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간의 오랜 장마가 예보된 올 여름 전국 32만여가구의 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이 침수 사고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가운데 정부의 반지하 주거 금지 정책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정부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반지하 주택을 매입한 뒤 이를 재건축·리모델링하는 방안에 집중돼 있으나 현실적으로 반지하 주택의 수가 많으므로 민간의 자발적인 대책 실행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17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건설동향브리핑 911호'에서 이 같이 밝혔다. 1970년대 이후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자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며 저지대 반지하주택의 침수 피해가 반복해서 발생했다. 1962년 '건축법' 제정 당시 주택에 지하층을 설치할 수 없었지만 1968년 북한 공작원 30여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 이후 방공호와 참호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주택 지하 설치가 허용됐다.
경제 발전과 도시화가 본격화된 1970년 이후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대도시의 주거난이 심각해졌다. 이에 따라 지하층을 주거용도로 활용하는 불법 사례가 급증했다. 1976년부터 지하층 거주가 합법화되면서 수도권에 반지하주택이 본격적으로 건설돼, 서울의 경우 1960년대 이전 건축된 주택에 지하층이 설치된 곳은 7%에 불과했지만 1980년대 91%, 1990년대 95%가 지하층을 가졌다. 반지하는 용적률을 높이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지하층에 해당하는 반지하는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지하 구조는 거주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우 시 저지대 반지하주택에서 침수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데다 일조?환기?채광 등의 생활환경의 문제도 생겨날 수 있다. 서울 관악?동작?양천?강서구와 인천, 경기 고양 등 수도권에서 반지하 주택 침수에 따른 인명 과 재산 피해가 보고된 바 있다.
전국의 반지하 가구는 2020년 기준 총 32만7000가구로 전국 가구의 1.6%를 차지한다. 전국 반지하 가구의 96%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단독?다가구?다세대주택에 주로 설치돼 있다. ▲서울 20만가구(서울시 전체 가구의 5%) ▲경기 8만8000가구(전체의 1.7%) ▲인천 2만4000가구(전체의 2.1%)다.
반지하 가구가 설치된 단독?다가구?다세대주택은 대부분 2000년 이전에 건설된 노후주택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 반지하주택의 80.9%가 1995년 이전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서울의 다가구주택 39.6%, 단독주택 36.3%, 다세대주택 20.8%가 반지하 주택이다.
정부는 ▲반지하주택의 신축 금지 ▲반지하주택의 공공매입 후 리모델링(임대주택) ▲재개발 촉진 ▲반지하 거주자 이전 지원 등을 핵심 정책으로 지정했다.
지난 2월 국토교통부는 반지하 등 재해 취약주택은 공공매입과 정비사업 등으로 정비하고 지하주택 신축을 불허하기로 했다. 반지하주택은 저렴한 집세로 저소득층이 불가피하게 거주하는 불가피성을 감안해 재해에 취약한 주택은 안전한 신축주택으로 정비하고 신축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행정안전부는 침수 등 재해에 취약한 반지하주택과 지하 공간에 대한 실태를 조사해 주거 수준의 상향과 침수방지시설 설치 지원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반지하나 쪽방 등에 사는 이들이 공공·민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이주가 어려운 경우 침수방지시설 등의 설치를 지원한다. 재해 취약주택은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지하나 반지하 공간은 공동체(커뮤니티) 시설로 이용할 수 있도록 용도를 변경하는 방안도 추가했다.
국토부는 또 지난 4월부터 지하층에 거주하는 임차인을 이주시키는 데 초점을 둔 전세자금 대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층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 세대주가 민간임대주택으로 이주하려 할 때 최대 5000만원을 최장 10년간 무이자로 빌려주는 정책이다.
건산연은 이러한 정부 정책이 기존 반지하주택을 공공이 매입한 후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추진하는 방향에 집중돼 있고 민간의 자발적 리모델링과 신축을 유도하는 내용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에 30만가구가 분포돼 있는 반지하 주택을 모두 공공매입해 리모델링 또는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은 재정 여건상 어려운 과제이므로 민간의 자율적인 리모델링 또는 소규모 재건축을 촉진할수 있는 정책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용석 건산연 연구위원은 "역대급 호우가 전망되는 올해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는 즉시 추진과제로 기존 반지하주택의 침수방지 시설을 확인하고 미설치 시 즉시 설치토록 조치해야 한다"며 "반지하주택이 주로 분포하는 노후 저층주거지는 협소한 도로와 부족한 주차·녹지공간, 슬럼화되는 골목뿐만 아니라 주택의 노후화로 삶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곳에 위치한 반지하주택의 소유자 상당수는 재정 여건이 충분치 못해 주택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반지하 문제 해결을 위해 ▲밀집 지역인 노후 저층주거지의 재개발 촉진 ▲반지하주택과 인접 주택이 함께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을 추진할 수 있는 '건축협정제도' 활성화 ▲반지하 주택의 리모델링 활성화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박 연구위원은 "노후 저층주거지의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면 반지하주택의 문제점은 자동적으로 해소되며, 신축에 불리한 입지의 노후주택들이 연합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추진을 할 수 있는 건축협정제도를 적절히 활용하는 대안 검토도 필요하다"며 "반지하 공간을 리모델링해 창고, 커뮤니티 시설, 주차장 등으로 전환할 경우 공사비나 그린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재산세를 감면해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