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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아닌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압도당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햇살이 밝은 지난 13일 낮,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 미술관을 찾았다. 현대미술의 거장 필립 파레노 개인전은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이 먼저 반겼다. 어린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많은 사람이 찾았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물고기 풍선 영상이 떠올랐다. 기대를 품고 아동교육문화센터부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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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간엔 깜빡거리는 수많은 조명과 스피커, 춤추는 사람
어두운 공간인 블랙박스에선 '마릴린'을 비롯한 3개의 영상이 연속으로 나왔다. 불이 타는 소리와 어딘가로 탐험하는 듯한 영상이었다. 관객들은 조용히 영상에 집중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예술적이었다. 흰벽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작품 해설이 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넓은 공간인 그라운드 갤러리가 나온다. 그 공간에는 깜빡거리는 수많은 조명과 스피커가 있었다. 또 춤추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특이한 안무를 선보인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났다. 천장에는 투명풍선들이 가득했고 벽에는 커다란 시계태엽이 걸려 있었다.
조명에서 나오는 듯한 기계음이 들렸고 간간히 "내 이름은"이라고 말하는 배두나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낯선 공간에 온 듯했다.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중간에 설치된 벽은 움직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공간이 움직이고 조명에서 불빛이 깜빡거릴 때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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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각자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시계태엽'은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소재인 시간을 다뤘다. 공중에 설치된 수많은 투명풍선은 '말풍선'이다.
'깜빡이는 불빛 56개'는 조명 하나가 켜지면 주위의 다른 조명들이 점등되도록 설정돼 있다. 우리 뇌의 신경 세포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시각화한 것이다. '차양'은 극장 입구의 화려한 간판에 있는 불빛에 영감을 받았으며 야외 설치 작품인 '막'과 연결돼있어 바깥의 환경에 따라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한다. 이는 실내와 바깥 세계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파레노는 전시를 개별 작품들을 모아 선보이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작품·관람객·공간 사이의 상호 작용을 매개하는 일종의 매체로서 전시를 바라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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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연주되는 주황빛으로 물든 공간에 떠다니는 물고기
M2 전시 공간으로 갔다. 그곳엔 주황빛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전시 공간 전체가 석양이 진 듯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녹고 있는 눈사람들이 있었다. 물고기 모양 풍선들은 전시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주황색 눈이 내리고 있는 피아노는 자동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물고기 모양 풍선들과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아이들 역시 물고기 모양 풍선을 만지러 따라다니기도 했다. 마치 관람객들도 하나의 공간에서 한 작품이 된 것 같았다.
천장엔 360도 돌아가는 스피커가 있었다. 한쪽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었고 투명한 창밖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었다. 공간에는 두 개의 큰 조명등이 설치돼 있고 한쪽엔 반딧불이가 확대된 영상과 다른 벽에는 꽃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볼거리가 풍부해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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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 공간은 '석양빛 만, 가브리엘 타드의 지저인간: 미래 역사의 단편'이라는 작품이다. 전시회 창문에 붙여 있는 주황색지도 작품이었던 것이다. 놀라웠다. 기대했던 작품인 '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은 제한된 공간 속 갇혀 인간에게 관찰당하는 물고기의 관점을 드러냈다. '여름 없는 한 해'는 자동 연주되는 피아노다. 슬픈 느낌의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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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 어디든'…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위층에 가보니 어린아이의 얼굴과 어른의 몸을 가진 합성 사진이 걸려 있었고 한쪽 벽에는 여성 캐릭터 '안리'가 말을 하는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상에서 안리는 "왜냐면 나는 상품이니까 말이야.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그곳이 이 세상 밖이면. 나는 가상의 캐릭터야. 하나의 기호 유령이 아닌"이라고 말한다.
한 관람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네"라며 돌아섰다. 영상 '세상 밖 어디든'은 가상 세계에 머무는 캐릭터 안리가 등장한다. 파레노와 그의 절친 작가 피에르 위그는 안리의 저작권을 일본 에이전시 케이웍스에서 1999년에 구입한 뒤 안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것으로 안리의 이미지의 저작권은 그녀 자신에게만 속하게 된다.
벽 뒤엔 흰색 식물과 같은 가구 작품 '루미나리에'가 설치돼있었다. 관람객들이 '루미나리에' 근처를 빙 두르며 사진 찍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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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기계탑과 연결되는 전시 전체의 실내 공간
거대 탑 '막'은 롯데월드의 '자이로드롭'을 연상시켰다. 중간 부품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커다란 탑이 외부 환경의 자극을 받아 전시회 내부 작품의 움직임과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거대 탑 '막'은 새로운 언어 '∂A'를 위해 자신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자체 평가 시스템으로 기압계·온도계·지진계와 같은 센서를 통해 즉각적으로 환경을 이해하고 신호와 데이터를 수집해 소리로 변환한다.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A'는 어딨는지 전시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전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소리"라고 했다. 모든 전시 공간에 울려 퍼졌던 소리가 작품이었다. 이 소리는 실시간으로 수집된 서울의 기후와 도시의 진동과 소음을 배두나의 목소리와 조합해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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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을 마친 뒤 로비에서 쉬고 있던 도중 외국인 교수와 그 뒤로 학생들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영국 런던예술대학교에서 전시를 보러 왔다고 했다. 필립 스쿠라 런던예술대 패션 전공 교수는 이 전시에 대해 "압도당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떠다니는 물고기들) 만지고 싶었지만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양면적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진민지씨(20대·서울 관악구)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시 오려 한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반딧불이가 있던 화면"이라고 말했다. 홍석현씨(20대)는 "작품 설명을 읽어도 어렵다. 하지만 퀄리티가 되게 좋다. 배두나 목소리가 나오는 안리 작품이 인상적이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유기체 같았다. 모든 작품이 결국 다 같은 소리를 내며 바깥과 실내 공간이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관객 역시 이 유기체의 일부인 듯했다. 파레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작가로서 하는 일은 어떤 색상 혹은 공간의 소리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 전시를 연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각의 작품보다 전체적인 전시 맥락에 초점을 맞춰 관객들이 직접 전시를 느껴볼 수 있도록 한다.
리움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현대미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적 작가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를 지난달 개최했다. 필립파레노의 국내 최초 미술관 개인전이자 리움 미술관 최대 규모 전시며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7월7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