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을 제재했다. / 사진=로이터

한국 반도체 산업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할 만한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제조 기술력을 보유했음에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 사이에 끼어 제대로된 시장 확대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이 미국 반도체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면서 양국의 갈등이 점차 심화하면서 한국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사이버정보국(CAC)은 마이크론 제품에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있어 중대한 안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자국 기업들에게 제품 구매를 중단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결함이 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 보안 문제와는 무관하게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자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에 반격을 가한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미국은 반발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마이크론의 수입이 국가 안보 위험을 초래한다는 중국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중국의 조치로 인해 발생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 G7 내에서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양국의 갈등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계로 번지진 않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중국 기업들은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 현지 반도체 업체나 한국 반도체 업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며 "마이크론 제재가 현실화되기 전 5~6월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부터 재고축적을 위한 단기 주문이 증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그동안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 정책을 펼치면서 한국의 동참을 압박해 왔다. 이번에도 미국 내부에선 대중국 전선에 한국이 동참하길 바라는 한편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한국 기업이 대체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동맹국인 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경제적 압박을 직접 경험했다"며 "한국의 기업들이 마이크론을 대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이클 맥콜 공화당 의원은 로이터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 회사, 미국과 그 파트너 및 동맹국은 중국의 경제적 침략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의 동참 요구를 거부하긴 어렵다. 동시에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2.8%이며 반도체 대중 수출 비중은 53%에 달한다. 품목별로는 ▲시스템반도체 32.5% ▲메모리반도체 43.6% ▲반도체 장비 54.6% ▲반도체 소재 44.7% 등이다.

반도체 최대 고객이 중국인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미국의 편을 들다가는 경제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커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한국 반도체는 미국과 문제가 생기면 제조를 못하고 중국과 문제가 생기면 판매를 못한다"면서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 핵심 제조국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양국과 대화하며 중재하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