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는 직장동료들과 야유회를 떠났다가 화투판에 끼게 됐다. 며칠 전 뜻하지 않게 손에 쥔 즉석복권 당첨금 5만원을 밑천으로 용돈이나 불려 볼 생각으로 자리에 앉은 김씨는 가진 돈 대부분을 잃고 담뱃값 정도만 겨우 챙길 수 있었다. 양쪽에 앉은 두사람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만들어가는 화투판에서 김씨는 멍하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증권사들이 국민주택채권 등 소액채권의 수익률을 수년간 담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사들은 수익률 담합을 통해 최소 수백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소비자들은 증권사가 챙긴 이득만큼 손해를 봤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과징금 및 검찰고발이란 제재를 내렸다. 이를 두고 각계의 입장은 엇갈린다. 금융투자업계는 정책 목표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담합으로 보는 것은 억울하며 제재수준도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소비자단체 등은 증권사들의 행위를 비판하며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매일 오후 3시30분 '입 맞춰'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일 제1종 국민주택채권, 서울도시철도채권, 지방도시철도채권, 지역개발채권, 제2종 국민주택채권 등 소액채권의 즉시매도가격을 정하기 위해 한국거래소에 제출하는 채권 수익률을 사전 합의한 20개 증권사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총 192억3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대우증권과 동양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6개사는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소액채권은 주택이나 자동차를 구입할 때 의무적으로 구입하는 것으로 매입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곧바로 은행에 되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은 이 채권을 증권사에 넘기고 증권사는 이를 인수한 후 최종수요자에게 매도해 시세차익을 취한다.

예컨대 서울에서 6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면 주택가격의 3.1%에 해당하는 5년 만기 국민주택채권 1860만원어치를 구입해야 하는데 채권을 은행에 즉시 되팔면 매도가격을 뺀 차액 100만원~200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이때 소액채권금리가 높을수록 증권사는 낮은 가격에 채권을 매입할 수 있어 이득이 늘어난다. 반면 소비자들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다.
 
문제는 채권수익률이 매수전담 증권사들이 거래소에 제출한 수치를 평균 내 결정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매수할 소액채권의 가격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매매차익을 높이기 위해 2004년 3월부터 6년간 거래소에 제출하는 수익률을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담합했다. 증권사 채권담당자들은 매일 오후 3시30분 인터넷 메신저 대화방에 모여 다음날 제출할 수익률을 합의했다. 담합이탈을 막기 위해 거래소 수익률 입력화면을 출력해서 팩스로 보내 서로 확인하기도 했다.
 


◆증권사 "담합 지적 억울"
 
증권사들은 관행대로 이뤄진 일에 대해 담합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신고수익률 협의는 정부의 정책적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시작됐는데 증권사들이 부당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이란 지적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4년 소액채권 매매에 따른 국민부담 경감을 위해 소액채권 등록발행제를 실시했고 당시 증권사에 국고채와 제1종 국민주택채권간 수익률 차이(스프레드)를 종전 40bp에서 10bp 내외로 축소할 것을 권고했다.

B증권사 관계자는 "주식과 달리 장외 거래가 많은 채권시장에서 메신저 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관행"이라며 "채권시장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과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C증권사 관계자는 "금융투자업계가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과징금에 검찰고발까지 이뤄지는 것은 너무하다"며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업계가 힘든 상황에서 발목에 족쇄까지 채워서 되겠느냐"고 말했다.

검찰에 고발된 6개 증권사들은 재판에서 벌금형 이상이 확정되면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 3년간 신규사업에 진출할 수 없게 돼 중장기적으로 수익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 이번 공정위의 제재 이후 수익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래소에 소액채권 매수 전담사 자격을 반납하겠다는 증권사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협회는 투자자 신뢰에 만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투협은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의 국민주택채권 유통구조 개선과 국민부담 경감을 위한 정책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며 "이번 일을 신뢰회복을 위한 쇄신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단체 "부당이득 돌려줘야"

증권사들의 입장과는 반대로 공정위의 제재수위가 낮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은 "담합회사들은 4000억원의 이익을 취한 반면 과징금은 5% 수준인 200억원에 불과하다"며 "담합행위가 적발돼도 95% 이상의 담합이익을 취하고 5%만 과징금으로 내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 한명 이상이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담합 피해자 모두에게 소송의 효력이 적용될 수 있도록 '집단소송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담합업체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해상'을 적용해 담합에 따른 불이익이 큰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증권사들이 담합으로 취한 부당이득을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당이득을 반환하지 않으면 피해 소비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대 금융국장은 "은행의 CD담합, 생보사의 이율 담합, 증권사 채권수익률 담합 등 금융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담합사태는 금융당국의 무능함과 무책임이 그대로 소비자 피해로 전가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비자 피해를 반드시 해당 금융회사가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것은 공정거래법 제19조(가격의 공동 결정, 유지, 변경)를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민형사상으로도 소비자에 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금소연의 주장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