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회장은 경영에 실패했다!"
"나는 경영권에 집착한 적이 없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받아온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경영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올 초 알짜 계열사 웅진코웨이를 선뜻 시장에 내놓으며 그룹 회생의 의지를 불태웠을 때만 해도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최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 행보를 놓고는 '도덕적 해이'라며 혹평받고 있다.
윤 회장의 '추락'을 부추긴 것은 지난달 26일 그룹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전격적인 법정관리 신청 때문이다. 당시 채권단은 웅진그룹과 워크아웃 여부를 논의하던 중이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윤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위해 채권단과의 워크아웃 논의를 일방적으로 뒤엎고 법정관리를 택했다"면서 "이는 곧 우량계열사인 웅진코웨이 매각을 무산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법정관리는 워크아웃보다 채무 탕감 면에서 훨씬 유리해 자신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이를 악용했다는 것이다.
사진_ 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상처'뿐인 법정관리 행보, 왜 택했을까
법정관리 신청 당일, 윤 회장 자신이 웅진홀딩스 신광수 대표와 공동대표로 취임했던 것도 당시 논란을 키웠다. 지난 2006년 도입된 통합도산법에 따르면 법원은 기존 경영진이 회사 재산을 다른 곳에 쓰는 식으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관리인으로 선임한다. 이에 따라 채권단 측에선 윤 회장이 법정관리인으로 자신이 지정될 것을 확신하고, 1조1400억원에 이르는 웅진홀딩스의 빚을 갚지 않은 채 그룹을 정상화할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이번 액션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윤 회장은 이 같은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4일 웅진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지 9일 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윤 회장이 '도덕적 해이'라는 질타를 받는 이유는 또 있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 계열사에서 빌렸던 대여금을 상환하고 윤 회장의 부인이 계열사 주식을 전량 처분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웅진홀딩스는 법정관리 신청 하루 전날인 지난달 25일 계열사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에서 빌린 단기 대여금 530억원을 모두 갚았다. 채권·채무관계가 동결되는 법정관리에 앞서 빚을 상환해 웅진홀딩스가 이들 계열사의 손해를 대신 떠안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부분이다. 특히 상환 만기가 그달 28일인데도 사흘이나 앞당겨 갚은 점에 대해 계열사 손실을 줄이기 위해 미리 대여금을 갚았다는 의구심을 키웠다. 그러나 이에 대해 웅진 측은 "그 전에도 그와 비슷한 거래가 많았다"는 입장이다.
계열사 대여금 상환과 함께 윤 회장의 부인인 김향숙씨가 계열사인 극동건설 부도로 웅진그룹의 상장 계열사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기 전 이틀 동안, 보유한 웅진씽크빅 주식 4만4000주(0.17%)를 모두 처분한 부분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김씨가 주가 폭락 전 주식을 처분하면서 폭락 시와 비교해 5000만원 가까운 손해를 회피한 것이 윤 회장이 개입한 내부자 거래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어서다.
하지만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두달 전쯤에 (김씨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일이 있어 씽크빅 주식을 팔려고 했으나 못 팔았던 것뿐"이라며 "공교롭게 매도시기가 안 좋았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채권단 '반격', 검찰수사說 버텨낼까
이제 관심은 '사면초가'에 빠진 윤 회장이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 낼지에 쏠린다.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 채권단은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파산3부에서 열린 법정관리 신청 여부에 대한 타당성 심리와 관련 "윤석금 회장이 물러났어도 신광수 대표 역시 윤 회장의 측근이어서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돼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여기에 채권단 일각에서는 웅진홀딩스가 영업활동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계열사 주식을 관리하는 지주회사라는 점을 들어 '청산절차'를 밟는게 낫다는 강경론도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검찰 쪽의 반응도 윤 회장에겐 다소 불리하게 치닫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소지가 큰 법정관리를 놓고 기업 구조조정의 전반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간부회의를 통해 기업이 회생보다는 경영권 유지와 채무감면을 노려 법정관리로 도피하는 사례가 많다고 판단,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도록 간부들에 지시했다.
윤 회장을 둘러싼 고소 움직임도 곳곳에서 일고 있다. 지난 2일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서울중앙지검에 윤 회장과 신광수 대표 등 웅진 경영진 4명을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여기에 웅진코웨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였던 MBK파트너스 측도 최근 웅진을 상대로 소송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홀딩스 측이 MBK파트너스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바람에 계약금까지 묶이게 돼 손해를 봤다는 입장이다.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 신청 전 몇달 동안 대규모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LIG건설처럼 검찰이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LIG그룹이 지난해 3월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LIG건설을 통해 242억2000만원의 CP를 부당하게 발행,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최근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는 부분이다.
한편 윤 회장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서 기업회생절차까지 오게됐다"며 "채권단, 임직원, 나아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 '같은 위기 다른 대처'…윤석금 vs 박병엽
윤석금 회장으로 인해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새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부회장은 지난 2006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돌입에 앞서 당시 평가액으로 4000억원 규모에 달하던 보유주식을 모두 내놓으며 기업 살리기에 나섰기 때문.
특히 그는 12개 채권은행을 일일이 찾아가 현재 경영진이 물러나기를 요구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며 팬택 살리기에 나서 현재 윤 회장의 행보와 여러모로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두사람은 모두 영업사원에서 CEO가 된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받는 대표 경영자다. 박 부회장의 팬택은 2005년과 2006년 글로벌화를 추구하며 과감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섰지만 모토로라의 아성에 밀리며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윤 회장도 정수기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극동건설, 새한(현 웅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그룹을 키웠지만 문어발식 사업확장이 오히려 부실을 키웠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 부회장은 2007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직원들과 합심해 자구노력을 기울인 끝에 20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 작년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반면 윤 회장은 지난 2월 웅진코웨이 매각을 발표하며 승부사 기질을 보였지만 이후 웅진코웨이 매각 과정에서 말바꾸기를 일삼았고, 이번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꼼수' 평가로 인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