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산업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롯데케미칼이 조직 슬림화와 비핵심 사업 정리로 몸집을 줄이고 있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 고부가가치 사업 전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1일 롯데케미칼의 '202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미등기 임원은 지난해 84명으로 전년 대비 4명 줄었다. 2022년 기준 미등기 임원이 102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4년새 28명이 회사를 떠났다.
롯데케미칼의 고강도 인적 쇄신은 그간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석유화학 부문의 실적 악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석유화학산업은 중국발 저가 공세와 글로벌 경기 둔화가 맞물리며 수익성이 악화돼 왔다.
롯데케미칼 석화부문의 영업손실은 ▲2022년 7837억원 ▲2023년 4920억원 ▲2024년 8512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엔 8577억원으로 적자폭이 더 커졌다. 올해도 중동 전쟁 여파로 나프타 수급 불확실성이 확대돼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있는 만큼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룹 차원의 조직 슬림화 전략도 영향을 미쳤다. 롯데그룹은 2024년부터 각 계열사 임원을 약 10~35% 축소하라고 공지했다. 임원 규모를 축소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사업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수시 임원인사 체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은 비핵심 사업 정리도 병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회사 LUSR 청산하고 파키스탄 고순도테레프탈산(PTA) 자회사 LCPL을 매각하는 등 사업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결과 롯데케미칼 연결대상 종속회사는 2022년 31개에서 지난해 26개로 줄었다.
롯데케미칼의 쇄신은 고부가·친환경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한 투자로 이어졌다. 핵심 사업은 자동차·가전·배터리 등에 쓰이는 고기능 플라스틱과 특수소재 생산이다. 지난해 롯데케미칼의 전체 매출의 20.2%를 차지할 만큼 주수익원으로 거듭났다.
롯데케미칼은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남 율촌 국가산업단지에 약 3000억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단일 컴파운딩 공장을 구축했다. 해당 공장은 향후 항공·반도체용 소재인 슈퍼 엔지니어링플라스틱까지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돼 첨단소재 사업 확대의 핵심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 롯데정밀화학도 고부가가치 사업 전환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가성소다·암모니아 등 기초 화학제품부터 헤셀로스(수성 페인트 첨가제), 셀룰로스(천연 섬유) 소재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헤셀로스 3공장 인수와 식의약용 셀룰로스 공장 증설 등에 2636억원을 투입하며 생산라인을 늘리고 있다.
고부가 전지소재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하이엔드 동박·차세대 배터리 소재 기술을 앞세워 배터리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고 있고 말레이시아·스페인·미국 등 해외 사업장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중이다.
롯데케미칼의 사업 구조 재편 작업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0일 서울시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케미칼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어려운 환경에도 다각도로 사업 구조 재편을 추진해 왔다"며 "연구개발(R&D) 로드맵을 재구성하고 핵심 소재 기술을 조기 확보해 고기능성 스페셜티 화학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