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회사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잘못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가 지난 8일 사과문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증권가가 삼성증권의 이른바 ‘유령배당’ 사태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 6일 삼성증권은 우리사주조합 소속 직원들에게 1주당 1000원의 배당금 대신 1000주의 주식을 지급한 112조원 규모의 초대형 금융사고를 냈다.
그럼에도 삼성증권은 이 같은 이상 징후를 파악하지 못해 내부통제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는 가운데 삼성증권 내부에선 대대적인 문책인사가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배당 사고 16명 대기발령… 문책인사 이어질 듯
삼성증권은 대규모 문책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우선 삼성증권은 이번 사태를 야기한 16명의 직원들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민사상 책임을 묻기로 했다. 형사 고발 여부도 검토 중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삼성증권은 지난 6일 오전 9시30분 우리사주 조합에 배당금 28억원 대신 주식 28억1000여주를 입고했다. 입고 직후 삼성증권 직원 16명은 9시35분부터 30분 동안 주식 501만3000여 주를 시장에서 매각했다.
이에 삼성증권 주가는 한때 전 거래일 종가 3만9800원보다 약 12% 급락한 3만5150원까지 미끄러졌다.
앞서 삼성증권은 오전 9시39분께 직원에게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이후 오전 9시45분에 잘못 입력된 주식 매도를 금지하는 공지를 띄웠다. 오전 10시8분에는 시스템상으로 전체 임직원 계좌에 대해 주문정지 조치했다. 그러나 이미 16명 직원이 매각한 뒤였다.
이들 16명의 직원 중에는 리서치센터, 투자은행(IB), 영업팀, 리스크관리팀 등을 비롯해 팀장급 간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고 당일 501만2000주를 장내 매도했다. 이 중 한명은 350억원 어치(약 100만주)의 매도 물량을 한꺼번에 쏟아내 주가에 충격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점유이탈물횡령죄로 형사 처벌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삼성증권에 대한 특별점검에 돌입했다. 갑작스런 주가 급락에 주식을 부랴부랴 매도해 손실을 본 투자자의 피해를 적극 보상할 것을 삼성증권에 권고한 상태다. 사고 발생일인 6일 이후 9일 오전 11시 기준 접수된 피해 사례는 총 59건이다.
이에 삼성증권 측은 “투자자 피해구제 전담반을 설치했다”며 “민원접수와 법무상담 등 피해 투자자 접수와 신속한 구제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증권 내부 징계는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지면 향후 삼성증권 내부통제 시스템 변화에 따른 조직 개편과 문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번 삼성증권 사태를 계기로 모든 증권사에 대해서도 증권계좌 관리시스템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전체 증권사를 비롯해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등 유관기관 등을 대상으로 주식거래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금감원은 ‘원’을 ‘주’로 입력했을 때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사주 배당입력시스템의 허점… 계열사까지 번진 책임론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입력오류가 가능했을까. 삼성증권 등 우리사주 배당 입력시스템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리사주 조합원에 대한 현금배당은 일반 주주와 달리 예탁결제원을 거치지 않고 발행회사(삼성증권 등)가 직접 업무처리를 한다. 발행사가 직접 조합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특히 삼성증권의 경우 현금배당과 주식배당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에서 처리해 대형 사고의 개연성이 더 높았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이처럼 예탁결제원을 벗어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입력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삼성증권 외에도 4개 증권사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의 해당 시스템은 삼성SDS에서 구축, 총괄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삼성SDS는 해당 시스템을 구축했을 뿐 운영까지 도맡은 것은 아니라서 이번 사태에서는 비껴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즉각 사후조치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이건희 회장 시절 미래전략실이라는 컨트롤타워가 있었던 때와 대비된다”면서 “미전실 해체 이후 계열사들의 자율 경영체제가 확립된 점은 긍정적 측면이지만 이번 사태처럼 일이 터졌을 때 소송전이 줄줄이 이어지고 사태를 해결하기까지 시간만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유령주식’ 배당 사태를 놓고 경제부처 간 의견이 엇갈린다. 금감원은 이번 사태가 공매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삼성증권 직원들이 내다 판 501만주를 ‘무차입 공매도’로 보고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당국의 증권시스템 수술을 앞두고 부처 간 입장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