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행적 논란을 계기로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를 비롯한 친일단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친일파 각각의 이름은 익숙한 반면 친일 단체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영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증조부가 고종을 진료한 의사였다고 자신의 집안을 소개했다. '4대째 의사 가문'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하지만 방송 직후 네티즌의 검증 과정에서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알려졌다. 소속사 측은 당초 의혹을 부인했지만 관련 자료를 확인한 후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 자혜의학전문학교에서 서양의학을 배운 뒤 한국인 최초로 서양식 개인 의원을 연 인물로 알려졌다. 병원을 운영하며 왕실 진료에도 참여했고 1919년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 이면에 그가 친일 단체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은 안상호 개인을 넘어 그가 속했던 단체로 확대됐다. 대중에게 익숙한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 개인의 이름과 달리 이들이 조직적으로 뭉쳐 활동했던 친일 단체의 구체적인 명칭과 만행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이번 사태가 역사적 재조명의 계기가 되고 있다.
이완용·송병준의 '친일 사교클럽' 대정실업친목회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몸담았던 대정실업친목회는 1916년 일제의 억압이 극에 달했던 무단통치 시기에 결성됐다. 당시 조선인의 자율적인 정치·사회 결사 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임에도 이례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조선인 단체였다.표면적으로는 산업 진흥과 친목 도모를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조선총독부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관제 단체였다. 창립 당시 대표적 매국노이자 일제 하에서 자작 작위를 받은 조중응이 회장을 맡았고 안상호 등이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조직 개편을 거치며 민영기, 이완용 등 당시 일제 귀족 계급의 친일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는 일명 '내선 융화'를 주장하며 일제 식민 통치에 순응할 것을 종용하는데 앞장섰다. 역사학계에서도 대정친목회는 대표적 친일 단체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황국신민화부터 징용·징병까지…민족 말살의 행동대장들
대정친목회만가 유일한 친일 단체는 물론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전반에 걸쳐 다양한 친일 단체들이 조선의 숨통을 조였다. 특히 1930년대 후반 일제가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단' '국민총력조선연맹' 등 거대 친일 관변 단체들이 등장했다.이들의 역할은 단순한 친목이나 선전에 그치지 않았다. 본격적인 민족 말살 정책의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등을 강요하며 조선인을 일왕의 신민으로 동화시키는 일명 '황국신민화 정책'을 사회 곳곳에 퍼뜨렸다.
전쟁이 격화하면서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구호 아래 조선 청년을 학도병과 징용으로 내몰았다. 어린 여성들은 정신대와 위안부로 내몰기도 했다. 부족한 전쟁 물자를 채우기 위해 각 가정의 놋그릇과 숟가락까지 빼앗는 강제 공출 운동을 주도한 것도 친일 단체들이었다.
광복 이후 정부는 오랜기간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채 격변의 시대를 맞았고 사회적 갈등 요소가 되기도 했다. 광복절이 3일 앞으로 다가온 만큼 아픈 과거를 돌아보는데 그치지 않고 바르게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