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 소수인종 우대정책으로 차별받는 아시아인
미국 대법원은 지난 2003년 소수인종에게 대학 입학에 유리하도록 명시적으로 가점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다양성을 위해 입학 여부를 결정할 때 인종도 고려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미국 대학들은 인종비율을 고려해 입학생을 결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미국의 소수인종인 아시아인에게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아시아인은 미국 전체 인구 가운데 5.6%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른바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대인 아이비리그에서 아시아인 학생들의 비율은 12~16%에 달한다.
이정도면 아시아 학생들은 충분히 소수인종으로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현실은 반대다. 아시아인 학생들은 고등학교 성적, SAT 점수, 각종 대회에서 발휘하는 학문적 성과, 음악과 미술 등 과외활동 등을 종합해볼 때 능력에 비해 아이비리그 대학교에 입학할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실제로 뉴욕의 스타이브슨트와 브롱스과학고등학교, 샌프란시스코의 로웰고등학교,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토마스제퍼슨고등학교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영재 공립고등학교에서 아시아인 학생들의 비율은 40∼70%에 달한다. 이 영재 공립고등학교는 대부분 시험과 학교 성적만을 가지고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
성적으로만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영재 공립 고등학교와 비교할 때 성적 외에 리더십이라든가 독특한 개성 등을 감안하고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적용하는 명문대에서 아시아인 학생들의 비율은 초라할 정도로 낮다.
이에 대해 노스웨스턴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겸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 프로그램의 이사인 캐롤린 첸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소수인종 우대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아시아인 학생들이 오히려 백인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사회학자 토마스 J. 에스펜셰이드와 알렉산드리아 왈튼 래드포드가 2009년에 미국 명문대에 입학 신청서를 제출한 9000명 이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적과 시험점수가 같았을 때 백인 학생들은 아시아인 학생들에 비해 입학 허가를 받는 비율이 3배 더 높았다.
노스웨스턴대학의 첸은 이것이 마치 1920년대에 학업 성과가 뛰어난 유대인들이 아이비리그에서 비유대계 백인들과 경쟁하기 시작하자 대학들이 '성격'이나 '활력', '남자다움', '리더십'과 같은 모호한 기준으로 유대인 학생들의 입학을 제한했던 사례를 떠올린다고 지적했다.
사회학자 제롬 카라벨은 2005년에 하버드대와 예일대, 프린스턴대의 입학 허가 관행을 연구한 결과 유대인 학생들에 대한 암묵적이고 비공식적인 쿼터제가 1960년대 초까지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1920년대에 미국 인구의 대다수를 점했던 이른바 WASP(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들은 유대인 학생들의 비율이 급증해도 여전히 하버드대는 하버드대로 남을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현재 예일대 학생들은 58%가 백인이고 18%가 아시아인이다. 만약 이 비율이 아시아인 58%, 백인 18%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 주류사회는 학생들의 인종비율이 이렇게 역전되고도 예일대가 여전히 예일대일지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시아인 급증에도 하버드대 등록비율은 하락세
첸은 미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살만한 중상층 백인들에게 매우 민감한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중상층 백인들에게 학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아시아인 학생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특권과 권력, 혜택, 기회의 관점에서 매우 곤란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상당수의 백인 중상층 부모들은 아시아인 학생들이 너무 많다며 영재들을 위한 공립학교들을 회피하는데 속내는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시아인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백인 자녀들이 치일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백인 중상층 부모들은 점점 더 시험성적보다는 예술과 음악, 철학 등을 중시하는 이른바 진보적 교육관을 가진 사립학교에 자녀들을 더 많이 보내고 있다고 첸은 분석했다. 이러한 명문 사립학교는 시험성적으로 입학을 결정하는 영재 공립학교와 달리 아시아인 학생들의 입학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아메리칸 컨저버티브'(American Conservative)의 발행인인 론 운즈도 미국 명문대에 1920년대 유대인 쿼터제와 같은 아시아인 쿼터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예컨대 하버드대의 경우 아시아인 학생들의 등록비율이 1993년 20.6%에서 10여년간 16.5%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반면 이와 비슷한 기간인 1992년부터 2001년까지 대학진학 연령에 도달한 18~21세 아시아인 숫자는 두배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백인들의 18~21세 인구 숫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아시아인 학생들은 숫자가 두배로 늘어났음에도 오히려 하버드대 등록비율은 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첸은 명문대학들의 인종별 쿼터제가 암묵적이긴 하지만 매우 극명한 현실이기 때문에 아시아인 학생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스웨스턴대학의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은 자신의 인종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신들을 얼굴 없는 괴짜 군중들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해 대만과 한국, 인도 등 아시아지역에서 교육을 많이 받은 기대 수준이 높은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부모들의 근로윤리와 신념, 교육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은 그들의 자녀들을 낙인찍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고 첸은 주장했다.
첸은 명문대 진학률이 낮은 흑인과 히스패닉, 아메리칸 인디언들, 인종과 관계없이 저소득층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 중상층 백인들과 아시아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첸은 또 명문대가 성적 우수자들만 받아들이는데 찬성하지 않으며 다양한 범위에서 특출한 재능을 가진 폭넓은 학생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입학 사정에서 '개성'이나 '독특함'과 같은 주관적 기준이 아시아인 학생들에게는 불공정하게 적용되는 사례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적이 학생들의 자질을 결정하는 전부가 아니며 학생들의 인종적 다양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명문대의 아시아인 쿼터제는 아시아인 학생들에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유리처럼 장벽이 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인 것 같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