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 참가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해 9월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존재인가? 1992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중국은 활발한 경제교류로 동북아 번영 시대를 함께 이끄는 동반자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연이어 들려온 중국 시진핑(習近平)과 각국 지도자와의 정상회담 소식은 이러한 중국의 의미가 바뀌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1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을, 5월 12~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같은 달 19~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이징에서 각각 만난 시 주석이 이번엔 8~9일 평양으로 향했다. 2019년 6월 이후 약 7년 만에 방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지난해 9월 베이징 전승절 행사 이후 9개월 만의 만남이다. 중국 CCTV에 따르면 8일 김 위원장은 부부가 함께 공항에 달려 나가 영접했을 정도로 시 주석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잠시 시곗바늘을 지난 1월 5일로 돌려보자. 그날 이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나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시 주석은 평화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시 주석이 북한을 설득해 남·북, 북·미 회담을 주선하고 비핵화를 압박할 것이란 기대가 일부 있었다.


그런데 시 주석은 방북일인 8일자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이런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각자 국정에 맞는 사회주의 노선을 걸어가도록 서로 지지한다'이라는 대목은 누가 봐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노선과 세습체제를 대놓고 인정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기고문은 한술 더 떠 '패권주의·강권 정치 반대''군국주의 부활 반대' '운명공동체' 등 전에 볼 수 없던 표현으로 북·중 전략연대로 미국·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에 '중조친선협조관계 설계' '중조관계발전의 설계도'란 말을 넣어 양측이 모종의 프로젝트를 합의했음을 시사했다. 중국이 동해에 접한 북한의 라선특별시나 함경북도의 특정 항구를 개발해 북극항로 개척에 이용하는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빙상 실크로드 협조와 북한 핵·미사일·세습체제를 인정을 서로 맞바꾸는 거래일 수도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기고문에서 '비핵화'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북한 김여정 당 총무부장이 6일 담화에서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방침에 동의했다는 백악관 발표를 '날조'라고 비난하고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불퇴의 한계선이며 누가 인정하든 말든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남북과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던 중국이 이제 완전히 북한 손을 들어준 것일까.

주목할 점은 1961년 7월 베이징에서 북한 김일성 위원장과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우호협력상호조약'을 체결한 지 올해로 65주년을 맞았다는 점이다. 제2조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자동참전 조항이 담겼다. 시한이 없는 대신 양국 지도자가 수시로 언급해 작동을 확인해왔다. 이번 기고문은 '시대가 어떻게 바뀌고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해도 전통적인 중조친선은 언제나 불패'라는 문장으로 조약의 건재함을 재확인했다. 지금까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왔던 우리가 이제 북핵과 미사일의 후견자가 된 중국과도 상대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셈이다. 눈 앞에 펼쳐진 냉혹한 전략적·군사적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은 오랫동안 한국을 상대로 '디지털 중국몽'에 해당하는 영향력 공작까지 펼쳐왔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이미 2003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여론전·심리전·법률전의 '삼대전쟁(三戰)'을 펼쳐왔다. 외국 국민이 중국을 '곧 미국을 대신할 긍정적인 패권세력'으로 믿도록 여론몰이하고 심리적으로 조종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국가 차원의 공작이다. '중국이 곧 세계의 패권국가가 될 것이라니 알아서 지금부터 말을 잘 들어라'라고 가스라이팅 하는 것이다. 증거 확보도, 기소도 쉽지 않은 은밀한 공작이다.

가까운 한국·대만·일본이 삼대전쟁의 가장 적극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다. 선거로 정권을 수시로 바꾸는 민주 체제라는 점에서 더욱더 눈엣가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디어와 SNS의 인플루언서·허위계정 등을 이용해 여론과 행동을 조작한다. 해킹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개인·집단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기도 한다.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엔 인공지능(AI)을 통한 빅테이터 분석과 소셜미디어 플랫폼 활용으로 대중의 사회적 행동 조종을 시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방해한다며 우리 군과 주한미군의 훈련 축소를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대만 공격 압박과 공포심 조장도 그중 하나다. 9월 24일로 예정된 시 주석의 방미에서 이를 협상카드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믿을 수 있는 건 미국의 대중 경계의식이다. 지난 5월 방중을 마치고 베이징을 떠나기 직전 대통령 전용기 탑승자들이 중국에서 사용했던 모든 디지털·마그네틱 도구를 폐기했을 정도다. 여론과 정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이러한 의식은 그야말로 '아이언 돔' 역할을 한다. 미국이 과거 나치와 대결할 때 만든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바탕으로 외국 정부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나 대리인의 활동과 자금 출처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최근 캘리포니아의 소도시 아카디아의 에일린 왕 시장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미등록 외국 대리인) 활동 혐의로 기소돼 경종을 울렸다.

그런 점에서 외국대리인등록법이 21대 국회에 상정됐지만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가, 22대에 다시 상정된 뒤에도 장기 대기 중인 한국이 더욱 걱정된다. 우리에게 중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