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그룹은 베스띠벨리, 비키 등의 브랜드를 발판으로 독보적인 여성패션업체로 올라섰다.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면서 글로벌 패션그룹이란 장밋빛 청사진도 제시했다.
하지만 황태자 리스크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주인공은 신원 설립자 박성철 회장의 차남인 박정빈 부회장. 장남이 목회활동에 전념하고 있어 신원의 차기 후계자로 알려졌다. 그는 3년 전 회삿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수감생활을 했다.
그리고 지난달 2일. 그는 다시 경영권을 거머쥐었다. 지난 4월30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지 두달여 만이다. 회사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해외사업이 차질을 빚는 등 챙겨야 할 현안이 많았다는 게 표면적인 복귀 이유다.
하지만 그의 복귀를 두고 여전히 말이 많다. 법원 선고대로라면 그의 형기 만료는 오는 9월. 석방 후에도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곳간 열쇠를 꿰찬 시점이 빨라도 너무 빨라서다. 들쑥날쑥하던 후계구도도 변곡점에 서있다.
◆복귀 한 달… 공백 메우기 ‘안간힘’
경영 복귀 한달여, 박 부회장은 무급여로 일하면서 주요 현안 처리에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1년부터 신원그룹 후계자로 거론되면서 내수와 수출 부문까지 총괄하는 등 경영 전반에 참여해왔다. 2012년 실권을 잡은 뒤 본격적인 경영에 나섰고 횡령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상고심을 치르던 2016년까지 경영에 관여했다.
신원그룹 관계자는 “(박 부회장이 수감되기 전) 전반적인 경영 업무를 모두 담당했다”며 “그동안 오너 부재로 의사결정이 더뎌 추진하던 사업이 중단될 뻔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석방 후 부재기간 동안의 공백을 메우는 현장 중심 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급물살을 타는 개성공단 정상화 및 재입주도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호재 중 하나다. 신원은 개성공단 입주 1호 기업으로 지난 10여년간 개성공단 운영 노하우를 축적했다. 제조기업 입장에서 개성공단은 언어의 동질성은 물론 봉제기술이 우수하고 육로로 제품을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신속한 물류 능력과 저렴한 인건비를 갖춰 최고의 생산기지로 꼽힌다.
신원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 가동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것을 막는 법안만 마련된다면 무조건 재입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또 ‘2018년 재도약의 해 선언’에 맞춰 공개한 ▲남성복 브랜드 ‘지이크’, ‘지이크 파렌하이트’ 신 전략 수립 ▲마크엠 집중 육성 ▲전면 리론칭 브랜드 ‘비키’ 백화점 유통 강화 ▲헤리티지 브랜드 ‘베스띠벨리’ 대리점 사업에 전력 투구 ▲온라인 사업 강화 ▲수출 부문 니트 사업 집중 육성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 ‘비리 경영인’ 낙인… 실적 반등 ‘글쎼’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중국 사업의 경우 박 부회장 수감으로 계획에 차질을 빚은 데다 지난해 한한령과 맞물려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개성공단 사업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유무가 결정되는 등 정치적 불안정성이 크다.
패션업황이 좋지 않다는 점도 악재다. 실제 신원은 지난해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5년 만에 영업이익이 다시 1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58억원이던 당기순손실도 98억원까지 확대됐다. 올 1분기에도 1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앞으로도 실적 반등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박 부회장에게 찍힌 ‘비리 경영인’이라는 낙인은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아버지는 사기회생과 조세포탈 혐의로, 아들은 횡령으로 신원 오너 부자가 모두 비리를 저질러 신뢰를 잃었다”며 “떨어진 이미지는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후계구도 변곡점… 차남 박 부회장 유력
후계구도에 대해서도 도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신원은 오너 부자 비리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아들인 박정주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박 대표는 그전까지 수출 부문만을 담당하며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모양새였지만 형의 실형으로 잠시나마 경영권을 꿰찼다.
하지만 거기까지. 박 부회장이 다시 실권을 잡으면서 신원의 후계구도는 다시 차남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박 부회장 입장에선 이제 명분만 쌓으면 되는 셈이다. 세 아들 중 회사에 보인 경영성과가 가장 많은 만큼 시너지 창출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그만큼 수익성과 건전성을 키우지 못하면 본인의 저주에 본인이 빠질 수도 있다.
도덕적 자질 논란은 아직 남아있다. 특히 그가 저지른 혐의는 회삿돈 횡령이다. 그러다 보니 단순 세습경영 차원을 넘어섰다는 평가와 함께 신원이 수감생활 중인 박 회장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박 부회장이 현재 갖고 있는 경영권도 오너가의 각종 비리로 일군 결과 아니겠냐”면서 “오너가 비리로 얼룩진 신원을 바라보는 업계 시선은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오리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는 그룹 임직원들도 전혀 생각지 못한 불안요소이자 오너 개인을 넘어 기업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3호(2018년 8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