난 집과 미당문학관 등이 있는 선운리로 발길을 옮긴다. 삼인교차로에서 좌회전해서 강을 오른쪽에 두고 차도로 걷는다. 약 2.5km를 걸으면 용선삼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 길을 택한다. 그 길이 선운리로 가는 길이다. 약 2.5km를 더 걸으면 서정주 시인의 생가와 시문학관을 볼 수 있다.
마을 어귀에 ‘선운리’라고 쓰인 바윗돌이 있다. 그 앞에 ‘미당외가’라는 안내판이 달린 건물이 있다. 옛날 미당의 외가였는데 지금은 정미소 건물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길 오른쪽에 미당 생가가 있다. 그가 살던 집은 원래 초가였고 1972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새로 고쳤다. 그러나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바람만 불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은 흉물스러운 폐가의 모습이었다. 이런 옛집을 2001년 8월에 초가로 복원했다.
시인 서정주는 이곳에서 태어나 길 건너 돋움볕마을(안현마을) 산기슭에 묻혔다. 85년 동안의 인생, 그는 사람으로 태어나 시인으로 죽었다. 그리고 질마재 신화만 남았다. 생가에서 가까운 곳에 미당 시문학관이 있다.
시문학관 전망대에 올랐다. 한쪽 옆으로 그의 시집 제목에도 나오는 질마재가 보인다. 선운리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바다에서 잡은 어패류를 지고 질마재를 넘어 장터에서 곡식과 바꿨다. 질마재란 이름도 등짐을 지고 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다른 한 쪽으로는 생가와 선운리 마을이 굽어보인다. 정면에는 돋움볕마을(안현마을)이 보인다.
시문학관을 나와 길을 건너 방금 전에 전망대에서 보았던 돋움볕마을(안현마을)로 걸어갔다. 그 마을은 벽화마을이다. 벽이나 길, 담장과 지붕에도 온통 그림과 시가 적혀 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아저씨 아줌마 얼굴을 담에 그린 집도 있다.
잘 알려진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가 어느 집 담에 적혀 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그 앞을 지나가신다. 동네 구경 잘 하고 가라시며 웃는 아주머니 얼굴이 담장에 그려진 국화꽃을 닮았다.
이 마을 뒷산에 미당의 묘가 있다. 국화가 피는 계절이면 묘 앞에 노란 국화가 가득 피어난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미당이 태어난 생가와 미당문학관이 있는 선운리가 한 눈에 다 보인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로 - 선운사 방향 - 삼인교차로에서 좌회전 - 선운사
대중교통
고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선운사 가는 버스가 있다.
선운사에서 선운리, 안현마을로 가는 길은 7~8km 정도 되므로 시골향기 맡으며 걸어가도 된다. 삼인교차로 - 용선삼거리 - 선운리 - 안현마을로 찾아가면 된다.
<숙소>
선운사 주변 모텔 및 민박
<음식>
풍천장어와 복분자주. 풍천장어의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바닷물과 강물이 어우러지는 곳을 이르는 말인데, 특히 고창 선운리 일대 인천강 하류 지점에 강물과 바닷물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장어 살이 두툼하고 맛이 단백하다. 고추장양념구이와 소금구이 등이 있다. 고창 특산품인 복분자주는 여느 과실주처럼 단 맛이 돈다. 장어구이 안주에 복분자주를 즐겨도 좋겠지만 단 맛을 싫어하는 사람 입맛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