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관절 수술 최다 횟수인 5만례를 집도한 김인권 서울예스병원 병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이상적인 의사'. 이 수식어가 어떤 의미인지는 처한 상황이나 관점의 차원에서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김인권 서울예스병원 병원장(72)을 만나면서 '이상적인 의사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공부한 김 병원장은 의사 생활 전반을 어쩌면 세상과 가장 멀고 낮은 곳에서 했다. 은퇴할 나이를 아득히 넘겨 40여년 만에 돌아온 그는 "환자를 최대한 더 돌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찾아주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40여년을 정형외과 의사로 살아왔고 의사로서의 책임감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김 병원장의 일상은 이른바 '체력전'이다. 정형외과 전문의 5명, 신경외과 전문의 5명을 포함해 총 17명의 분야별 전문의가 재직하는 경기 용인의 서울예스병원. 그의 하루는 매일 오전 8시30분에 시작한다. 병원 내 모든 의료진이 한데 모여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치료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환자의 치료에 대한 과목별 전문의들의 의학적인 소견을 논의하고 환자의 심리상태나 원하는 치료방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논의가 끝난 뒤엔 외래를 돌고 수술 일정이 있는 날엔 하루 최대 20건 이상의 인공관절 수술을 집도한다. 매일 '강행군'인 셈이다.

"체력적으론 끄떡없죠. 서울예스병원에 오기 직전에 아내와 더 이상 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서넉 달을 쉬었죠. 그런데 쉬는 게 오히려 더 힘들더라고요. 평생 해온 일이 환자를 돌보는 건데….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봉사에서 시작한 인연… '세상의 땅끝' 나병환자와 함께

김 병원장의 이력은 독특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곧장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의(인턴) 생활을 했다. 전공의(레지던트) 4년을 마친 1980년 전남 고흥의 소록도로 향했다. 현재의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로 거듭나게 한 '국립소록도병원'(소록도병원)이 그곳이다. 소록도는 '한센환자(나환자) 수용소' 등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당시 그는 병역과 관련해 그해 도입된 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택했다. 공보의는 군의관으로 지내는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벽지나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구에서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한다.


"국가에서 6개월의 무의촌(의사가 없는 마을) 봉사를 해야만 전문의 시험을 볼 자격을 줬어요. 1977년 무의촌 봉사를 떠난 곳이 소록도병원이었습니다. 봉사 경험과 인연을 살려서 공보의로 소록도병원을 지원했습니다."

한센병은 미코박테리아의 일종인 한센균에 감염돼 나타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이다. 단순 피부뿐 아니라 말초신경계, 상기도의 점막을 침범해 인체 조직을 변형시킨다. 가령 관절 변형과 함께 나타나는 통증 등이 대표적인 예다. 피부의 변형을 빗대 '문둥병'이라 불렸고 환자는 '문둥이'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상처를 입었다. 이들이 모인 소록도는 유형(流刑)의 땅으로 통했다.

"3년을 소록도에 있었는데 외래 환자들이 하루에 100명씩 왔어요. 기본적인 진료부터 손과 발에 마비가 온 환자까지 수술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김 병원장은 1975년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곧장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 4년을 마친 뒤1980년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서 공보의 생활을 했다. /사진=장동규 기자

대학병원 거절하고 시골 병원으로

매일 나병환자를 돌보던 김 병원장은 1983년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에서 영입 제안이 왔던 터라 '돌아가느냐' '남느냐'를 고민했다. 그의 선택은 소록도와 가까운 여수의 애양원(여수애양병원)이었다. 결국 애양원에서 인생의 절반가량을 보냈다.

"공보의가 끝날 시기에 대학병원에서 선배들한테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그때 '나 못 가겠다'고 편지를 썼죠. 그리고 시골의 작은 병원인 애양원에 취직했습니다."

김 병원장의 애양원행은 그의 책상에 놓인 한 권의 책이 배경이 됐다. '닥터 토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책이었다. 닥터 토플은 1965년 애양병원 제10대 원장을 역임한 의료 선교사로 1959년 입국해 한센환자와 소아마비환자 치료에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토플과의 인연은 1978년 초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내고 애양원을 다녀왔는데 회진부터 수술까지 모든 진료에 참관을 시키더라고요. 애양원에 취직했을 땐 토플 선생은 떠난 뒤였지만 곳곳에서 토플과 함께 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김 병원장이 기자에게 건네준 ‘닥터 토플, 행복을 주는 사람’. /사진=지용준 기자

'인공관절 수술 5만례' 명의로서의 삶

한국에서 헌신적인 의료인의 대표격인 김 병원장에게는 또 다른 별칭이 있다. 바로 '명의'다. 그가 집도한 인공관절 수술은 5만례가 넘는다. 2019년 경기 용인의 서울예스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부산, 여수,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의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오는 이유다.

김 병원장의 주력 분야는 인공관절 수술. 통상 인공관절 수술은 숙련된 전문의의 경우 1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병원장은 15~20분만에 마친다. 수술 시간이 짧아야 감염이나 출혈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수술 시간을 최소화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의 수술을 참관한 한 외국인 의사가 "수많은 수술을 참관했지만 이렇게 빠르고 정교하게 진행되는 수술은 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란다.

요즘 김 병원장은 후배 의사들에게 외과 수술의 최신 기술이나 지견을 공유한다. 그는 "젊은 후배들에게 경험을 알려주고 후배들은 더 나은 의료기술을 연구하고 습득해서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 의술 이상의 인술(仁術)의 경지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알려온 삶. 결국 김 병원장의 삶은 '이상적인 의사'로서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의사로서 살면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많은 환자분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그래도 잘 살아온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생을 지켜왔던 의사로서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힘을 보태주는 후배의사들과 함께 꾸준하게 정형외과 전문의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