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법 개정안 처리 무산 소식이 전해진 당일, 전국상인연합회 관계자들의 휴대폰은 하나같이 전원이 꺼져 있었다. 어렵게 연결된 한 관계자는 "지금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하다. 아직은 논의단계여서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며 "다만 실망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을 아꼈다.
◆'유통법' 두고 중소상인간 갈등… 어쩌다?
같은 날인 11월22일 서울역 광장 앞에는 또 다른 중소상인들의 집회가 한동안 계속됐다. 이들은 대형유통업체에 납품하는 농어민, 중소기업, 임대소상인들이다. 이들은 유통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생존대책위를 꾸려 적극적인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500만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겠다며 유통법 개정안 반대 목소리에 힘을 보태러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유통법을 둘러싼 양측의 찬반논란 기싸움은 더욱 팽팽해졌고 향후 유통법 개정안이 어떻게 처리될 지 쉽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재래시장 상인들의 모임인 전국상인연합회 측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국상인연합회 측 관계자는 "우리는 거대자본을 가진 대기업과 싸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같은 중소상인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는 꼴이 됐다"며 "물론 납품업체들의 어려움이 크다는 건 알지만 전국 재래시장 상인들의 피해가 더 크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다.
전국 자영업자들의 모임인 또 다른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대형마트 납품업체들이 280만명이라면 전국 소상공인들은 500만~600만명에 달한다"며 "법이 필요하다면 10명이 아니라 90명에게 도움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논란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답답하다"며 말을 이었다. 그는 "납품업체들의 대형마트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만큼 타격이 크다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그 대안을 왜 대형마트에 대한 의존도를 더 키우는 쪽으로 해결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납품업체 입장에서 보더라도 대형마트 외에 안정적인 유통 네트워크를 다양하게 확보해주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얘기다.
서울시내 한 재래시장 상인회의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영세업자들이 대형마트와 같은 물류시스템을 갖추고 유통 네트워크를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형마트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며 "하지만 그래서 더욱 대형유통업체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물류시스템 문제 등을 지원해주는 방안이 필요한 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1968년 문을 연 대림시장. 텅빈 가게와 빈박스만이 남았다. 서민들이 찾던 그 시장은 시장 앞 8차선이 생기고 늘어나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과의 경쟁에서 밀려 4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_뉴스1 양동욱 기자
◆시장상인 "효과 있지만 일시적… 지원책이 더 중요"
그렇다면 실제로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하는 것이 재래시장 상인들의 매출 증대에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에 대한 조사결과가 제각각이어서 혼란만 커지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시장조사기관인 AC닐슨을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규제 강화의 실효성은 매우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적으로 70% 이상의 대형마트가 강제 휴업에 들어간 6월, 전통시장의 매출은 오히려 0.7∼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서울연구원에서 발표한 '대형마트 영업제한의 전통시장 매출증대 효과와 정책방안' 보고서(정책리포트 제125호)의 결과는 이와는 전혀 달랐다. 재래시장 점포 중 40%가량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한 것이다. 평균적으로 일 매출 8만3000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하루 평균 고객도 6.2명 늘었다. 특히 재래시장뿐 아니라 동네슈퍼나 정육점 등의 중소상인은 50% 이상이 매출 증가 효과를 느꼈다고 답했다.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현장에서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대형마트의 영업규제가 일시적인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날에는 소폭이지만 매출이 10% 안팎으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그는 대뜸 "대형마트 규제가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가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겠냐"며 "대형마트가 3일을 문 닫는다고 하더라도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30일 중 3일만 장사가 된다는 얘기"라고 쓴소리를 뱉었다. 규제보다 중요한 것은 재래시장의 활성화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재래시장의 상인회 부회장은 "정부도 대형마트도 영업규제에만 집중돼 있다 보니 재래시장에 대한 지원은 논의가 정체돼 있다"며 "소비자들을 대형마트에 못 가게 막는 것보다 전통시장으로 오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현재 이와 관련한 지원은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정부는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시장과 주변 관광지를 연계해 관광상품을 개발한 '시장투어 지원사업', 시장의 특성별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는 '공동마케팅 지원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7월부터 '1기관 1시장 자매결연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2009년부터는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이 같은 지원책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해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 재래시장 상인회 부회장은 "온누리상품권을 들고 오는 손님은 한달에 한번도 만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말만 번지르르한 생색내기 지원책이 상인들한테는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일침을 놓았다.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전통시장에 슬레이트 지붕을 놓아준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며 "실제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연구하고 이에 맞는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하루빨리 소모적인 논란이 정리되고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