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장윤기 사건이 드러낸 수사 공백과 보완수사권의 필요성 토론회'에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당시 입었던 청바지를 보여주고 있다. 경찰은 중상해죄로 가해자를 송치했으나 검찰이 청바지 안쪽에서 가해자의 DNA를 발견해 성폭력특례법을 적용하면서 가해자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사진=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블로그

경찰의 조직적 증거 인멸 의혹으로 번진 '장윤기 사건'으로 검찰의 보완수사권 필요성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정치 성향을 떠나 여성 피해자들과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돼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치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왜 유독 여성들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내는 걸까.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씨(가명)는 14일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이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여성) 범죄 피해자들은 회복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저도 (사건 당시) 전치 16주 상해를 입고 두 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살필 여력이 없었던 거죠. 신체적 피해가 적다고 해도 다르지 않아요. (많은 여성) 피해자들은 (사건 초기)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조력을 받을 환경이 마땅치 않아요. 검찰이 보완 수사를 진행한다면 (피해자들이 사건을 살필)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거죠. 경찰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경찰의 직감과 검찰의 합리적 추론이 합쳐질 때보다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요. 모든 검사가 괴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력범죄 피해자로서 꼭 말해주고 싶어요."

같은 청바지 두고 경찰과 검찰 전혀 다른 결과

2022년 5월 가해자 A는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 김씨를 따라가 부산의 한 건물에서 돌려차기로 김씨의 뒷머리를 가격해 쓰러뜨렸다. 이후 의식을 잃은 김씨를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력을 시도하다가 도주했다. 김씨는 입주민에 의해 발견돼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뇌 손상으로 해리성 기억상실 장애가 나타나 사건 당시의 기억을 잃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당시 현장 CCTV 화면. /사진=뉴시스

김씨는 피해자로서 경찰과 검찰 수사를 모두 경험하며 큰 차이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경찰은 기억을 잃은 제게 '성범죄를 당한 것 같냐?'고 물었다"며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또 "가해자가 성범죄 정황을 부인하자 더는 추궁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반면 검찰은 달랐다고 했다. 김씨는 "피해 당시 입었던 청바지로 경찰은 범인을 특정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고, 검찰은 성범죄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했다"며 "똑같은 증거를 두고 다른 결과를 낸다는 건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수사 검사였던 김세희 변호사(법무법인 더킴로펌)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119구급활동일지에 적힌 '피해자 청바지 지퍼가 내려가 있었다'는 한 문장에서 성폭력 정황을 의심했고, 바로 피해자가 당시 입었던 속옷과 의복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길 수 있었다"며 "만약 보완수사권이 없었다면 증거 수집이 지연됐을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경찰은 가해자 A를 중상해죄로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의 청바지에서 120여개 조각을 채취해 DNA 감식을 시도했고, 청바지 안쪽에서 A의 DNA를 확보해 성범죄임을 입증했다. 중상해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지만, 성폭력특례법(강간 등 살인)은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어 형량 차이가 크다. 결국 A는 성범죄 목적으로 김씨를 폭행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보완수사권 폐지의 대안으로 "피해자들에게 수사 절차에 대해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시대' 인터뷰에서 "검찰의 보완 수사 대신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면 많은 범죄 피해자들이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채 스스로 사건을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되는 정치 수사에 한해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저는 평범하고 힘없고 가난한 피해자이기에 지금의 상황이 매우 불쾌하다. 가해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피해자가 단념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검수완박' 이후 수사 지연 등 부작용 살펴야

여성 피해자들과 여성단체들이 한목소리로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치를 주장하는 데는 여성 범죄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살인·강도·강간·추행 등 전체 범죄 피해자 중 여성은 2021년 40만6593명에서 2024년 47만3580명으로 3년 새 1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남성 범죄 피해자는 13.6% 늘어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6개 여성단체는 13일 "형사소송법 개정이 피해자에게 개악이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대표적인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4일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가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리해온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14일 국회 토론회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을 축소한 '검수완박' 이후 수사 지연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관내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 지원 등을 이유로 몇 주 전에 잡은 경찰 조사 일정이 한없이 미뤄지고, 3교대 근무하는 담당 수사관과 통화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며 "그러다가 수사관 전보 발령 등으로 '처음부터 다시 기록을 검토해야 하니 기다려 달라'는 응답이 반복된다"고 토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4년 경찰이 검찰로부터 재수사·보완수사 등을 요구받은 뒤 사건을 다시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84.7일이었다. 경찰이 사건을 입건해 1차로 처리(불입건 포함)할 때 평균 56.2일이 걸리는데, 경찰의 추가 수사까지 합하면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는 데 평균 5개월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현재 여권에선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유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재련 변호사는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해 기소하는 것과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한 뒤 다시 경찰이 검사에게 사건을 올리면 그때 기소하는 것 중 어느 절차가 신속하겠느냐"며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는 피해자가 신속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의 전다운 변호사는 1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과거 수사권 조정이 야기한 심각한 부작용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전혀 돌아보지 못한 채 무리한 속도전에 내몰리고 있다"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역할을 생략한 채 취약한 피해자 개인에게 모든 부담과 대가를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는 당장 무리한 속도전을 멈추고, 범죄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책임 있는 사법 개혁에 나서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