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모든 조직원이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를 ‘애빌린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비단 가정에서만이 아니다. 회사나 일반 조직에서도 숱하게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회식 2차 장소로 노래방을 갔는데 알고 보니 아무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든지, 만장일치로 찬성한 아이템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했지만 팀원들의 무관심 끝에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든지 하는 경우 등이다. 실제로는 뉴욕에 가고 싶으면서도 ‘애빌린’으로 다같이 달려가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하거나 어리석은 일들이 빚어지는 현상에 대해 심도 있게 들여다본 책이 제리 하비 조지워싱턴대 경영학과 교수의 <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현대의 조직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합의관리에 실패해 비효율과 조직갈등을 겪는다고 말한다. 서두에 나온 저자의 경험담에 등장하는 가족에서부터 유수 기업에 이르기까지 합의관리를 잘 못하는 조직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첫째, 구성원들은 조직이 처한 상황이나 당면 문제의 본질에 대해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둘째, 구성원들은 자신의 욕구나 생각을 서로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셋째, 구성원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조치에 대해 ‘무언의 합의’를 한다. 넷째, ‘무언의 합의’에 동참하게 된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느끼게 되며 집단을 형성해 비난을 하게 된다. 다섯째, 만약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악순환이 반복되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조직생활을 했거나 하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애빌린 패러독스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봤을 것이다. 제리 교수에 의하면 1973년 미국을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 역시, 위에 열거한 애빌린 패러독스의 특성을 대입해볼 때 이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라는 것이다.
책은 모든 패러독스들이 그렇듯 애빌린 패러독스에도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요소들이 개입돼 있으며, 이를 찾아내고 분석해 대처방안을 마련한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일례로 들고 있는 건, 애빌린 패러독스의 가장 기본적 요소라고 하는 ‘공모의 상호작용’이다. 양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공모’라는 과정이 있기에 이 모든 결과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사의 독재는 부하의 아부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애빌린’으로 달려가게 된다.
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직언보다는 ‘눈치’와 ‘요령’이 더 늘어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조직에서 질문이 사라진 순간, 그 조직은 성장동력을 잃고 만다. 문제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내기 직장인들마저도 이런 조직문화에 부딪쳐 이내 동화되고 만다는 점이다. 의문과 궁금증을 동기부여로 삼아 자기 성장을 해오던 대학생들이 입사 후 아노미적 혼란을 겪는 것도 애빌린 패러독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제리 하비 지음 / 엘도라도 펴냄 / 1만 3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