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이어진 원자잿값 폭등과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정책으로 시공사를 찾지 못하거나 사업이 유찰되는 정비사업 조합이 늘고 있다. 조합들은 사업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사비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 중곡아파트 공공재건축 조합은 2차 시공사 선정에 나서 3.3㎡당 공사비를 650만원에서 800만원대로 올렸다. 가구수는 기존 331가구에서 345가구로 14가구 늘렸지만 총 공사비는 956억원에서 1283억원으로 34%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은 중곡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시공사 선정에 나선 서울 구로구 보광아파트 재건축도 첫 번째 입찰에서 3.3㎡당 807만원의 공사비를 제시했다. 서울 중구 신당9구역 재개발은 재입찰 공고를 통해 3.3㎡당 공사비를 1차 입찰 당시 743만원에서 840만원으로 인상했다.
공사비가 상승할 경우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사업비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유찰이 이어지고 있다. 올 3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정비사업 조합의 35%가량이 시공사 선정을 못해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2가 남성맨션 재건축조합은 지난 4월 다섯 번째 시공사 선정 입찰도 실패했다. 공사비를 종전 3.3㎡당 525만원에서 719만원으로 올렸지만 응찰자가 없었다. 그동안 시공능력 1위 삼성물산을 비롯해 포스코이앤씨·대우건설·롯데건설·금호건설 등 대형 건설업체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타이밍을 놓치면서 모두 철수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8구역도 두 차례 시공사 선정 입찰을 진행했지만, 롯데건설의 단독 참여로 강제 유찰됐다. 마포구 공덕동 '공덕현대'는 최근 입찰에 참여한 건설업체가 한 곳도 없어 재입찰 진행을 앞두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2년 전만 해도 3.3㎡당 공사비 700만원에 고급화가 가능했는데 최근에 공사비가 급등했다"면서 "조합들이 공사비 상승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로 3.3㎡당 공사비 1000만원 나올 것
내년부터 민간 아파트 단열 성능과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인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화되면서 공사비 추가 인상이 예고돼 있다. 제로에너지 건축 기준이 도입되면 사업 승인을 신청하는 민간 아파트의 단열 성능과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여 에너지 자립률을 20% 이상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현재 3.3㎡당 800만원대인 아파트 재건축 사업 공사비가 앞으로 1000만원을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지난해부터 시행한 층간소음 규제와 전기차 충전시설이 강화되면서 공사비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대한건축학회에 따르면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5등급 충족 기준 공사비가 기존에 비해 26~35%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
시멘트사들의 공격적인 가격 인상도 지속될 전망이다. 2050년 국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멘트 제조 단계에서 탄소배출 경감을 위한 전방위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7월부터 800만원 이상 공사비 본격 책정할 듯
오는 7월부터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이후에 즉시 시공사 선정이 가능한 대다수 사업지와 강남, 압구정, 성수 등에서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3.3㎡당 800만원 이상의 공사비를 책정할 것으로 전망된다.서울 강동구 둔촌동 A단지의 경우 높은 분양가로 인해 청약 마감에 실패했지만 최근 입주권이 분양가 대비 5억원 높은 가격에 신고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A단지의 전용 84㎡ 입주권은 지난달 11일 18억원에 계약됐다. 해당 면적의 일반분양가는 13억원대였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시공사가 협상 우위에 놓인 시장이 됐다"면서 "조합이 빠르게 공사비 인상 결정을 하지 않는 경우 원자잿값의 지속 상승에 따른 손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