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과 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등 전방위 협력 계획을 내놨지만 SK하이닉스 주가는 오히려 급락했다. 미국발 반도체주 충격과 외국인 매도세, 스페이스X 기업공개(IPO)로 인한 수급 불안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15만9000원(7.68%) 내린 191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국내 대형 반도체주인 삼성전자도 전 거래일 대비 3만3500원(10.18%) 하락한 29만5500원에 장을 종료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만나 AI 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두 회사는 기존 HBM(고대역폭메모리) 공급 관계를 넘어 차세대 메모리와 AI 데이터센터, AI팩토리, 슈퍼컴퓨터, 로봇 등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가속기 개발 단계부터 메모리 설계와 공급 계획을 함께 논의하는 다년간 기술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핵심 공급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발표는 중장기 실적 가시성을 높일 수 있는 대형 호재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날 주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앞서 발표된 브로드컴 실적 전망이 시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데다 AI 관련주 높은 밸류에이션 부담과 엔비디아 생산능력 조정 가능성 등이 부각되며 글로벌 AI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영향이다.
여기에 예상보다 강한 미국 고용지표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하 기대를 낮추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투심을 위축시켰다. 중동 긴장과 국제유가 상승 우려도 외국인 매도세를 부추겼다.
스페이스X IPO(기업공개)가 기존 AI와 반도체주 수급을 흔들고 있는 것도 변수다. 스페이스X 초대형 공모를 앞두고 글로벌 기관투자자가 청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엔비디아를 비롯한 기존 AI 성장주 비중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발 반도체주 조정과 맞물려 글로벌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촉진하는 수급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FICC리서치부 부장은 "금리 상승으로 위험자산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브로드컴 가이던스 부진과 함께 최근 급등했던 반도체 업종 차익 실현 압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중장기 전망은 '맑음'…엔비디아·스페이스X 효과
다만 증권가에서는 이번 협력이 중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주에 호재가 될 것은 틀림 없다는 시각이다. 최근 조정은 단기간 급등한 반도체주가 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평가다.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가 AI 가속기 개발 초기 단계부터 메모리 설계와 공급 계획을 함께 논의하면 HBM4와 HBM4E, 커스텀 HBM 등 차세대 제품의 장기 공급 가능성이 커지고 고객사 요구에 맞춘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도 높아질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로봇·슈퍼컴퓨터로 협력 범위가 넓어질수록 GPU와 HBM뿐 아니라 서버용 D램, 낸드, 패키징, 기판, 검사장비 수요도 함께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물론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까지 수혜가 확산되며 국내 반도체 업황의 성장 주기와 실적 가시성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AI 산업은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금리와 인프라 등 현실적인 제약과 충돌하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 반도체주 역시 높은 변동성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젠슨 황 CEO와 국내 주요 기업이 잇따라회동하며 협력을 강조하고 있고 대규모 반도체 수요를 기반으로 한 성장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변동성과 금리 부담이 불가피하지만 하반기 이후 반도체 업황은 여전히 강한 성장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이스X IPO도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반도체주에 새로운 기대 요소가 된다. 스페이스X가 xAI와 AI 데이터센터·우주 기반 컴퓨팅 사업을 확대하면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와 HBM 수요가 함께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신규 수요처를 확대하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종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스페이스X의 등장은 한국 반도체에 새로운 기회"라며 지상 AI데이터센터에 이어 우주 데이터센터 건립까지 추진 중으로 초고성능 메모리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수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