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①아낌없이 나누는 O형이 부족하다… 마르는 헌혈
②항원만 '싹둑'… 소로부터 인공혈액 만든다
③아무나 할 수 없는, 그래서 더 가치 있는 헌혈
①아낌없이 나누는 O형이 부족하다… 마르는 헌혈
②항원만 '싹둑'… 소로부터 인공혈액 만든다
③아무나 할 수 없는, 그래서 더 가치 있는 헌혈
#.뜨겁고 습한 날씨에 불쾌지수가 폭발했던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거리. 이곳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엔 헌혈의 집이 있다. 광화문 사거리 일대는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약 100만명에 달하는 곳이나 이날 헌혈의 집을 방문한 시민은 30명 남짓이었다. 헌혈의 집 관계자는 "지난달 만해도 일평균 50여명이 방문했지만 요즘엔 20~30명 정도로 헌혈자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 등 다양한 원인으로 헌혈 수급량이 예전만 못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헌혈 수급 부족은 올 들어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낙관할 수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한적십자사(적십자)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전국에서 122만5625건의 헌혈이 이뤄졌다. 이중 3만3424건은 지인의 수혈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지정헌혈이다. 지정헌혈을 제외한 헌혈 건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2019년 한해 250만건 넘게 이뤄졌던 헌혈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236만614건으로 8.2% 감소했다. 이후 2021년(228만9576건)과 2022년(233만7533건) 등 2019년보다 적었다.
경고등 켜진 혈액 수급
헌혈 건수가 줄어든 만큼 적십자의 혈액 일일 보유량은 연일 경고등이 켜졌다. 혈액 일일 보유량은 당장 의료기관에 공급할 수 있는 혈액량을 가리킨다. 적정 보유량 기준은 5.0일이다. 5.0일 미만 '관심', 3.0일 미만 '주의', 2.0일 미만 '경계', 1.0일 미만 '심각' 등 4단계로 구분한다.올 들어 6월까지 월평균 혈액 적정 보유량은 5월(5.0일) 6월(6.7일)을 제외하면 1~4월 모두 5.0일 미만인 관심 단계였다. 최근 4년(2019~2023년 6월·54개월)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적정 보유량 이상이었던 날은 열두 달에 불과했다. 혈액형별 혈액 보유량은 지난 7월5일 0시 기준 B형 보유량이 9.1일로 가장 많았고 ▲A형 6.2일 ▲AB형 5.7일 ▲O형 4.7일 등으로 나타났다. O형의 경우 적정량을 밑도는 수치다.
헌혈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정부가 직접 나서는 사례가 발생했다. 정부는 2020년 5월과 같은 해 12월, 2021년 11월 혈액 부족을 이유로 전 국민에게 세 차례의 재난 문자를 통해 헌혈 동참을 호소했다. 혈액 보유량이 한주에 5일 이상 3.0일 미만인 주의 단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 탓이 크다. 국내 헌혈 가능 인구는 16~69세이며 올해는 3917만명이 해당한다. 2022년 한국의 실질 헌혈률은 건수를 기준으로 5.9%다. 2020년 기준 타이완(7.8%)과 호주(6.1%)보다는 낮고 프랑스(4.1%)와 일본(4.1%)보다는 높은 편이다. 코로나19 사태도 헌혈 수급 불안을 부추겼다. 학교에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된 탓에 단체 헌혈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직장에선 재택근무로 인해 단체 헌혈을 통한 혈액수급은 더욱 힘들어졌다.
헌혈 외면하는 10대… 헌혈기부문화 조성한다지만
헌혈 수급에 절대적인 비중은 차지하는 것은 10대 학생들이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 비중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헌혈 수급에 대한 위기감을 키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1월 기준 아동·청소년 인구는 전체의 14.1%(약 725만6000명)다. 이는 2000년 25.1%와 비교해 11.0%포인트(p) 줄어든 수치다.과거 헌혈 비중의 30% 이상을 차지했던 10대는 헌혈을 외면하고 있다. 2019년 75만여명에 달했던 10대 헌혈자는 지난해 43만3991명으로 42.6% 감소했다. 10대의 헌혈률 감소는 저출산에 따른 요인도 있지만 현장에선 교육부가 2024년부터 학교 교육에 반영되지 않은 개인·단체 헌혈을 대학 입시의 봉사활동 실적 인정 기준에서 제외하면서 감소한 것으로 바라봤다.
정부는 헌혈 수급 불안정을 보건의료분야 주요 현안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월22일부터 헌혈자에 대한 대우를 높이는 등 헌혈기부문화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개정 혈액관리법 시행령이 적용됐다. 이번 시행을 통해 정부는 헌혈공로자에 대한 유공 행사와 헌혈 장려를 위한 헌혈 교육, 홍보 활동 등을 지원해 헌혈 활성화와 헌혈기부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장은 헌혈기부문화 조성과는 별도로 헌혈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문화 조성은 중장기적인 관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적십자 관계자는 "혈액이 부족하면 응급환자가 수술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방학이 시작되면 단체 헌혈이 줄어드는 만큼 혈액 수급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