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뉴스1 (중국 외교부)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중국 공산당이 3차 역사결의를 채택하고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을 찬양함으로써 시 주석이 영구집권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1차 역사결의는 마오쩌둥 유일지도체제 확립을 위한 것이었고, 2차 역사 결의는 마오 시대를 청산하고 덩샤오핑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것으로, 개혁개방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번 3차 결의는 시 주석의 리더십을 찬양함으로써 그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결의는 중국 공산당이 중요한 분기점에서 채택하는 역사적 문건으로, 중국 공산당의 주요 분기점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시대를 구분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 3차 역사결의, 시주석 영구집권 위한 포석 : 중국 공산당은 11일 막을 내린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의'를 의결했다.

중앙위는 결의문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현대 중국 마르크스주의인 동시에 21세기 마르크스주의고, 중국 문화와 시대의 본질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의 새로운 도약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이행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입장, 관점, 방법을 사용해 시대를 관찰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역사 결의는 현재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만든 덩샤오핑 시대와 시진핑 시대의 차별화에도 신경을 썼다.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30여 년에 걸친 개혁 개방으로 국력이 커졌지만 빈부 격차, 경기 하방 압력, 생태 파괴 등 문제도 나타났다며 시 주석이 시작한 새로운 개혁이 덩샤오핑 개혁의 계승이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개혁 개방의 최대 그늘인 빈부 격차 문제의 해결책으로 시 주석이 역점을 두고 있는 '공동 부유'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특히 시 주석의 리더십을 극찬함으로써 시 주석 영구집권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공산당은 이번 역사결의에서 시진핑 신시대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당대 마르크스주의, 21세기 마르크스 주의, 중화문화와 정신의 시대적 정수로, 당이 시진핑 동지를 당 중앙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전당, 전군, 전국 각민족, 인민의 공통된 염원이라고 언급했다.

앞으로 중국 공산당은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시 주석의 영구집권을 합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중국 공산당은 지금까지 모두 2번 역사결의를 채택했다.

◇ 1차 역사결의, 마오쩌둥 일인 지도체제 확립 : 첫 번째 역사결의는 1945년에 나왔다. 공산당이 대륙을 해방시킨 것은 1949년이니 중공이 성립되기 4년 전이다.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 초상화.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당시만 해도 공산 중국의 아버지 마오쩌둥에게 권력이 확고하게 집중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모든 당내 파벌의 투쟁을 청산하고 마오쩌둥 단일대오로 뭉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채택된 문건이 제1차 역사결의다.
중국 공산당은 ‘우리 당 역사의 특정 문제에 대한 결의’라는 제목의 문서를 채택해 마오쩌둥을 중국 공산당의 유일한 지도자라고 정의했다.

공산당은 1차 역사결의에서 "마오쩌둥만이 중국 공산당을 이끌 ‘올바른 정치 노선’을 갖고 있다"고 선언했고, 이후 마오쩌둥은 다른 파벌의 견제 없이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 2차 역사결의 가장 유명, 덩샤오핑 시대 열어 : 두 번째 역사 결의는 덩샤오핑이 자신의 시대를 연 뒤 채택했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제11기 6차 중전회의에서 ‘건국이래 당의 몇 가지 역사적 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다.

선전에 있는 대형 덩샤오핑 포스터 - 바이두 갈무리

공산당 성립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공의 주요정책과 사건에 대해 체계적으로 평가를 내린 것이다.
요점은 마오쩌둥의 공과를 모두 언급, 마오쩌둥의 공로를 평가함과 동시에 그의 과오도 인정하고 그의 우상화를 부정한 것이다.

공산당은 2차 역사결의에서 ‘1966∼1976년 마오쩌둥이 발동한 문화대혁명은 당·국가·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엄중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좌경적 오류를 범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원리와 마오쩌둥 사상의 궤도를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정의했다.

역사결의는 그럼에도 ‘마오쩌둥은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이고, 위대한 프롤레타리아혁명가요, 전략가이며, 이론가다’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와 같은 역사결의는 마오쩌둥은 영원히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는 우상적인 신화를 뒤엎고, 마오쩌둥의 신적지위를 붕괴시켰다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이는 소련의 흐루쇼프가 집권 이후 스탈린을 격하한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으로, 마오의 과오를 지적했지만 그의 공로도 인정해 마오의 정통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같은 역사결의를 채택함으로써 덩샤오핑은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2차 역사결의는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둥의 과오도 분명히 지적해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건으로 평가된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