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지만 여야의 정쟁으로 인해 우선순위가 밀려난 탓이다. 업계는 조속한 법안 통과를 바라고 있지만 기약이 없다.

K-칩스법은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 국면에서 한국의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발의됐었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K-칩스법은 업계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현행법상 반도체 설비 투자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다. 당초 여당은 이를 각각 20%, 25%, 30%로 높이는 안건을, 야당은 각각 10%, 15%, 30%로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국회를 통과한 안건은 대기업의 공제율만 2%포인트 높이는데 그쳤다. 기획재정부가 세수 감소를 우려하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다툼이 한층 치열해진 상황에서 주요국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지원책이 공개되자 업계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럴 거면 희망고문은 왜 했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자 기재부는 입장을 선회해 대기업·중견기업의 공제율을 8%에서 15%로, 중소기업 공제율을 16%에서 25% 상향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야당은 기재부의 입장 번복 행태를 문제 삼고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K-칩스법 논의는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K-칩스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해외는 자국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은 앞서 지난해 8월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25%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반도체 관련 법인세를 최대 100% 감면해 준다. 타이완은 자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높였다.

일본 역시 2022년 경제안전보장추진법에 따라 반도체를 중요물자로 지정했고 자국 기업은 물론 해외기업도 일본에서 반도체를 10년 동안 생산하는 전제 조건 아래 설비 투자금액의 3분의1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외 주요국가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 국회는 기약 없는 소모전만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은 크나큰 위기를 겪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한파로 반도체 수출은 반토막 나고 기업들은 투자 축소를 고민하고 있다.

업계의 시름은 깊어진다. 외국 대비 더 좋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동등한 산업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게 반도체 업계의 요구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국회가 희망고문을 멈추고 조속한 법안 통과에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