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이란전쟁이 바꿀 국가안보와 국제질서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허태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김종철 전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사진=유충현 기자

"북한은 '핵이 없으면 두드려 맞고, 있으면 안 맞는다'는 것을 학습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이렇게 공습을 당했겠나. 북한 비핵화는 이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갔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15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한반도미래포럼(KPFF) 제8회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이란 전쟁은 한반도에 기존에 있던 대결적 구도를 더욱 굳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송 장관 스스로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서길 희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對) 중국 의존도만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한반도미래포럼이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은 '이란전쟁이 바꿀 국가안보와 국제질서의 미래'를 주제로 열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과 대응전략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은 "이란전쟁 여파가 중동지역 이란 패권 강화하고 중동의 전략지형 재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 동맹체제, 나아가 동아시아 한반도 세계질서까지 적지 않은 영향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이란전쟁이 바꿀 국가안보와 국제질서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유충현 기자

우선 송 장관은 역대 미국 정부가 해외 군사개입을 검토할 때 고려해 온 원칙을 언급하며 이번 이란전쟁 개시를 비판했다. '와인버거·파월 독트린'으로 불리는 이 원칙은 '사활적 국익'이 걸려 있는지, 의회·국민이 지지하고 있는지, 압도적 군사력과 명확한 목표가 있는지, 신속히 개입·철수할 수 있는지 등을 담고 있다. 송 전 장관은 "이번 전쟁은 와인버거·파월 독트린에 하나도 해당이 안 되고 오히려 정반대"라며 "하지말란 것 그대로 뛰어들어간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송 전 장관은 미국의 이란전 대응을 1973년 베트남 철수 당시와 비교했다. 당시 국제관계 변화와 비슷한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황은 당시보다 훨씬 나쁘다는 게 그의 송 전 장관의 시각이다. 그는 "베트남전 이후 미국은 국내 개혁과 소련 견제를 병행하며 냉전 종식을 이끌 수 있었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미국 내부 분열이 심화된 데다 지금의 중국은 당시 소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른 상대로 부상해 같은 경로를 밟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 결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크게 악화됐다고 송 전 장관은 덧붙였다.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동맹국을 보호하는 능력은 약화된 반면 북한의 위협은 커졌다는 점에서다. 송 전 장관은 "지금은 이상주의적 사고를 갖고 한반도 문제에 접근할 때가 아니다. 현재 상태를 안정시키는 현실적 접근이 중요하다"라며 "북한 핵 위협 하에서의 '평화공존'은 타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위협·도발을 억제하는 견고한 대응 태세를 갖추는 '소극적 평화'가 우선"이라고 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이란전쟁이 바꿀 국가안보와 국제질서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허태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김종철 전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사진=유충현 기자

이어진 토론에는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허태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김종철 전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송웅엽 전 주이란 대사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여유경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김형진 전 주벨기에·EU대사가 참여했다. 이들 전문가들도 한반도 안보환경이 악화됐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호령 연구위원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전 참전을 통해 값싼 드론으로 비싼 요격탄을 소진시키는 드론전 실전 역량을 습득했고 이란전에서 미국의 취약점을 학습했다"며 "이 같은 전훈을 한반도와 일본 기지 공격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란전쟁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위성영상·표적 데이터 지원이 이란의 정밀타격을 뒷받침했다"며 "북·중·러 간 이른바 '크링크(CRINK)' 국가들의 정보 협력이 유사시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짚었다.

허태근 전 실장은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결국 동맹국 스스로 강해지라는 것, 주한미군 지원을 늘리라는 것, 미국의 국제적 역할에 동맹이 더 기여하라는 것 세 갈래로 구성된다"며 "우리 국방 정책도 이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 안보는 한국군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은식 소장은 "국방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한반도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병력 규모에서 열세인 군대는 '란체스터 제곱 법칙'에 따라 그만큼 질적으로 앞서야 한다"며 "북한군 대비 절반 수준인 한국군 병력이 실질적으로 4배 이상의 질적 우세를 갖추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