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이 집에 빠졌다. 이들은 집을 꾸미고 집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집에서 여가를 보내는 이른바 ‘홈족(Home族)’의 탄생이다. 집에서 운동을 하는 홈트족, 집에서 피부를 가꾸는 홈뷰티족,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홈카페족 등 홈족은 무한하게 확장되고 있다. 홈족의 유형과 탄생 배경을 들여다보고 홈족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정리해봤다. <편집자주>
[홈족의 탄생] ② 집에서 나만의 음료를 즐긴다… '홈카페 놀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 모 커피제품 광고카피가 집안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부엌, 거실 한켠, 방 한구석 등이 카페로 변신하는 것이다. 일명 ‘홈카페(Home cafe)’다. 홈카페는 집에서 커피나 디저트를 즐기는 문화를 뜻한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홈카페를 SNS에 게시하는 놀이가 유행이다. 음료 제조 영상이나 플레이팅 사진을 공유하고 자랑하는 행위는 일종의 놀이처럼 번졌다. 이를 두고 ‘홈카페 놀이’라는 말도 붙었다.
홈카페 사진과 영상은 SNS를 달구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홈카페’를 검색하면 무려 77만여개의 게시물이 등장한다. ‘홈카페놀이’는 6만여개가 검색되며 ‘홈카페그램’과 ‘홈카페영상’도 각각 1만여개, 5000여개에 달한다. 유튜브에는 홈카페 영상을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도 등장했다.
◆홈카페 놀이, 소품이 반이다
사람들이 이토록 홈카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기자가 직접 홈카페에 도전해봤다. 사실 도전이란 말은 거창하다. 집과 음료만 있으면 완성되는 게 홈카페다. 카페처럼 크고 비싼 커피머신이 없어도, 바리스타처럼 전문적이지 않아도 된다. 캡슐 커피머신나 인스턴트 원두커피 등을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나만의 카페를 차릴 수 있다.
다만 카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중요하다. 인스타그램에서 ‘#홈카페’를 검색해 게시물을 관찰했다. ‘좋아요’를 부르는 홈카페 사진과 영상에는 감각적인 플레이팅이 돋보였다. 제조과정에 쓰인 소품에도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소품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홈카페의 품격이 좌우되는 듯했다.
포털사이트에서도 홈카페를 검색해봤다. 연관검색어에는 ‘홈카페 소품’, ‘홈카페 용품’, ‘홈카페 컵’, ‘홈카페 꾸미기’ 등이 떴다. 그 수요를 증명하듯 홈카페 용품만 모아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도 있었다. 해당 쇼핑몰에는 각종 컵과 접시뿐만 아니라 얼음스쿱, 계량스푼, 거품기 등 고급진 주방소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일명 ‘인스타 감성’을 끌어올려줄 트레이, 매트 등 장식용품도 즐비했다.
우선 소품을 사야했다. 평소 요리에 쓴 냄비나 프라이팬을 통째로 식탁에 가져와 밥을 먹는 기자에게 그럴듯한 소품이 있을 리 없었다. 쇼핑몰에서 주문하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잡화점으로 향했다. 유리컵, 계량컵, 아이스크림 스쿱, 티스푼 등을 세심하게 골랐다. 집으로 향하던 길에 잡화점으로 되돌아가 삼각대도 구매했다. 은근히 필요한 게 많았다.
◆홈카페 인생샷 건지려면
지난달 28일 퇴근 후 집에서 홈카페를 열었다. 메뉴는 말차라떼. 홈카페족이라면 한번쯤 시도하는 메뉴이자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들도 즐길 수 있는 음료다. 말차 파우더에 우유를 부으면 완성되니 간편하다. 여기에 녹차 아이스크림을 한스쿱 올려주면 요즘 유행하는 홈카페 유형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장소다. 작은 평수의 자취방 안에서 카페로 내줄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고민 끝에 책상 위에 재료를 펼쳤다. 식탁보를 이용해 배경도 만들었다. 삼각대로 휴대폰을 거치하고 동영상 녹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여느 홈카페 영상처럼 한모금 마셔보고 싶은 비주얼이 나오지 않았다. 영상미나 시각·청각적인 효과도 없었다.
홈카페 전문가들의 조언이 필요했다. 3만여명의 홈카페족이 가입된 인터넷 카페에서 조언을 얻었다. 회원들은 이 공간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친목을 다진다. 주로 커피 원두는 어떤 것을 썼는지, 추출도구는 무엇을 썼는지, 소품은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등의 내용이 오간다.
전문가들은 ▲음료가 담기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유리잔을 이용하라 ▲흰 천이나 흰 테이블을 이용해 깔끔하게 연출하라 ▲밋밋하다면 나무 트레이, 그림액자, 식물 등을 활용하라 ▲라떼 제조 시 예쁜 마블링을 내고 싶다면 작은 크기의 얼음을 사용하고 우유를 천천히 부어라 ▲아이스크림을 예쁘게 담고 싶다면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떠서 스쿱에 채워라 등의 팁을 줬다.
개성 있는 메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무난하게 가기로 했다. 아이스 카페라떼로 홈카페 2차 시도에 나섰다. 대신 플레이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문가의 조언대로 책상 위에 흰천을 깔았다. 집에 있는 화분에서 잎사귀 하나를 꺾어 책상 위에 올렸다.
촬영 시작. 컵에 얼음을 넣고 우유를 쪼로록 부었다. 우유가 얼음 사이를 파고들자 타닥타닥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위에 인스턴트 커피 2봉지와 뜨거운 물 30ml를 넣어 만든 에스프레소 샷을 부었다. 우유와 에스프레소의 마블링이 다소 아쉬웠지만 그렇게 1분짜리 영상이 완성됐다.
◆홈족은 왜 홈카페에 빠졌나
촬영을 마치고 홈카페 공간을 돌아보니 요즘 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찾아왔다. 연출도 힘들었고 뒤처리도 일이었다. 영상 촬영이 주 목적이 된 탓이었다. 어렵게 얻은 영상을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작위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게 부끄러워 몸서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음이 녹기 전에 커피를 마셔야 했다. 노래를 틀어놓고 다이어리를 정리하며 커피를 들이켰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새로운 공간과 경험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만족감이 밀려왔다.
홈족이 홈카페 놀이에 빠진 이유도 이와 같다. 홈카페족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취향껏 만든 음료를 마시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커피를 내리고 플레이팅하는 과정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 시간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9.5%가 ‘집에서도 커피 한잔을 즐길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업체는 이를 두고 “심리적인 위안을 주는 공간인 집에서 다양한 것들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홈족은 집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며 자기만의 ‘케렌시아’를 만든다. 케렌시아는 안식처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본래 투우 경기에서 소가 투우사와 싸움 중에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지칭한다. 전쟁터와 같은 일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홈카페는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 홈카페를 통해 일상을 구원할, 자신만의 케렌시아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