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친환경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친환경이라더니 '환경 파괴'… 소비자 기만하는 '그린워싱' 여전
②겉만 친환경 "안돼"… 그린워싱 제재 나선 정부
③'친환경' 간판에만 매몰된 기업들… 투자 없인 '도태'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가 확산하면서 친환경 사업이 기업의 경쟁력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려는 것도 투자를 유치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기업들이 친환경 타이틀에 매몰된 나머지 보여주기식 사업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게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재생에너지 안 쓰면 거래처 끊긴다"… 등 떠밀려 선언한 'RE100'

서울 관악구 KT구로타워 옥상에 구축된 태양광발전소에서 KT 직원이 RE100 가입을 알리는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KT

전 세계적으로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선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자발적 캠페인이다.


국내에선 삼성전자를 필두로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네이버 등 27곳이 RE100에 참여했다. 삼성전자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SK그룹은 2030년까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210억톤)의 1%에 해당하는 2억톤의 탄소를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030년 재생에너지 전환 비율을 50%로 설정하고 2040년 90%, 2045년 10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같은 잇단 RE100 선언에도 환경 단체들은 한국 기업들의 친환경 정책이 글로벌 평균 이하라고 지적한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발간한 '온실가스 배출의 외주화'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기후위기 대응 목표와 실천 모두에서 최저점을 받아 글로벌 전자제품 브랜드 중 가장 낮은 점수인 F를 받았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제조사 중 가장 낮은 점수인 D를 받았다.

양연호 그린피스 활동가는 "삼성을 비롯한 다수 기업의 RE100 목표 시점이 2050년으로 매우 늦고 국내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량 역시 매우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그럼에도 기업들은 자신들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고 지적했다. 그린워싱이란 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실제 활동보다 이점이나 효과를 과장해 친환경적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마케팅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국 기업들의 RE100 참여를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환경을 생각해 자발적으로 RE100에 참여한 게 아니라 고객사 기업들의 요구에 따라 등 떠밀리듯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애플은 지난해 공급업체들에 기존의 RE100 요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2030년까지 조기 달성하라고 공지했다. 2021년 기준 애플의 공급사인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를 포함해 23곳에 이른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애플이 자신들과 거래하는 기업들에 매년 RE100 진척 상황을 의무적으로 보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삼성전자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다"며 "삼성전자의 전체 생산량 중 80%를 만드는 한국과 베트남이 대표적으로 RE100을 못 하는 나라"라고 우려했다. 이어 "반도체 호황기가 돌아오더라도 RE100 등으로 인해 수출길이 막혀 삼성전자의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무늬만 친환경 안돼"…그린워싱 경계하고 실효성 높여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10월31일 RE100 기업 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환경부

친환경 경영전략이 강화되는 가운데 이를 악용한 그린워싱 마케팅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린워싱을 막기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현행법이 상품 광고에 한정돼 소비자를 기만하는 그린워싱을 모두 제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기후솔루션 하지현 변호사는 "그린워싱을 제재할 법적 근거는 있지만 상품이 아닌 사업 또는 기업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경우엔 법이 전혀 적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추상적인 기업 이미지 홍보 그리고 사업 전반에 대한 그린워싱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탄소중립, 무탄소(CO2 FREE) 등 단언적이고 절대적인 표현을 사용한 기업에 더 강력한 입증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국내보다 구체적인 친환경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유럽법은 PIR(Post Industrial Recycled)이 아닌 PCR(Post-Consumer Recycled) 방식만을 친환경으로 인정한다. PIR은 공장에서 나온 스크랩을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고 PCR은 소비자가 사용하고 버린 쓰레기를 재활용한 방식을 지칭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한국은 쓰레기로 만든 것들을 모두 재생원료를 썼다고 말하지만 유럽법은 엄격하게 PCR만을 인정한다"면서 "이미 소비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통해 친환경 여부를 판단하고 있고 관련 기준들은 점차 세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환경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만큼 그린워싱에 대한 판단을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전력은 환경 사업투자금 조성을 위한 특수목적 채권인 그린본드를 발행해 흥행에 성공했으나 그린워싱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외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한전의 녹색채권 발행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면서 "녹색채권 투자자들이 그린워싱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종호 교수는 "녹색채권을 발행한 한국전력이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석탄발전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인증도 까다로워지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허위 친환경 마케팅을 한 회사들이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린워싱의 가능성과 범위는 급속하게 좁아지고 있고 거짓이 드러난다면 시장은 더 냉혹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