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 3사가 ‘양자암호통신’이라는 새로운 통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최근 정보기술(IT)기업을 중심으로 보안이슈가 대두되면서 양자암호통신에 이전보다 더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양자암호통신은 분자보다 더 작은 단위인 양자 구성요소(광자)의 중첩과 얽힘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통신기술이다. 빛 알갱이의 특성상 복제가 불가능하며 그 안에 암호키를 저장, 송수신자가 나눠 갖기 때문에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데이터가 중간에 탈취됐을 경우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 안전하게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다.
현재 이통3사는 이진법을 사용해 데이터를 암호화한다. 이 방식은 제3자가 암호키를 가로챈 사실을 즉시 파악할 수 없어 도청이나 위변조에 취약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통사들은 양자암호통신에 집중한다.
◆양자암호통신기술 속속 개발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에 따르면 국내 양자정보통신시장 규모는 2016년 56억원에서 2020년 707억원, 2025년 1조4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양자암호통신에 뛰어든 곳은 SK텔레콤이다. SK텔레콤은 2011년 양자기술연구소(퀀텀테크랩)를 설립하고 물리학·수학·공학박사 등 13명의 전문인력을 채용해 양자암호통신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지난해 경기도 성남시에서 수원시까지 왕복 112㎞ 구간에서 유선양자암호통신 시연에 성공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현재 SK텔레콤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인 5×5㎜ 양자난수생성 칩을 개발하는 수준까지 기술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난수생성 칩은 일정한 패턴 없이 예측 불가능한 난수를 만들어내는 장치로 양자암호통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에는 스위스 제네바 소재 양자암호통신 원천기술 보유 기업인 아이디큐(IDQ)를 인수하면서 시장선도기업의 입지를 다졌다. SK텔레콤은 IDQ에 7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고 1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원장은 “양자암호통신은 4G에서 5G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 보안기술”이라며 “5G 이동통신망이 상용화되고 사물인터넷(IoT) 등 중요한 정보가 생성되는 기기에 양자난수생성기 칩을 집어넣어 양자형태의 암호기술 보안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IoT에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뒤질세라 KT와 LG유플러스도 양자암호통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술개발에 나섰다.
KT는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IST)과 공동으로 일대다 양자암호통신 시험망 구축에 성공했다. 이 시험망은 KT 상용네트워크 환경에서 하나의 서버와 다수의 클라이언트가 동시에 양자암호키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KT 측은 “기존 방식과 달리 하나의 장비로 다수의 지점과 동시에 연결할 수 있어 양자암호통신망 구축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 서초구 융합기술원에 테스트베드를 개소하고 경기도 수원시의 KIST양자통신 응용연구센터 간 46㎞ 일대일구조 양자암호통신 시험망을 운영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양자암호통신 저변 확대를 위해 국내 양자암호통신 관련 우수 기업 및 연구소와 함께 ‘양자암호통신 에코 얼라이언스’도 출범시켰다.
LG유플러스는 이통3사 가운데 가장 늦게 양자암호통신에 발을 내디뎠다. 지난달 LG유플러스는 양자암호통신업무를 5G 전송팀에 이관하면서 양자암호통신 기술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LG유플러스의 5G 전송팀이 네트워크부문 내 네트워크개발담당 부서인 점을 감안하면 5G 네트워크에 양자암호통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전 단계로 풀이된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양자암호통신의 중요성은 회사 내부에서도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일각에서 제기한 바와 달리 아직 구체적인 로드맵은 수립하지 않았다. 현재는 해당 기술의 방향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세계 뛰는데 국내는…
국내 이동통신업계가 양자암호통신시장을 선점하겠노라며 걸음마를 하는 사이 세계 각국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인력과 기술을 습득했다.
특히 이 분야의 선두인 중국은 압도적인 기술 수준을 자랑한다. 중국은 2016년 세계 첫 양자암호통신 위성 ‘묵자호’를 발사했으며 올 초에는 이를 활용해 중국 베이징과 오스트리아 빈까지 7600㎞ 구간에서 양자암호통신 시연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1200㎞ 구간에서 무선양자암호통신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미국과 독일은 각각 120㎞, 144㎞의 거리에서 무선양자암호통신 실험에 성공했으며 일본도 2012년 45㎞ 양자암호화 동영상 전송에 성공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정부주도 아래 양자암호통신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9월 안휘성에 세계 최대 국립 양자정보과학 연구소를 짓고 2년6개월간 760억위안(약 13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간 약 172억원을 양자암호통신에 투자하지만 액수는 세계 20위권 수준에 그친다. 양자암호통신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전략’을 수립하고 12개의 핵심과제를 도출했다. 이어 중소기업의 연구비용 90%를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업계가 말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이다. 국내에 양자암호통신 관련 전문논문을 게재한 연구인력은 100명이 채 안된다.
이를 두고업계 전문가는 “국내의 경우 자금지원보다 기술을 연구할 인력의 규모가 너무 적다는 점이 문제”라며 “당장 눈앞의 기술개발에 세금을 쏟아 붓는 것보다 기업의 기술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6호(2018년 4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