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열린 상황에서 현재 회장의 연임을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꾸는 건 축구 시작하고 중간에 룰을 바꾸는 것과 같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식' 이후 백브리핑을 통해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꼬집었다.
그동안 이복현 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금융권 CEO(최고경영자)의 '셀프 연임'에 제동을 걸어와 사실상 금융권에선 장기 집권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은 '셀프 연임' 문제가 재차 제기돼 왔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 특유의 직설화법을 구사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이날도 김태오 DGB금융 회장의 연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태오 3연임 위해 나이제한 완화 검토… 부정적 견해 드러내
앞서 DGB금융지주는 지난달 25일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회추위(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었다. 김태오 회장이 3연임을 하기 위해서 나이제한 개정이 필수적이다.DGB금융 지배구조 내부 규범 15조(이사의 임기)에 따르면 '회장은 만 67세가 초과되면 선임 또는 재선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태오 회장은 1954년생으로 만 68세다. 김 회장이 3연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만 67세로 묶여있는 규범을 만 70세로 올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내부에선 김 회장이 임기 중 호실적을 내놓고도 나이제한으로 인해 연임 도전을 할 수 없는 만큼 이사회에서 해당 규정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 이 원장은 "나이제한을 완화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판단이자 3연임이 아닌 4연임도 할 수 있다"면서도 "연임하는 후보자가 새 후보자보다 정보의 양이나 이사회와의 친분 등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어 아무리 훌륭한 후보자가 있더라도 합리적인 경쟁에 문제가 있진 않냐는 의식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울어진 운동장인 만큼 연임 후보자에 대한 기준을 더 높이든지 공평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각자 사정에 맞는 솔루션(기준)을 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이 이같은 발언을 한 건 사실상 김 회장의 연임에 반대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 원장은 KB금융이 새회장을 선임하는 절차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원장은 KB금융의 회장 선임 과정에 대해 "상대적으로 노력한 건 맞다"라면서도 "선임 절차에 필요한 기간이나 평가 등 절대적인 기준으로 다 괜찮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원장은 "KB금융은 후보 대상을 확정한 이후 평가의 기준과 방식을 정했다"며 "평가 방식과 기준을 미리 정하고 CEO 후보군에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후보군을 먼저 정하고 평가 방식을 정했다는 것 자체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태승·조용병·윤종규 연임 결정 앞두고도 입 연 이복현 원장
이복현 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집권 체제의 막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지난해 11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은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한 불완전판매 책임으로 금융당국에서 '문책경고'를 받고도 연임을 고심했지만 이 원장은 "당사자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경고성 발언'을 날렸다.
이어 지난해 12월 3연임을 포기한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이 예상을 깨고 용퇴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이 원장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보니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스럽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용퇴 의사를 밝히기 전에도 이 원장은 입을 열었다. 그는 "KB금융 회장 선임 절차가 금융업계의 모범사례가 됐으면 한다"며 "평가 기준, 후보 선정 과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하고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도 공평한 기회 제공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KB·신한·우리·NH농협·BNK금융 등 임기 만료를 앞둔 회장들은 용퇴를 선언하거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한 번 취임하면 10년 가까이 연임이 이어졌던 금융권 장기집권 관행이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금융지주 회장 대부분은 약 10년 동안 재임해 왔다.
대표적으로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4연임에 걸쳐 10년 동안 수장 자리에 있었으며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초대 회장이 9년간 재임했다. 용퇴 의사를 밝힌 윤종규 회장도 9년간 KB금융그룹을 이끌어왔다.
금융지주는 특정 대주주가 없어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로 불려 금융지주 회장이 회추위에 들어가거나 측근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셀프 연임'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은 사실상 거수기에 그친다는 문제점도 거론됐다.
이복현 원장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 선임은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고 강조해 왔다.
세대 교체는 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업무 연속성의 흐름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로 인해 이 원장에는 '관치 금융'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장의 직접적인 발언 이후 이뤄진 회장 교체가 이사회의 결정이 아닌 금융당국의 반대에 반영된 결과로 비칠 수 있다"며 "그동안 관치 논란에서 자유로운 원장은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