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시장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인공지능(AI)홈을 새 먹거리로 낙점했다. 기존 소비자 간 거래(B2C) 중심 사업 모델을 기업 간 거래(B2B)로 확장하고 소비자 락인 효과를 강화해 반등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두 기업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모듈러 주택 전문기업 공간제작소와 '삼성 AI 모듈러 홈'을 출시하고 쇼룸을 열었다. 주택 제작 단계에서 AI 가전과 스마트싱스 기반 AI홈 설루션을 설치·등록해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거주자는 에어컨, 냉장고, TV 등 20여종의 스마트싱스 연동 기기를 주택 형태와 용도에 따라 선택해 입주 즉시 이용할 수 있다. 소비자가 가전을 별도로 구매·설치하고 사물인터넷(IoT) 네트워크에 기기를 연결해야 하는 불편함을 줄였다.
LG전자도 최근 GS건설과 차세대 AI홈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LG전자는 AI홈 허브 '씽큐 온'을 중심으로 가전과 사물인터넷(IoT) 기기, 생활 서비스 등을 GS건설의 주거 브랜드 '자이'와 연계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이번 MOU를 통해 집 안에 머물렀던 AI 생태계를 외부 공간으로 확장한다. 집 안 가전과 조명·난방·환기·콘센트·가스밸브 제어는 물론 엘리베이터 호출과 주차 위치 확인, 방문 이력 조회, 커뮤니티 시설 예약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할 방침이다.
AI홈은 가전과 IoT 기기, 주거 서비스 등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한 주거 환경을 말한다. 단순히 어플리케이션이나 음성으로 기기를 제어하는 것을 넘어 AI가 거주자의 생활 패턴을 파악해 필요한 기능을 먼저 제안하거나 자동으로 실행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AI홈 시장 선점에 나선 것은 가전 판매만으로는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기존 가전은 보급률이 높고 교체 주기가 길어 판매량을 늘리기 어렵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빠르게 넓히고 있어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반면 AI홈은 관련 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향후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빠른 성장세도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는 글로벌 AI홈 시장이 2026년 1801억2000만달러(약 269조)에서 2034년 8484억7000만달러(약 1266조)로 연평균 21.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글로벌 일반 가전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6.7%)보다 3배 이상 높다.
일회성 판매에 그치던 일반 가전과 달리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것도 강점이다. 가전을 AI홈 플랫폼에 연결하면 제품 판매 이후에도 기기 관리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원격 점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구독형 서비스와 결합할 경우 안정적인 수익 창출 구조가 만들어진다.
사업 모델을 B2B로 넓히는 효과도 있다. 개별 소비자에게 제품을 한 대씩 판매하는 데서 벗어나 주택사업자에게 가전과 AI홈 플랫폼 등을 패키지 형태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사 생태계 안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락인 효과도 기대된다. 거주자가 가전을 추가하거나 교체할 때 다른 브랜드 제품은 기존 플랫폼과의 연동이 어려워 호환성이 높은 기존 브랜드 제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실제 주거공간에서 축적되는 공간·생활 데이터가 홈로봇 등 피지컬 AI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공장 데이터가 제조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의 기능을 고도화하는 데 쓰이듯이, AI홈 데이터도 가정에 필요한 로봇의 기능을 설계하고 고도화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가전 기능 경쟁을 넘어 주거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는 생태계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적용 대상도 공동주택과 모듈러 주택 등으로 넓어지고 있는 만큼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가전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